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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메모에… 여야, 입장 바뀐 '특검 밀당'

입력
2015.04.1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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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불러 온 '성완종 리스트' 태풍이 정치권을 강타하는 와중에 정치권에서는 '특검 (특별검사) 밀당'이 한창입니다. 정권 실세가 연루된 게이트 등 주요 사건이 있을 때 여야가 특검 실시를 두고 옥신각신한 것이야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번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요. 보통 야당이 "특검 실시"를 주장하며 공격의 날을 세우고, 여당은 "검찰 수사가 먼저, 특검은 나중에 필요하면"이라며 방패로 수비에 나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야가 창과 방패를 서로 맞바꿔 들었습니다. 새누리당이 "특검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어찌 된 영문일까요. 성완종 리스트의 파문이 어디까지 미칠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여야는 치열한 머리싸움을 하고 있고, 특검 밀당은 그런 수싸움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먼저 특검을 하자는 새누리당 쪽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검찰 수사로도 국민적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이 먼저 나서서 특검을 요구하겠다"며 "국민이 요구한다면 특검을 피할 이유가 전혀 없고 피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흘 전인 12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검찰 수사에 외압이 없도록 책임 지겠다"며 '검찰 지킴이'를 자임했던 김 대표가 사흘 만에 공개적으로 '특검 실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인데요. 물론 새누리당도 공식적으로는 '검찰 수사 뒤 특검'을 기본 방침으로 정해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새누리당이 특검 실시에 대해 공세적으로 나서는 것은 성완종 리스트의 파장을 최소화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성완종 리스트에 언급된 여권 실세 정치인들을 감싸느라 소극적으로 나선다는 비판을 감안 정면 돌파의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면서 그 파장이 미칠 시간을 최소화 하겠다는 것입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시신 상의에서 발견된 메모가 11일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 메모에는 '허태열 7억,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김기춘 10만불, 이병기, 이완구'란 글자와 '김기춘 10만불'이란 글자 옆에 '2006.9.26日 독일 벨기에 조선일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조선일보 제공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시신 상의에서 발견된 메모가 11일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 메모에는 '허태열 7억,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김기춘 10만불, 이병기, 이완구'란 글자와 '김기춘 10만불'이란 글자 옆에 '2006.9.26日 독일 벨기에 조선일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조선일보 제공

반면 새정치연합은 '성완종 리스트'의 파장이 최대한 오랫동안, 가능한 멀리까지 퍼지기를 바라고 있는데요. 새정치연합도 일단 겉으로는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 핵심 관계자는 "계속 새로운 팩트가 나오고 이완구 총리 등 당사자는 물론 정부ㆍ새누리당을 동시에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특검 정국으로 넘어가면 특검 선정 등을 두고 여야의 공방이 이어지고 이 경우 성완종 리스트의 선명성이 떨어지고 여야의 정치 다툼으로 비치면 국민 관심도 멀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특검이 이뤄질 경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야당을 머뭇거리게 하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2월 국회를 통과한 특별검사에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검사 5명의 수사팀이, 최대 90일 동안 수사를 해야 하는데 이는 현재 검찰이 꾸린 수사팀(검사 10명)보다 규모도 적은데다 워낙 수사할 내용이 많고 복잡한 사건이라 이 기간 동안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당 관계자는 "특검을 하더라도 검찰 수사를 먼저 하면 뭐라도 조금 더 밝혀지고 시간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특검을 하더라도 상설 특검이 아닌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특검 문제와 관련해 "특검이 필요하면 하는 데 하려면 제대로 된 특검을 해야 한다"며 "세월호 협상 때에 봤듯이 권력의 핵심 측근들에 대한 사안인 만큼 고도의 중립성 있는 특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설사 특검을 가더라도 새누리당이 특검 실시에 집착하는 상황을 충분히 활용해 야당 추천 특검을 요구해 관철시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성완종 리스트'를 둘러싼 여야 수뇌부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성완종 리스트'를 둘러싼 여야 수뇌부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처럼 특검을 두고 여야가 복잡한 셈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결국 시간 싸움이라고 정리될 수 있겠는데요. 평소 검찰을 못 믿겠다고 비난만 하던 새정치연합이 "일단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자"거나 "검찰 수사에 압력을 행사하려고 하느냐"며 '검찰의 바람막이' 역할까지 자임하는 것은 성완종 리스트의 생명력을 늘리기 위한 전략입니다. 반면 특검이라면 질색하던 새누리당이 특검 실시를 외치는 것은 그 생명력을 줄이기 위한 계산인 것이죠. 그런데 다른 한 가지. 새누리당이 "야당이 요구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면서 특검 실시의 공을 새정치연합 쪽으로 돌린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새정치연합 핵심 관계자는 "새누리당 역시 특검 실시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시간을 끌게 되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이 관계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잘 한다면 특검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요. 새정치연합이 언제든 특검을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데요. 이것이 바로 새누리당의 머리를 더 복잡하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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