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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진보정치는 제도화를 통해 가능하다

입력
2018.07.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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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죽음은 한국 정치에서 진보정치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군부독재 정권에서 진보는 그 자체로 ‘반국가적’ 이념으로 취급되며 탄압과 배제의 대상이었다. 수구세력은 진보를 ‘빨갱이’와 동일시하며 일체의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등의 진보정치를 냉전의 틀 속에 가뒀다. 진보정치는 2004년 17대 총선 때 민주노동당이 10석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처음 원내에 진입했다. 2석은 지역구였고, 8석은 비례대표였다. 지역구 8번이 노 의원이었다.

보수도 이념이겠으나 진보정당을 이념정당이라 하는 이유는 지향하는 가치들이 거대 기득권의 부조리와 반칙을 사회적 균열의 전면에 내세우는 일관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진보도 내부 분열이 있었고, 통합진보당 해산도 있었다. 국민이 수긍할 수 없는 친북 성향과 과격주의 등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진보정치는 진화했고 정의당은 비록 의석이 5석으로 줄었으나 한국 정치에서 시사하는 함의는 제1야당의 그것보다 크면 컸지 결코 가볍지 않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보수의 부패는 성장만능주의에 기생했던 재벌과 관료 등 기득수구세력의 도덕적 불감증과 기득동맹의 체질화한 부조리로 지칭하는 것이 정확하다. 한국에서 수구냉전세력은 보수라는 정치적 언어의 장막 뒤에 숨은 존재일 뿐이다. 정당정치는 통합과 분열을 반복하며 일정한 방향으로 진화한다. 따라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은 수구세력이 씌워 놓은 못된 프레임 중 하나다.

진보정치에 씌워진 또 하나의 프레임이 있다. 진보는 절대선, 절대도덕을 생명으로 한다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부패와 비교할 수도 없는 미미한 공간을 진보의 탈을 쓴 위선정치라고 공격한다. 노회찬은 그런 맹목적 도적 순결주의의 희생양이 됐다. 보수 주류언론은 그런 프레임을 전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구에서 보수, 진보의 구분은 국가의 시장개입 정도가 기준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보수는 수구를 숨기는 언어로, 진보는 북에 동조하는 좌경세력으로 프레임화됐다. 왜곡된 보수 대 진보의 프레임은 진보를 탄압하는 좋은 무기였다. 수구기득권은 박정희 이데올로기와 반공을 토양삼아 냉전에 기생한 군부와 재벌 등의 세력이었다. 이는 성장만능주의의 필연적 귀결인 민주주의의 배제와 인권 탄압, 정치 억압 등으로 표상됐다. 성장지상주의는 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연결됐고 학생ㆍ노동운동, 민주화 투쟁은 별개 영역이 아니었다.

진보정치에 대한 국민 인식은 과거의 그것과 확연히 달라졌다. 많은 희생과 불굴의 저항의 결과이고 노회찬은 그 여정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현행 선거제도와 정치제도 등 정치관계법은 진보진영에 터무니없이 불리하다. 거대 정당이 아니고는 명맥 유지가 어려운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지 않는다면 진보의 가치에 동의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비례적으로 담아낼 수 없다.

단순다수제와 소선거구가 결합된 공직선거법은 지역구 선거에서 진보세력의 원내 진입을 원천 차단한다. 정당득표를 통한 비례대표의 원내 진출로 세력화를 모색해야 하는 진보정당으로서는 국회의 비례대표 정원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정당정치의 지향이란 측면에서도 비례성 강화는 필수다. 국회에서는 권역별 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힘을 얻어 가고 있으나 선거제도 개혁을 포함한 개헌과 정치개혁은 경제지표 악화로 다시 뒤로 밀리고 있다. 정치자금법 개정도 필요하다. 예비후보가 아닌 자의 정치자금 조달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현 제도는 엘리트 정치인이나 카르텔 정당에 절대 유리한 제도다. 사회구조와 각종 제도는 철옹성처럼 가진 자와 기득권의 편이다. 부조리와 비굴이 구조화된 사회에서 노회찬이 추구했던 삶과 가치의 정치를 꽃 피우게 하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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