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고] 경제활력을 높이는 골든 타임

입력
2017.12.04 14:43
29면
0 0

며칠 전 출근길에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 차를 갓길에 세워 길을 비켜준 적이 있다. 주변의 차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출근시간이면 항상 붐비는 부산의 도로에서도 생사의 기로에 있을 누군가의 골든 타임에 맞추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운전자들이 길을 양보하는 모습은 초겨울의 추위를 잊게 할 만큼 훈훈했다.

모든 일에는 골든 타임이 있다. 적절한 시기를 놓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율곡 이이는 1569년 ‘동호문답(東湖問答)’을 통해 임금이 된 선조에게 다음과 같이 충언했다. “약을 쓰면 사는 길을 볼 수 있을 것인데 약을 쓰지 말고 저절로 낫도록 기다리자고 하거나 무슨 약을 써야 할지 몰라 한 가지 계책도 베풀지 않으면 위험한 증세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율곡은 위중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처방을 해야 하는 것처럼 국가도 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위해 과거의 제도와 관습에 얽매이지 말고 시대에 따라 변통해 백성을 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율곡의 충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경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저성장 그늘과 정책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ㆍ취약계층은 더 추운 곳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장기소액연체자 재기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1,000만원 이하의 채무를 10년 이상 갚지 못하고 있는 최대 150여 만 명의 장기소액연체자의 채무부담을 없애주기로 했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빚은 갚아야 한다는 시장경제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재산이나 소득이 없어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장기연체의 굴레를 쓰고 정상적인 경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소중한 재기의 골든 타임을 제공하자는 취지다. 특히 빚을 갚을 의지가 있어도 고령이나 질병 또는 장애 등으로 빚 갚을 여력이 없어 오랜 기간 채무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온 이들이 당당한 경제 주체로서 공존할 수 있도록 국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의 취지와 효과를 살리기 위한 분명한 전제조건은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을 선별하고, 도덕적 해이를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거나 이미 빚을 상환하고 있는 성실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당장은 장기연체채무자들만 혜택을 본다고 여길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정상적 경제 주체를 늘려 우리 경제의 활력을 높이고 포용적 금융을 실현시키는 경제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정책이 공정성과 형평성을 갖춰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정책 집행 과정에서 대상자를 철저하게 선별하고 재산이나 소득 등 상환능력을 면밀히 검토하는 등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자산관리공사 역시 국세청, 국토교통부 등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지원대상자 각각의 재산보유 현황과 소득을 면밀하게 확인해 빚을 갚을 여력이 있으면서도 혜택을 받는 일은 근본적으로 차단할 계획이다.

이번 대책을 통해 빚으로 고통 받는 장기소액연체자의 재기지원은 물론 우리 경제가 다시금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우리 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문창용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