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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책 ’그림의 떡’… 한진해운 중소 화주 발만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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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책 ’그림의 떡’… 한진해운 중소 화주 발만 동동

입력
2016.09.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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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ㆍ중진공ㆍ소상공인 지원센터 실무자

“지침 내려온 적 없다” 외면하다

뒤늦게서야 대출심사 등 착수

일선 지점에 지침 전달 지연ㆍ누락

중소기업 피해 접수 138건 중

정책자금 지원 실적 9건 불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정부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해당 기관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하니 속이 타 들어 갑니다.“

유럽에서 식품원자재를 구입해 국내 식품업체에 파는 A무역업체 대표 B씨는 한진해운 발(發) 물류대란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B씨는 유럽에서 사들인 3억원어치 식품 원자재 300톤을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6일까지 약 일주일 간격으로 선박 4척에 나눠 싣고 부산항까지 운송받는 내용의 화물 운송 계약을 한진해운과 맺었다. 하지만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여파로 한진해운 선박들이 발이 묶인 탓에 B씨는 약속한 날짜에 화물을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그는 “물건을 납품하는 식품업체 4곳과 약속한 납기일이 기약 없이 늦어지며 손해배상 청구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조만간 돌아올 납품 재계약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걱정이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 물류창고와 화물차 계약 비용만 하루하루 불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던 B씨는 지난 22일 무역협회가 회원사에 배포한 ‘한진해운 관련 피해기업 지원사업 안내’라는 정부의 공문을 받고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접촉한 기관들은 대부분 ‘그런 대책은 들어본 적 없다’며 B씨의 요청을 거부했다. B씨는 지난 26일 평소 거래 관계가 있던 기업은행 모 지점에 전화를 걸어 지원사업 중 하나로 명시된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B씨는 공문에 나온 것과 달리 은행 담당자가 “수출 화주가 아닌 수입 화주가 지원 대상에 해당하는지는 확인해봐야 한다”고 대답했다며 답답함을 느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측은 고객 응대나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시가 급했던 B씨는 지원사업 기관으로 소개된 신용보증기금(신보),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 소상공인 지원센터 등에 잇달아 자금 지원 가능 여부를 타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B씨는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운송 지연 등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화주’에 우대보증을 지원한다는 신보의 콜센터와 통화를 했다. 그러나 콜센터가 연결해준 신보 경기 성남지점의 담당자는 “한진해운 관련 화주에 대한 지원은 따로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B씨는 답답한 마음에 지원사업 안내 공문을 담당자에게 팩스로 보내기까지 했다.

신보 보증을 사실상 포기한 B씨는 ‘긴급 경영안정자금’을 빌려준다는 중진공 지역 지사를 방문했다. 중진공 담당자는 B씨에게 한진해운 피해 화주는 긴급경영안정 자금 지원 대상이 아니라며 ‘청년 전용 창업자금’을 빌릴 것을 권유했다. 한진해운 물류대란과는 무관한 제도였다. 대출 가능 금액도 5,000만원 정도에 불과했고, 대출 집행까지 3~4주가 걸렸지만 B씨는 어쩔 수 없이 신청했다.

B씨는 다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한진해운 피해 소상공인에게 저리 대출을 해주는 ‘소상공인 일반경영안정자금’을 이용하기 위해 소상공인 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지원센터는 “대출을 받으려면 신용보증재단 보증서를 받아오라”고 했고, 신용보증재단은 “한진해운 관련 지침은 들은 바 없다”고 했다. B씨는 “관련 기관들은 하나 같이 제대로 확인해 보지도 않고 지침을 모른다고 하니 기가 막힐 지경“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본보 취재 결과 B씨는 그가 요청한 지원사업 대부분의 지원 대상이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지침이 일선 지점까지 정상적으로 하달이 되거나, 담당자들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 취재가 시작되자 기업은행은 27일 곧바로 대출 심사를 진행키로 했고, 신보 역시 우대보증 절차에 착수했다. 중진공 또한 B씨가 대상자에 해당하지만 담당자가 지원대책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관련 기관들은 한결같이 ‘정부→관련 기관→일선 지점’으로 지침이 전달되는 도중 일부 지연과 누락이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정부 정책과 현장의 괴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화주는 B씨만이 아니다.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한진해운 물류대란이 본격화한 지난 5일부터 23일까지 중소기업청 애로신고센터에 접수된 중소기업 피해 건수는 총 138건인데, 그 중 B씨 사례와 같은 ‘납기 지연’ 피해 건수가 52.9%(73건)에 달한다. 그럼에도 지난 23일까지 중소기업청과 기업은행의 정책자금 지원 실적은 총 9건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특례보증 지원 실적 역시 고작 4건에 그쳤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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