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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밥 먹는 20가지 방법

입력
2016.09.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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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의 계절이다. 곳간에 알곡이 넘쳐나도 문제다. 우리 식생활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다. 게티이미지뱅크
추수의 계절이다. 곳간에 알곡이 넘쳐나도 문제다. 우리 식생활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다. 게티이미지뱅크

밥이 맛이 없다. 밥이 맛이 없으니 어제 먹은 제육백반 대신 오늘은 파스타 정식이나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쌀밥을 대신할 선택지는 입맛의 글로벌화와 함께 점차 다양해지니 국가적으로 쌀 소비량이 줄어들어 큰 일이라고 한다. 또 쌀밥이 주식이 되고 거기에 갖가지 반찬과 국, 탕이 곁들여지는 것이 한국 전통의 식문화인데, 그것이 파괴돼 큰 일이라고 한다. 생활이 전통을 따라가기가 힘들어 큰 일이다. 굳이 혼자, 많아야 셋이 먹겠다고 밥을 짓고 밑반찬을 해놓느니 일품요리 하나 해서 때우는 게 맘 편하다. 즉석밥도 있고 냉동실에 얼려둔 밥도 있지만 점차 손이 덜 간다. 밥이 맛이 없어서 큰 일이다.

밥이 왜 맛 없는지는 근심하면 할수록 골치 아픈 문제다. 밥을 위해 할 수 있는 유효한 행동이 실상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이것저것 다 해보지만 결국은 쌀 구입에 더 많은 지출을 하는 것 말곤 뾰족한 수가 없다. 형편 없는 밥맛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같이 문제를 찾고 변해야 할 문제다. 이럴 때 소비자는 소비 형태를 바꿔 시장에 변화를 촉구하며 끝없이 요구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쌀밥은 왜 맛이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식단에서 외면 받는 품목이 됐을까? 맛있는 밥을 위해 알고 싶은 20가지를 검증해가다 보면 그 답도 나온다.

갓 해서 잘 뜸들인 밥을 바로 퍼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 오래 두면 전분이 노화되어 딱딱해지는데 다시 가열하면 말랑한 질감을 되찾는다. 게티이미지뱅크
갓 해서 잘 뜸들인 밥을 바로 퍼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 오래 두면 전분이 노화되어 딱딱해지는데 다시 가열하면 말랑한 질감을 되찾는다. 게티이미지뱅크

맛있는 밥을 위해 알아야 할 20가지

(1)식당 밥은 운영 효율을 위해 뚜껑 있는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미리 담아 온장고에 보관했다가 그때그때 내놓는다. 효율 대신에 맛을 포기했다. 밥은 온도만이 아니다. 미리 담아둔 밥은 전분이 노화되고 향을 잃는다. 언제나 더 맛있는 밥이 고프다. 그래서 무슨 수든 쓴다. (2)그때그때 밥을 지어 바로 퍼 담아 주는 집을 둘러 둘러 찾아 가거나(종로라면 ‘일미식당’이나, 인사동으로 올라가 ‘부산식당’), 점심시간 직전 시간, 갓 된 밥을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담고 있을 때를 노려 밥솥에서 갓 푼 밥을 받고야 만다. 이렇게 밥을 주는 식당을 만나면 밥맛이 좋아서 남길 일이 없고, 양이 적은 사람은 일률적으로 퍼둔 한 공기를 받아 남기는 대신에 처음부터 반만 달라 주문할 수 있어서 또 남길 일이 없다. (3)1인용 가마솥에 그때 그때 지어 나온 밥을 내세운 식당이 199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그나마 다행이다.

(4)“맛있는 밥의 조건은 대체로 이렇다. 기름기 자르르 흐르고 촉촉한 물기가 배어 있어야 한다. 냄새를 맡았을 때 구수하고 달콤한 향이 나며, 입 안에 넣었을 때는 밥알이 낱낱이 살아 있음이 느껴지고, 혀로 밥알을 감았을 때 침이 고이면서 단맛이 더해지며, 살짝 씹을 때는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게 이 사이에서 기분 좋은 마찰을 일으켜야 한다.” 맛있는 쌀밥에 대한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정의(‘미각의 제국’ 중)다.

왼쪽 두 번째가 아보리오, 세 번째가 자포니카,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현미, 맨 오른쪽이 인디카다. 왼쪽 첫 번째와 가운데는 야생쌀 계열. 게티이미지뱅크
왼쪽 두 번째가 아보리오, 세 번째가 자포니카,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현미, 맨 오른쪽이 인디카다. 왼쪽 첫 번째와 가운데는 야생쌀 계열. 게티이미지뱅크

(5)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끼리 하는 말이다. 이 입맛은 전 세계의 대세가 아니다. 장립종인 ‘인디카’가 전 세계 쌀 생산량의90%를 차지한다. 아밀로오스 전분이 많아 딱딱하고 부슬부슬하게 날린다. 아밀로오스 전분이 쌀알 조직을 단단하게 잡고 있어 물을 많이 써서 오래 조리해야 한다. 흔히 부르는 이름은 안남미다. 안남은 중국이 베트남을 부르던 이름이라 풀어 해석하면 ‘베트남 쌀’이다. 동남아, 중동, 인도의 인구가 주식으로 먹는다. (6)우리가 먹는 쌀인 ‘자포니카’는 고작 중국, 한국, 일본의 주식일 뿐이다. 아밀로오스 전분이 상대적으로 적어 찰기가 있고 좀 부드럽다. 상대적으로 적은 압력과 수분으로도 밥이 된다. 국내에선 농촌진흥원에서 개발한 논벼 품종만 357종이다. (7)중립종 자포니카에 파에야, 리소토 등에 사용하는 ‘아보리오’ 등 유럽의 쌀도 있다. 흔히 파에야용 쌀이라고 해서 파는 것이다. 일반 쌀로 리소토를 하면 맛이 덜하다.

(8)눈을 감고 밥 맛을 보면 쌀에서는 풀, 버섯, 오이, 기름, 팝콘, 꽃, 옥수수, 건초, 동물 등의 향이 난다. 그 중 가장 구미를 당기는 향은 팝콘 향인데 ‘향미’엔 팝콘 향을 내는 성분이 유독 많다. 아세틸피롤린이라는 이름인데, 이름보다는 오래 익히면 순식간에 휘발된다는 점만 기억하자. 그래서 향미를 조리할 때는 오래 불렸다가 단시간에 밥을 짓는 것이 좋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향미로는 인도 ‘비스마티’, 태국 ‘재스민’, 미국 ‘델라’ 등이 있다. 물론 한국에도 있다. 농총진흥원에는 ‘설향찰’, ‘미향’, ‘아랑향찰’, ‘향미2호’, ‘향남’, ‘향미1호’ 등 6종이 등록돼 있다. (9)북미엔 토착 품종의 야생쌀이 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쌀이 아니라 명절에 가끔 보는 쌀의 친척뻘이다. 한국의 야생미도 있기는 하지만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이라면 다를 수도 있겠다.

도망간 밥맛 되찾는 기본기

(10)우선은 돈 안 드는 방법으로, 집에 있는 쌀로 맛있는 밥을 해보자. 먼저 잘 씻을 일이다. 쌀은 건조된 상태로 보관한다. 밥이 되기 위해 적당한 수분을 흡수시키는데 씻을 때 많은 부분이 흡수된다. 생수로 쌀 씻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쌀 씻는 데에 생수를 꼭 쓰겠다면 그건 꼭 첫 물이어야 한다. 예전 쌀에는 돌도 섞여 있었지만 요즘은 도정 기술이 좋아져 쌀을 과하게 박박 문지를 필요가 없다. 손 끝을 세워 한 방향으로 돌리면서 손가락으로 씻긴다. 이때 물은 쌀이 푹 잠길 정도로 쓰지 않아도 무방하다. 오히려 혼탁한 물을 자주 따라내면서 조금씩 보충하는 식으로 씻는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씻으면 새어 나온 여분의 전분이 충분히 제거됐다는 의미다. (11)불리는 시간은 보통 30분을 잡지만 30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쌀의 상태에 따라 가감이 필요하다. 1시간 이상일 필요는 없다.

(12)밥 짓는 도구로는 전기밥솥, 압력밥솥, 일반 냄비, 돌솥, 가마솥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허나 밥 짓는 법의 원리는 하나다. 열과 수분, 그리고 냄비 안 공기의 압력을 이용해 쌀이 밥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솥 안에 열이 고르게 퍼져야 하고, 물은 적정해야 하며(쌀 부피의 1.2배 선에서 쌀의 상태와 취향에 따라 가감한다), 뚜껑을 꽉 닫아 압력이 낮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13)여기서 잠깐. 가을철이라 전국 각지에서 본격적인 추수에 나섰다. 예전부터 우리는 햅쌀을 최고로 쳤다. 과연 햅쌀은 묵은쌀보다 맛있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보관 잘한 쌀이 수분 많은 햅쌀보다 나을 수 있다. (14)수확 시기에 따라 조생종 쌀은 다음해 여름 이전에 먹어 치워야 한다. 중생종과 만생종 쌀은 다음해 여름을 나도 괜찮다. 사실 추석에 우리가 먹은 송편은 원래 조생종 쌀을 떡으로 빚어 먹던 풍습이 흘러온 것이다.

(15)쌀은 가을에 추수해 1년을 두고 먹기 때문에 보관 상태가 중요하다. 쌀의 수분 함유량이 14~16%일 때 밥맛이 가장 좋다. 서늘하고 그늘진 장소에서 보관하면 유지된다. 현미는 껍질과 배아의 유분 때문에 퀴퀴한 냄새가 나기 쉽다. 집에서는 산화를 늦추기 위해 냉장 보관할 필요가 있다. 백미 역시 냉장 보관이 속 편하다.

쌀은 소량씩 사는 것이 밥맛에 도움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쌀은 소량씩 사는 것이 밥맛에 도움된다. 게티이미지뱅크

(16)좋은 조건으로 보관한 쌀을 그때그때 도정해 사오면 밥은 더 맛있어진다. 쌀을 수확했을 때 쌀알은 현미 상태다. 쌀알을 둘러싼 누르스름한 껍질을 벗기고 배아도 떨어져 나가게 하는 과정이 도정이다. 완전히 도정한 것이 백미다. 씨눈이 남아 있고 중량의 3% 정도만 깎아낸 것이 5분도미, 씨눈은 70% 가량 남고 껍질을 깎아낸 중량은 95% 정도가 된 것이 7분도미다. 껍질을 잃은 쌀은 수분이 빠져나가고 산화되며 빠르게 변한다. 경험상 2주가 한계다. 그 옛날 부잣집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쌀을 한 섬(144㎏)을 쌓아두고 먹는 것보다 “쌀 한 되(1.8리터) 팔아오라”던 가난한 집들의 방법을 따르는 것이 더 맛있는 밥을 먹는 방법이다. (17)집에 밥솥 하나씩은 다 놓고 쓰듯이, 작고 예쁘면서도 성능이 뛰어난 도정기가 정착된다면 그 또한 괜찮은 방법이 되겠지만, 그런 도정기가 없다는 이유로 쌀을 1, 2㎏씩 즉석도정으로 사오게 된 것이 쌀에 쓰는 비용이 늘어난 첫째 이유다.

밥맛에는 도정도 중요하다. 사진은 백미로 완전히 도정한 것. 깨지거나 흠난 데가 없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밥맛에는 도정도 중요하다. 사진은 백미로 완전히 도정한 것. 깨지거나 흠난 데가 없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밥맛은 품종과 도정하기 나름

(18)둘째 이유가 품종이다. 커피가 ‘게이샤’, ‘예가체프’, ‘모모라’ 등 품종마다 맛과 향이 판이하게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에겐 밥맛 좋은 쌀의 이름이 지역명이거나 농법의 이름을 딴 것일 때가 있었다. 아무거나 모아 뒀다가 탈탈 털어 먹고 배를 채우는 것이 쌀밥의 사명이던 혼합미 시절의 쌀이다. 물론 쌀을 섞는 게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얻어 걸려 혼합미 중에도 밥 맛이 좋은 것이 있긴 있었다. 커피도 몇 가지 품종을 섞어 맛과 향이 더 좋은 블렌드를 만드는 일이 유별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섞는가다.

다행히도 이제는 쌀도 ‘싱글 오리진’, 즉 단일 품종을 주목하는 추세다. 정부에서도 밥맛과 품종에 관심이 많아 최고품질 쌀 품종을 고시한다. 농촌진흥청이 정의하기로 최고품질 쌀은 쌀알 가운데와 쌀 옆면에 하얀 반점이 전혀 없고 '일품' 이상의 밥맛과 도정 수율이 75% 이상(완전미 도정 수율은 65% 이상)이면서 벼에서 발생하는 주요 병해충 2개 이상에 저항성을 가져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품종은 ‘삼광’, ‘운광’, ‘고품’, ‘호품’, ‘칠보’, ‘하이아미’, ‘진수미’, ‘영호진미’, ‘미품’, ‘수광’, ‘대보’, ‘현품’, ‘해품’, ‘해담쌀’, ‘청품’ 등 15종이다.

(19)그런데 게이샤는 콜롬비아, 예가체프는 에티오피아에서 나야 맛있다. 품종에 맞는 경작지 환경도 중요한 것이다. 밥맛도 테루아를 따라간다. 식품MD 김진영씨는 “쌀 품종마다 잘 자라는 산지가 따로 있다. 아무리 맛있는 품종이라도 엉뚱한 지역에서 키우면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가령 철원 지역의 ‘오대’, 포항 지역의 삼광, 전라도 지역의 호품, 충청도면 ‘추청’과 같이 품종과 산지의 짝이 잘 맞아떨어진 쌀이 맛있다”고 조언했다.

(20)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완전미다. 쌀이라는 게 완전미가 맛있다. 완전미는 특정 쌀의 이름이 아니라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도정은 물리적인 힘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건조하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쌀알은 깨지거나 흠이 간다. 이런 쌀에서는 전분이 흘러나와 밥이 질척인다. 그래서 완전미가 맛있는 밥의 중요한 조건이다. 도정 후에도 상하지 않고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는 쌀을 완전미라고 한다. 미국이나 일본의 쌀은 90% 이상이 완전미다. 한국은 완전미 비율이 65% 넘으면 높은 축으로 친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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