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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국판 로비스트제도

입력
2017.10.27 14:4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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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판ㆍ검사로 퇴직해 로펌에 들어가면 월 1억원이 기본인 모양이다.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는 대검 차장 퇴임 사흘 만에 로펌에 들어가 7개월간 약 7억원을 받았다. 황교안 전 총리는 부산고검장 퇴임 직후 로펌에서 16개월간 일하며 16억원을 챙겼다. 고위관료나 장성 출신이 로비스트로 일하며 거액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은 해군참모총장 예편 후 로펌 고문으로 취업해 월 3,000만원을 받았다. 그는 “서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세계’가 있다”고 말해 서민들의 공분을 샀다.

▦ 최근 10년간 퇴직 고위관료의 85%가 퇴직 후 1년도 안 돼 대기업이나 로펌, 공공기관에 재취업했다. ‘금융검찰’로 불리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출신은 금융계열사에, 군 출신은 방위산업체에 주로 입사했다. ‘경제검찰’이라는 공정거래위원회도 경제정의를 좀먹는 전관예우 부처다. 대형 로펌인 김앤장 직원들은 2013년부터 올해 9월까지 공정위를 3,168번이나 방문했다. 그런데 김앤장 등 3개 로펌이 공정위 패소 사건의 72%를 맡았다. 로펌에 들어간 공정위 퇴직 관료가 현직 때의 인맥을 활용해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것이다.

▦ 공정위가 내년 1월부터 사전에 등록한 사람만 공정위 직원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등록 규모는 대형 로펌의 공정위 사건 담당 변호사와 회계사, 재벌기업 대관(對官) 업무 담당자 등 400여명에 달할 전망이다. 공정위 출신 ‘공피아’들의 부정 청탁을 막기 위한 전관예우 근절책이다. 업무 관련성이 없으면 제한 없이 공정위 직원을 만날 수 있고 경조사 등 예외도 인정해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검찰 등 권력기관이 사전 등록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 공정위가 외부인 관리방안을 마련한 것은 정부기관을 통틀어 처음이다. 로비스트로 등록된 경우에만 대관 접촉을 허용하는 미국식 로비스트법과 유사하다. 관료사회 전관예우의 먹이사슬을 끊으려면 로비양성화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선진국처럼 로비스트를 등록시켜 음성적 청탁을 막고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15대 국회에서 법안이 제안된 이래 적잖은 논의 과정을 거쳤으나 변호사들의 반발에 번번이 무산됐다. 음성적 로비를 제도권으로 끌어내 법적ㆍ사회적 책임을 부여할 때가 됐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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