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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보리스 존슨과 반혁명

입력
2016.07.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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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비극이었다가 나중에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있다. 역사가 반복된다면 이런 일의 다음 주인공은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일 것이다. 변신의 귀재인 그는 우리 시대의 모순을 상징한다. 존슨은 1%의 특권을 갖고 자란 이들의 호민관이자 국경 폐쇄운동을 했던 이민자의 아들이고 정치 질서를 뒤집길 원하는 보수당원이며 전문 지식을 우습게 아는 박학자에 흑인을 ‘피카니니(흑인을 비하하는 용어)’라 부르는 세계주의자다. 유럽 내 영국의 미래를 매장시키는 데 그는 누구보다 큰 역할을 담당했다.

외무장관 임명 후 첫 공개석상에서 존슨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투표를 프랑스혁명에 비유하며 “민주주의를 실현할 자격도 없으며 답답하고 관료주의적인 구식 정권에 맞선 위대한 민중봉기”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과거의 영국을 재현하겠다는 브렉시트 투표는 오히려 반혁명적이다. 보리스와 브렉시트 찬성 진영은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었던 당통이나 로베스피에르를 닮았다기보다 새로운 군주제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 공화국을 뒤엎은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닮았다.

EU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진보적 이상을 구현하려 한다. 자유, 평등, 박애의 3대 정신을 구체적 형태로 옮겨놓은 것이 다양한 분야의 권리와 규정을 다루는 8만쪽에 이르는 법규다. 그 덕에 그리스, 스페인, 에스토니아, 폴란드 등 여러 국가들이 전제정치에서 민주주의로 옮겨갈 수 있었다.

EU는 개인의 권리, 국제법, 주권 공유를 발전시켜 여러 국가들이 함께 살 수 있는 혁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반혁명의 결과로 EU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EU가 애초에 뜻했던 것처럼 세계를 새롭게 만들기는커녕 이웃국가들이 자국의 혼란을 유럽으로 전파시킬까 겁을 내고 있다. 상호의존은 오히려 유럽 내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유럽식 사고는 대륙 내에서 정치적 대립의 초점이 됐다.

실제로 오늘날 유럽이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영국의 EU 탈퇴가 아니라 나머지 27개 회원국이 약해지고 분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불안정, 문화적 불안, 정치적 소외 같은 문제를 새로운 정치 세력은 자기들에게 이로운 쪽으로 악용한다. 또한 국민투표를 이용해 정치적인 문제를 민중과 이기적인 엘리트들 사이의 대립으로 몰아간다. EU가 분열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러 국가들이 국민투표를 실시할 뜻을 내비치고 있어 EU의 몇몇 결정은 위협을 받고 있다. 일례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난민할당제를 놓고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프랑스에서 ‘파견노동자 지침(사용자가 파견노동자에게 현지 국가의 최저 임금 이하로 지불하는 것을 허용하는 지침)’은 실행되지 않을 듯하다. 각각의 사안들은 EU를 여러 개의 작은 그룹으로 분열시키고 있다. 유로화는 유럽을 북과 남으로, 우크라이나와 난민위기는 동과 서로 분열시켰다.

유럽통합 지지자들은 EU 회원국들이 갖고 있는 불만의 원인들과 씨름하며 유럽의 이상을 어떤 형식으로 실현할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EU는 상호의존을 통해 갈등을 줄인다는 기계적인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 시장공동체, 유로화 등으로 유럽을 서로 연결시키고 이로써 전쟁을 막으려 했다. 실제로 유럽에서 전쟁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됐고 EU는 부유해졌다. 그러나 유로화든 자유로운 국가 이동이든 테러든, 상호의존에 대한 반발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EU를 위기에서 구하려면 유럽이 서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한 것이라고 사람들이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유럽 내에서 이주가 자유로워져 부담을 안게 되는 국가가 있다면 이러한 것으로 생기는 경제적 혜택을 다시 분배해줘야 한다. 테러에 맞서기 위해서는 국경 통제와 협조를 강화해야 한다. EU 기관들의 원래 역할이 EU의 세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브렉시트 위기를 계기로 EU 회원국들은 그 동안 유럽이 추진하던 것들을 다시 구상할 수 있게 됐다. EU 회원국들이 이를 성공적으로 이뤄낸다면 영국은 다시 EU에 합류하려 할 것이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원하는 건 당연히 이런 게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과거의 세계를 재현해낼 것 같지도 않다.

마르크스는 나폴레옹의 반혁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혁명을 통해 한층 강화된 힘을 갖게 됐다고 믿던 민중들이 결국 자신들이 시계를 과거로 되돌려놓았다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된다.” 구체제의 독재를 전복시킨 게 아니라 ‘수백 년간 투쟁해 얻어낸 권리’를 내팽개치고 말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얘기인데 브렉시트 지지자들도 이렇게 될지 모른다.

영국이 경기침체에 깊게 빠지고 EU 탈퇴 운동의 공약을 이행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많은 투표자들이 단일 시장 또는 EU에 머무르길 원하게 될 것이다.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진영에서 이런 식의 입장 변화는 대부분 불가능할 것이다. 이들은 경제 쇠퇴 위협보다 독립적인 결정권을 되찾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존슨은 유럽을 문화적으로 편하게 느끼는 것 같고, 자신이 이끌었던 EU 탈퇴 운동에 대해서도 종종 애매한 입장을 드러내는 듯하다.

자신이 했던 발언들의 족쇄를 교묘히 피해가는 존슨의 능력은 탈출 마술의 전설인 해리 후디니가 봤더라도 감명 받았을 것이다. EU가 개혁에 성공하고 영국의 경제적 문제가 심화한다면 단단해 보였던 모든 것이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특히 EU에 대해 회의적인 존슨의 생각이 그렇게 될 것이다.

마크 레너드 유럽외교관계협의회 집행이사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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