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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두 문화

입력
2017.11.10 12:3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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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G, 미래의 속도’라는 제목의 TV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기술발전의 역사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해설하는 역할이었다. 1936년 히틀러가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하기 바로 전 해에 아우토반이 개통됐고 1964년 도쿄올림픽 개최 직전에는 신칸센이 개통됐다. 세계 최초의 고속철 신칸센의 당시 속도는 시속 256km였고 속도는 기술발전의 척도라는 내용의 예고편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공유하자 주변 동료 한 명이 댓글을 달았다. 속도가 아니라 속력이 맞고 단위는 km가 아니라 km/h라고 지적했다. 그는 물리학 박사였고, 전공자답게 단숨에 오류를 찾아냈다.

불현듯 영국 찰스 스노(C.P.Snow)경의 고전 ‘두 문화’가 떠올랐다. 스노경은 물리학을 전공한 소설가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1959년 캠브리지대에서 ‘두 문화와 과학혁명’이란 제목의 역사적 강연을 했고 이후 책으로 냈다. 두 문화를 언급하며 복수형(cultures)을 사용했는데, 여기서 두 문화란 인문학적 문화와 과학적 문화를 가리킨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두 문화로 갈라져 있다는 것이다. 한쪽 극에는 문학적 지식인이, 다른 한쪽 극에는 과학자, 특히 대표적 인물로 물리학자가 있으며 이 양자 사이에는 몰이해, 때로는 적의와 혐오로 틈이 크게 갈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인과 물리학자가 만나 이야기하면 서로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인들이 과학적 표현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가령 굴절(refraction)이라는 말이 산문에서 신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든지, 편광(polarised light)이라는 말이 각별히 감탄할 만한 빛의 일종인 것처럼 문인들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굴절, 편광 등 용어는 과학적 개념이다. 굴절은 ‘파동이 서로 다른 매질의 경계면을 지나면서 진행방향이 바뀌는 현상’이고, 편광은 ‘진행방향에 수직한 임의의 평면에서 전기장 방향이 일정한 빛’을 뜻한다. 만약 시인이 이런 과학적 의미로 용어들을 사용한다면 얼마나 정서가 메말라 보일까. 시인이 과학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용어가 주는 느낌 때문이다. 일종의 시적 자유다. 사실 인문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은 과학용어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예가 세계적 석학 제러미 리프킨의 베스트셀러 ‘엔트로피’다. 이 책은 엔트로피 개념으로 에너지 문제를 설명하고 있어서 서점의 과학코너에 비치되기도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엔트로피 개념을 오용한 사례로 언급되곤 한다. 리프킨은 엔트로피 개념을 잘못 이해했고 잘못된 개념을 확산했다는 점에서는 비판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오류 때문에 에너지 문제에 대한 그의 주장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한 물리학 박사의 지적도 과학적으로는 옳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속도를 속력으로 수정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속력이라는 단어와 속도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인문학 관점에서는 과학성보다는 아무래도 감성적 느낌이 더 중요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사회야말로 두 문화의 틈이 크다. 스노경이 살던 영국사회보다 훨씬 더 심할 것이다.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져 두 문화는 각각 아성을 쌓아 왔다. 똑같은 현상, 용어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한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계는 인문학과 문화예술을 잘 모르고, 인문사회계는 과학에 대해 무지하다. 심지어 과학계 내에서도 자연과학과 공학 간의 벽이 있다. 여하튼 양극단의 시인과 물리학자가 소통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시인과 물리학자가 서로 딴 세상을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상대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애쓴다면 두 문화 간 간극은 좁혀질 것이다. 서로 달라도 다가서고 소통하려는 문화가 필요하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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