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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에 더 쓸쓸한 ‘산재치료 사각지대’의 탄광근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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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에 더 쓸쓸한 ‘산재치료 사각지대’의 탄광근로자들

입력
2016.12.20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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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여성 광부, “어깨힘줄 광범위파열 치료시기 놓쳐 불구의 몸 될지도”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광부들과 면담 통해 산재진단 치료 발벗고 나서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박용일 고문(왼쪽)이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두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고 치료중인 광산근로자 전정식 씨를 문병하고 있다.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박용일 고문(왼쪽)이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두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고 치료중인 광산근로자 전정식 씨를 문병하고 있다.

◇탄광근로자들에게 난방용 연탄 전달하기도

12월 중순의 서울 건국대병원(서울 광진구 능동로). 마침 흰 싸라기 같은 눈발이 한풍(寒風)에 실려 병실 창가를 맴도는 풍경이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를 연출하기엔 안성맞춤의 날이다.

하지만 입원 환자들에게 겨울눈과 추위는 그리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특히 손발이 부자연스러운 정형외과 환자들에게는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셈이어서 더 고역이다.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강원도 태백시 태백진폐복지회관) 박용일 교육고문이 건국대병원에 입원해 있는 탄광근로자 출신 정형외과 환자들을 찾아 나선 길에 기자가 동행했다.

박 고문은 과거 국회에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진폐증 환자들은 물론 탄광근로자들의 산업재해 질병을 조속히 치료해 직장과 가정,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매년 연말이 되면, 외롭게 투병 중인 탄광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의 겨울나기를 위해 적지 않은 난방용 연탄을 전달하는 ‘기부천사’이기도 하다.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오경수 교수. 노동 강도가 심할 만큼 팔과 어깨를 많이 쓰는 광산근로자들의 건강관리는 우선 규칙적인 검진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오경수 교수. 노동 강도가 심할 만큼 팔과 어깨를 많이 쓰는 광산근로자들의 건강관리는 우선 규칙적인 검진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어깨와 손목 힘줄 파열은 광부의 고질병”

박용일 고문의 안내로 정형외과 입원실에서 만난 전정식 씨(64. 강원도 태백시)는 1983년부터 꼬박 30여년의 세월을 지하갱도에서 살며 1남5녀를 키워 왔다. 2014년10월 박 고문과 상담한 후 산재진단 절차를 밟을 수 있었고, 산재환자로 판정받아 지금까지 벌써 두 번째 수술을 받고 치료중이다.

“이 분은 석탄채굴 갱내에서 착암기와 로카쇼벨(탄과 암석 등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적재기) 작업을 계속 해오셨습니다. 그 장비들의 진동으로 어깨 회전근개가 파열되어 작년 3월에 봉합수술을 받았고, 이번에는 추가 팔꿈치 수술을 받고 치료중입니다.”

박 고문의 설명이다. 어깨 회전근개는 어깨를 움직이는 중요한 4가지 힘줄을 말한다.

아무리 강하게 박은 말뚝이라도 외부 압력으로 여러 차례 흔들리면 고정 틈새가 벌어져 빠지게 되듯이, 광부들이 온 몸이 흔들릴 정도로 진동이 심한 착암기를 메고 굴착작업을 하거나, 로카쇼벨(적재기) 등으로 반복적인 작업을 할 경우 대부분 어깨 근육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

“수술 전에는 손도 어깨도 아파서 숟가락을 제대로 들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산재치료가 뭔지도 몰라 퇴직 후 내내 고생만 했지요. 그러다 탄광 동료들이 박용일 고문님을 만나보라고 해서 2년 전 태백시내에 있는 협회(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를 찾아가 상담을 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안내해 주셔서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전정식 씨의 부인 강계순 씨(57)의 말이다. 박 고문은 “어깨와 팔, 손목 부위의 힘줄 파열은 광산근로자들의 고질병이라고 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그만큼 쉽게 걸린다는 얘기.

지하 채광작업이 완전 기계화 되지 않는 이상 광부들이 손으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반복 작업에 의한 근육파열 등의 ‘직업병’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손저림이 심한 손목터널증후군과 레이노드증후군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태백탄광 산재환자 이태영 씨가 오경수 교수로부터 진료를 받고 있다.
손저림이 심한 손목터널증후군과 레이노드증후군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태백탄광 산재환자 이태영 씨가 오경수 교수로부터 진료를 받고 있다.

◇아픈 몸 이끌고 노후준비 나설 수도 없어

역시 박용일 고문의 안내로 정형외과 입원실에서 만난 광산근로자 이태영 씨(51. 강원도 태백)도 어깨수술 후 투병중이다.

“착암기로 갱도가 뚫리면 레일을 깔기 위해 아이빔(I자 형으로 생긴 철골 구조물)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온 몸이 망가졌습니다.”

슬하에 2남2녀를 둔 가장으로 앞으로 더 벌어야 하지만, 몸을 지탱할 수 없어 3년 전인 2013년에 탄광을 나와야 했다. 그 후 협회에서 박용일 고문과 면담한 후 관련절차를 거쳐 손저림이 심한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산재환자 승인을 받고, 건국대 병원에서 수술도 받게 됐다.

손목터널증후군은 목에서 손으로 내려오는 세 개의 큰 신경이 팔꿈치나 손목 등 중간에서 압박돼 나타나는 손저림 증상의 일종. 손가락과 손목 힘줄을 싸고 있는 막이 붓거나 딱딱한 수평인대 압박으로 신경이 눌려 나타나는 증상이 가장 흔하다고 한다.

이태영 씨는 여기에 레이노드증후군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겨울철에 특히 손시림이 심해 밤잠을 설칠 정도인데, 심한 통증이 수반되는 레이노드증후군으로 확대되면 손끝이 썩게 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날을 생각하면 더 힘이 빠집니다. 산재환자로 최종 진단을 받으면 근무당시 평균임금의 70%에 해당되는 휴업급여를 당분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살림살이 유지나 노후준비에 크게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근무했던 탄광 작업장은 특히 갱도 높이가 낮아 빈 몸일지라도 늘 고개와 허리를 숙이며 다녀야 했던 곳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거운 아이빔을 어깨에 메고 땅굴 속을 다니며 작업을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온 몸이 무기력할 정도로 통증을 느껴야 했다.

또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빔을 지탱해주던 허리 다리 허벅지 등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 결국 회사를 나와야 했다. 이후 지금까지 손목과 어깨 수술로 이어지는 투병생활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정기총회(10월31일.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 회원들에게 업무상 질병 산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박용일 교육고문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정기총회(10월31일.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 회원들에게 업무상 질병 산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박용일 교육고문

◇“5년에 한 번이라도 반드시 정기검진 받아야”

태백탄광 근로자 이태영 씨(중앙)를 상담 중인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오경수 교수(왼쪽)와 협회 박용일 고문
태백탄광 근로자 이태영 씨(중앙)를 상담 중인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오경수 교수(왼쪽)와 협회 박용일 고문

이들을 진료하고 있는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오경수 교수는 “어려운 환경에서 근무하는 탄광 근로자일수록 정기적인 검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원도 태백 등 탄광지역에서 진단과 치료를 위해 본 병원 정형외과에 찾아오는 환자들 대부분은 어깨 회전근개 파열, 팔꿈치 통증, 관절염 등의 질환입니다. 이것들은 초음파 검사나 X-레이 촬영으로 간단히 진단을 받을 수 있지요. 그러니 아무리 바쁘더라도 최소한 5년에 한 번씩 규칙적인 검진을 받는다면, 수술치료 할 만큼 심하게 손상되는 경우는 피할 수 있습니다.”

오 교수의 말이다. 정형외과를 찾는 광산근로자가 한 달 100여명이나 되고, 그가 진료를 담당한 후 지난 2년 동안 수많은 환자들과 만났지만 정기적인 검진을 받았다는 광부는 별로 없었다는 것.

그중 가장 안타까운 환자는 강원도 지역에서 온 60대 여성 광부. 진단 결과 ‘양쪽 어깨힘줄 광범위 파열’이었다. 병원에서 파열 정도를 소, 중, 대로 구분하는데, ‘대’보다도 큰 것이 바로 ‘광범위’ 파열이라는 설명이다. 여성의 몸으로 어떻게 저런 상태까지 이르렀는지 안쓰럽기만 했다는 것.

“제가 알아보니 일만 강요하는 독한 상관을 만났다는 군요. 또 그 여성분 자신도 몸을 안 사리고 일하는 성격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두 가지 이유로 인해 결국 몸을 망치게 된 것이지요.”

60대 여성 광부를 병원으로 이끈 박용일 고문의 말이다. 그녀는 지난해 말 관절내시경 수술로 1차 힘줄 부분봉합 수술을 받았고, 금년 6월에 2차 수술을 받았지만, 완전봉합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일 만큼 이미 적정수술 시기를 놓치고 만 경우다.

오 교수에 따르면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치료의 방법은 현재 인공관절 수술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70세 이후에나 권할 수 있는 시술이기에 더 염려가 된다.

인공관절의 수명이 10년이고, 한 번 수술한 부위를 다시 재수술 할 수 없기 때문. 따라서 그녀가 현재 인공관절 수술을 한다면, 그녀가 70세가 되는 나이부터는 어깨와 팔을 쓸 수 없는 불구자가 될지도 모른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인공관절 수술의 의료보험도 70세 이후에나 적용시키고 있다는 것.

정부는 에너지자립 인력확보를 위해 1960년대 말부터 탄광근로자들에게 ‘산업전사’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60대 여성 환자처럼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산업전사’들이 아직도 많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래서 그런지 광부환자들을 위해 병원 입퇴원 수속은 물론 재활계획까지 돕고 있는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박용일 고문의 하루 일정은 빡빡했다.

정부가 전국 탄광의 문을 완전히 닫겠다고 선언한 2023년 이후에는 협회의 이 같은 작업이 끝나게 될까?

그렇지가 않다. 탄광 산재환자가 존재하는 한 계속된다. 병들고 부상당한 광부들의 산재처리 기간은 이들의 생존기간 내내 이어지기 때문이다.

유승철 뷰티한국 편집위원 cow242@beauty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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