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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성찰적 규제와 민영화가 필요한 이유

입력
2014.09.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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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동요가 있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사람 비켜가세요.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며칠 전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바로 보행자 앞까지 와서 마지못해 서는 고급승용차를 보았다. 그 순간 어렸을 때 배웠던 그 동요가사가 떠올랐다. 시커멓게 선팅을 해서 안을 볼 수도 없는 차 안에서 그 사람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우리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동요가사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그래서 그렇게 횡단보도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키라고 바짝 차를 들이댔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지만 결론은 씁쓸했다. 세발자전거를 타면서도 내 앞의 약한 사람에게 비키라고 ‘명랑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살아온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조금만 가진 것이 있어도 그것을 남에게 휘두를 줄은 알지만 남을 배려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무한경쟁, 승자독식 사회가 그냥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교통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운전을 한다. 내가 그 사람을 언제든지 해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잊는다. 그 사람이 내 앞에서 비켜주기만을 요구하는 태도를 어렸을 때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능력, 지위, 수단, 권력에 다른 사람들이 순응하고 적응하도록 요구는 하지만, 혹시라도 나의 생각과 행동 때문에 그 사람들이 상처받을 수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성찰은 잘 하지 않는다.

요즘 여러 분야에서 규제 개혁, 민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랜 군사독재정권을 겪으면서 국가의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고 민간의 참여를 넓히는 개혁은 민주화 과정의 정책 어젠다로서도 역사적 의미도 갖는다. 사실 본격적인 규제 개혁, 민영화는 민주화 과정과 더불어 시작됐다. 지금도 대통령 앞에서 직언하는 규제의 적폐 사례는 대개의 경우 누가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빨리 사라져야 한다. 공무원이 규정에 얽매여 미적거리는 동안 긴급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 간 진행되어온 규제 개혁, 민영화 과정을 성찰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뭔가 할 수 있을 때 내 앞에서 걸리적거리는 저것을 빨리 치워야 하는데…”라는 식의 규제 개혁, 민영화는 아닌지 생각해보자. ‘누구였든지 간에 대통령이 이야기하니까 비는 피하고 보자. 양적 성과는 내고 보자’라는 양적 차원 성과위주 규제 개혁이 관료사회의 흐름은 아니었던가? 국가의 공적기능을 민간 영리시장에 팔아 넘김으로써 실제 국가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대중이 비를 철철 맞게 하는 민영화는 아닌가?

강화해야 할 규제와 완화ㆍ철폐해야 할 규제가 무엇인지 사회적 논쟁을 장기적 관점에서 해본 경험이 우리에게는 없다. 측근의 자문, 관피아 관계에서 생성된 이해관계, 때로는 개인의 정치적 신념 등이 토대가 되어 대통령의 입에서 방향 제시가 나왔다. 그러면 밑에서 부산하게 관료들이 2, 3년 움직이다 만 것이 지금까지 모습이다. 민영화 논의는 시장만능주의를 금과옥조로 전제하면서 진행됐고 지금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의료의 공공성 강화는 뒷전이고 상위 10%가 누릴 수 있는 의료서비스 전달체계 민영화만 정책 어젠다로 등장할 뿐이다. 성형수술 수준은 세계 최고일지 몰라도 아이의 이마가 찢어지면 상처를 꿰매줄 의원을 찾아 헤매야 하는 사회가 됐다. 세계 최저 출산율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아이를 안심하고 낳을 수 있는 산부인과는 돈이 안되기 때문에 문을 닫고 있다.

우리사회는 지금 위대한 정치인을 필요로 한다. ‘위대함’, 그리 거창한 것 아니다. 힘없는 노인 입장에서는 자전거를 탄 아이가 비키라고 따르릉 소리를 내도 매우 위협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권력이, 내가 내리는 지시가, 내가 신앙처럼 받들고 있는 시장만능주의가 권력ㆍ돈ㆍ지위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위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성찰을 늘 하면서 정치를 하고 정책을 만들면 위대해 질 것이다. 그런 사람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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