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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늑대

입력
2017.11.06 15: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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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늑대는 포악스럽고 어리석은 존재로 그려진다.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에서는 온 마을 사람을 떨게 하는 공포의 대상이고, 아기돼지 삼형제에서는 굴뚝으로 기어들어 가려다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빈번히 일어나는 자생적 테러의 범인에게도 ‘외로운 늑대’라는 타이틀이 붙여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 등 북한에 온갖 험악한 소리를 하는 것을 두고 ‘트럼프판 양치기소년’이란 말도 나온다. 엄포가 심하면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는 거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불행을 막으려면 어떤 경고도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도 된다.

▦ 늑대는 북반구에 폭넓게 서식하는 개(犬)과 동물이지만, 밀렵 등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빠진 희귀종이다. 우리나라도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보호받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대랑피(大狼皮)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어서 중국 사신의 청을 다 들어 주지 못한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니 그때도 귀한 동물이었던 모양이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자기 몸무게의 20배에 달하는 북미 들소까지 사냥해 서식지가 겹치는 호랑이를 제외하고는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다.

▦ 동화와 달리 늑대가 생태계 보존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존재라는 것은 여러 사례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1990년대 늑대 수십 마리를 풀어놓자 목초지가 살아나고 숲이 울창해지는 등 생태계가 급속히 복원됐다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좋은 예다. 늑대의 등장으로 초식동물을 포함한 중간단계 포식자가 줄어들면서 하위 생물이 연쇄적으로 늘어난 덕분이다. 우리나라 생태계의 보고라는 광릉숲도 19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생태계 조절을 하는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면서 피도(식물종이 지표면을 차지하는 비율)가 20년 전보다 40%나 줄었다.

▦ 최근 서유럽에서 멸종 위기였던 회색늑대가 급속히 늘어났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늑대로 인한 농가 피해도 늘면서 늑대사냥 재개 여부가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생태계 건강을 위해 늑대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에 주는 위협을 무시할 수도 없다. 결국은 인간과 늑대가 공존하는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포식자가 늑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는 자각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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