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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트와이스도 모르면서 학생과 소통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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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트와이스도 모르면서 학생과 소통한다고요?

입력
2016.10.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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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 교원 인문학 특강

“서태지 중졸, 밥 딜런 노벨상…

학생 제각각 개성 존중하고

자기 분야 찾도록 도와줘야”

24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예술로 만나는 교원 인문학 특강'에 교사 200여 명이 참여해 대중문화평론가 임진모씨의 강연을 듣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24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예술로 만나는 교원 인문학 특강'에 교사 200여 명이 참여해 대중문화평론가 임진모씨의 강연을 듣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걸그룹 트와이스 ‘우아하게’ 아는 선생님 계세요? 그걸 아는 선생님과 모르는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 태도는 하늘과 땅 차이에요. 자, 따라 해보세요. 엑소! 블락비! 방탄소년단! 지코! 마마무! 트와이스! 아이오아이(IOI)!”

젊은 국어교사부터 노년의 체육교사까지, 교단에서 학생들과 호흡한다는 사실 하나만을 매개로 자리에 모인 교사들이 24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에서 마련한 ‘예술로 만나는 교원 인문학 특강’을 들으러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일부러 이곳까지 발걸음 한 교사들이다.

인공지능의 파고가 한국 사회를 덮친 뒤 인문학의 중요성은 새삼 두드러졌다.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완파하면서 인간 고유 영역이라 여겨졌던 지능과 종합판단력이 기계로 대체 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대신 공감 능력과 창의력, 다른 인간에 대한 이해 능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최첨단 기계가 지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역설적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이 다시금 떠오른 것이다. 교육 현장도 이 열풍에서 예외가 아니다.

가을을 맞아 교육 당국은 교사와 학생 누구나 인문학에 푹 빠질 수 있는 행사들을 잇따라 마련했다. 우선 대상은 교사들이다. 24일 교사들을 대상으로 열린 인문학 특강에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가 강연자로 나서자 교사 200여명이 몰렸다. 가산점이 따로 없는 자율 연수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인파가 몰린 셈이다.

이날 강연을 관통한 주제는 아이들의 ‘B급 감성’ 이해하기. 임씨는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가수 싸이의 사례를 들어 아이들 제각각 개성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씨는 “싸이뿐 아니라 대중가요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서태지도 중졸(중학교 졸업) 학력이고, 가왕(歌王) 조용필도 공부로 따지면 대학 못 나온 B급”이라며 “사람은 자신이 역량 있는 분야에 꽂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쟁과 등수에만 집착하는 교실 풍경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임씨는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 파고 들어 잠재력을 폭발시켜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때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며 “스펙 쌓기를 종용하는 것보다 자신의 분야를 찾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돌 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중가수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밥 딜런을 사례로 들었다. 임씨는 “미국이 이룩한 자유, 평등, 평화라는 가치에 젊은 층의 회의감이 팽배했던 당시, 그가 쓴 가사는 반전(反戰)과 흑인인권운동 등을 함축해 당시 젊은 세대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대중문화야말로 한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주요한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강연을 듣고 난 교사들은 자신의 선입견을 되돌아 봤다고 입을 모았다. 남편과 함께 강연을 찾은 서울 용강초등학교 김보매(30)씨는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고 아이들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고급 저급을 나눠서 바라봤다. 유명한 비보이 학생을 노는 아이로 생각하는 식이었다”며 “가요도 듣고 대중문화를 많이 접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 응암초등학교 이지원(49)씨는 “줄 세우기 문화보다 학생 한 명 한 명 개성과 잠재력을 존중해줄 수 있는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문학 열풍에는 스포츠 꿈나무들이라고 열외가 없다. 25일 서울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체육특기생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연 ‘학생선수 북 콘서트’가 열렸다. 특히 박찬호 선수가 연사로 선다는 소식에 까까머리를 한 학생들이 저마다 하얀색 줄무늬 야구 유니폼을 입고 강당을 가득 채웠다. 학생 선수들을 한 데 모은 자리였지만 주제는 역설적으로 독서와 인문학의 중요성이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교수는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교육부 장관 등이 프로농구 선수 출신”이라며 “운동을 할 때 공부도 하고 독서를 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른 덕분”이라고 말했다. 성공의 비결을 묻는 학생의 질문에 박찬호 선수는 “목표를 가지고 일기를 썼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된다”며 “스스로 연습량을 정하고 그걸 해내며 인내심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소개했다. 넘어지지 않는 법을 찾기보다 넘어지고서도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의지력을 길러야 한다는 조언이다.

강연을 들은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유정민씨는 “우리는 운동만을 위해 다걸기(올인)하는데 그건 이 시대에 바람직한 스포츠 인의 모습이 아니다”라며 “독서를 하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생각을 하면서 플레이 하니까 창의적인 퍼포먼스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경기고등학교 야구부에서 포수를 하고 있는 오승현(17)군은 “지혜가 많아야 슬럼프가 왔을 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꿈에 대한 책을 많이 찾아 읽고 싶다”고 말했다.

이밖에 학생들을 위해 특별한 독서 환경을 조성한 초등학교도 있다. 서울 관악초등학교에서는 24일부터 28일까지 운동장 한 구석에 ‘독서 텐트’ 4개 동을 설치해 운영한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책을 비치해두고 학부모로 구성된 ‘텐트지기’가 하교하거나 운동장에서 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서울교육연구정보원은 아예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마련해 인문학 공부 열풍을 지원한다. 초중고교 학생들이 도서관 자료를 검색하고 독서토론과 독서동아리를 조직해 활동할 수 있도록 관내 모든 학교에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교육부에서는 29일까지 세계인문학포럼을 개최한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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