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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

입력
2014.04.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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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도 믿어지지 않고,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을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 PC방의 게임비를 지불하고,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아이를 아사 혹은 병사시킬 정도의 경제 수준은 아니었을 것으로 예상해 본다. 2~3일에 한 번씩 방문해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아이의 시신 든 가방을 들고 거울을 보며 차분히 맵시를 다듬고, 허위신고를 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을 바꾸어가는 모습은 정신병 환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학대 치사, 시신유기, 면피를 위한 허위신고를 한 22세 정모씨는 아이의 친아버지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더욱 무거워진다. 어떻게라도 설명해야 하는 이 사건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 것인가. 무엇이 그의 부성(父性)을 하나도 남김없이 증발시켰으며, 친아들의 시신을 유기한 후에도 곧장 그 발걸음을 PC방으로 향하게 하였을까? 경찰의 수사 내용과 언론의 보도 내용에는 22세 정모씨의 인터넷 게임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수사 발표에서 22세 정모씨가 몰두하던 게임은 역할 수행게임과 일인칭 슈팅게임이었다.

남편으로서의 역할, 아버지로서의 역할, 한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저버리고 그가 몰두해 있던 것이 역할수행게임(RPG)이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혹, 게임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이 현실에서의 역할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해리성 마비(Dissociative anesthesia), 혹은 중독성 변신(Addictive metamorphosis)이라 한다. 중독된 상태에서는 자신과 경험에 대한 인지적, 정서적, 감각적 변형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마법적 환영의 나만의 판타지’로 탈출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 현실에 대해서는 심리적 내성(psychological tolerance)을 키우면서 점점 자신만의 판타지로 깊이 들어가 현실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22세 정모씨도 자신이 얼마나 현실에서 멀리 떠나왔는지를 보며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사람들의 관심은 또 22세 정모씨에 대한 양형으로 향할 것이다. 기사에 대한 뜨거운 반응도 엄한 처벌을 기원하며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큰 돌을 골라 던지는 댓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의 반응은 이 사건을 차갑게 되짚어보며 우리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것은 분명 22세 정모씨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살한 사람에 대하여 심리적 부검을 하듯이 22세 정모씨의 무섭고도 끔찍한 행동과 판단에 영향을 준 모든 요인을 명확히 따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예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물론 게임중독이라는 한가지 문제가 게임 속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이 사건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이 사건을 전하는 기사들의 제목은 빠짐없이 ‘게임중독’을 말하지만, 기사의 내용이나 결론에서 게임 중독에 대한 예방과 치료 및 안전체계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룬 기사는 발견하기 어렵다.

부모의 중독은 자녀에 대한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

피상적인, 불필요한 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중독자에 의한 피해, 그리고 중독자의 피해에 대한 이야기다. 22세 정모씨와 같은 중독자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고민하고 치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부모의 중독은 필연적으로 자녀들에 대한 학대와 방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다시 확인했다.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현실을 언제까지 묵도만 할 것인가? 적어도 “게임이 주범이 아니다”는 게임업계와 관련 정부부처, 일부 정치인들의 부적절한 흑백논리에 밀려 더 이상 문제가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보건과 안전을 우선하여, 중독 자체에 대한 예방과 치료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이제는 필요하다. 그것이 또 다른 22세 정모씨에 대한 소식을 듣지 않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다. 이제는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또는 당장 경제적인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착시가 일더라도 중독의 폐해를 직면해야 할 때다.

박준현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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