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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출판도매업계 혁신, 어음근절부터

입력
2017.01.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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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도매업체인 송인서적의 부도 소식이 출판∙서점계를 강타하고 있다. 가뜩이나 불황과 매출 감소로 시달리고 있는 관련 업계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당장의 피해뿐 아니라 영세 업체들의 줄도산을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다. 돈줄이 막히면서 생계를 걱정하는 출판사가 적지 않다.

출판 도매업체는 출판사와 서점의 출판물 거래를 중개하는 출판 유통의 동맥이다. 해마다 5,000개 이상의 출판사가 발행하는 5만종 이상의 신간을 포함해 수십만종의 책을 전국 2,000여 서점에 공급한다. 출판사를 대신한 판매 대행과 서점을 대신한 구매 대행을 하는 것이다. 유통 효율화와 거래 편의가 극대화할 수 있는 장치다.

일본의 경우 도한(東販)과 닛판(日販)이라는 양대 도매상이 전체 출판 유통 물량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도매업체의 역할이 크다. 반면 출판사와 서점 간의 직거래는 매우 드물다. 출판사는 거대 도매상 두 곳과만 거래하면 전국 서점에서 책을 판매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 출판사나 서점들에게 도매상은 ‘든든한 부모’ 같은 존재다.

이에 비해 한국에는 든든한 부모가 없다. 출판사들은 유통 강자인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들의 뜻에 따라 직거래를 한다. 규모가 작은 전국 각지의 서점들과 거래할 때만 주로 도매상을 이용한다. 학습참고서를 비롯해 돈이 되는 물량은 출판사들이 각지에 총판(대리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도매 비중이 낮다. 이처럼 출판사와 서점 간의 직거래가 발달하면서 도매업계 거래 규모는 꾸준히 감소해왔다. 출판시장 전반이 위축되는 상황도 도매업계의 어려움을 키웠다.

이번 송인서적 부도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납품 시장에서의 출혈 경쟁’에 따른 적자 누적이라는 것이 경영진의 진단이다. 송인서적은 6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가장 오래된 도매업체로, 서점 판매 매출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공공도서관, 학교, 관공서 등에 납품하는 매출 비중이 경쟁 업체보다 훨씬 컸다. 지난해는 매출액의 절반 가까이가 납품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2014년 11월 21일 도서정가제가 강화된 이래 최저가 경쟁입찰이 사라지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지역서점 지원 열기까지 더해지면서 지역서점의 납품 기회가 부쩍 늘었다. 이렇게 지역서점이 따낸 납품 물량은 대개 도매상들의 대리납품 과정에서 납품가 경쟁을 불렀다. 납품 물량은 일반적인 판매 도서에 비해 품이 몇 배로 들어간다. 목록에 의한 책의 낱권 구매, 마크(MARC∙서지정보 데이터) 작업, 도서관 배송, 검품과 도서관 배가(진열) 등 번거로운 작업을 모두 하지만 마진율은 일반 도매 마진(10%)의 절반 이하에 그쳤다. 부득이하게 납품 경쟁을 할수록 밑지는 구조였던 셈이다. 송인서적이 부도를 낸 배경에는 이런 현실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국내 출판유통 업계에서 전국 도매 기능을 하는 곳은 송인서적을 포함해 모두 4개가 있지만 경영이 안정적인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눈덩이처럼 피해가 커지며 출판 생태계가 연쇄 도산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송인서적을 살려야 한다. 그러자면 공적자금 투입을 포함한 모든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다만 1998년 외환위기 때 도매상 1~3위 업체가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정부가 500억원의 긴급지원을 결정했으나 이중 150억원은 부도가 나지 않은 도매업체 두 곳에 지원되고 은행권에 맡긴 출판사 지원은 2년이나 지나 저금리로 집행됐던 것처럼 이번에도 실효성 없는 대책이 반복되어서는 곤란하다.

또한 ‘어음이 없으면 부도도 없다’는 말처럼 도매업계의 어음 거래 관행도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번 기회를 오랜 과제인 출판유통 혁신과 도매업계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출판사가 좋은 책 만들기만 고민하면 되는 ‘상식’이 더 이상 ‘이상’이어서는 안 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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