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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일자리 신문고 적시는 '비정규직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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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일자리 신문고 적시는 '비정규직 눈물'

입력
2017.10.18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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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간 민원 1만8000여건 접수

4건 중 3건은 비정규직 문제 호소

한시적 일자리, 일시ㆍ간헐적 업무 등

정규직 전환 제외에 불만 폭주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단식농성 6일 차, 학교 비정규직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단식농성 6일 차, 학교 비정규직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소재 공공도서관 야간 사서입니다. 같은 업무를 하는데 낮에 일하는 주간 사서는 정규직 전환 대상이고, 밤에 일한다는 이유로 야간 사서는 제외된다는 것이 억울합니다.” (서울의 한 시립도서관 사서 A씨)

“저는 노인 일자리사업 전담인력으로 2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비로 운영하는 사업이라 정규직 전환에 해당사항이 없다고 합니다.” (경기도의 한 노인인력개발센터 근로자 B씨)

“대학의 연구원입니다. 학교가 연구소로 분류돼 정규직 전환 희망을 품은 제가 바보네요. 처음엔 모든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할 듯하더니 수탁연구과제 연구원은 제외한다고 공지했습니다.” (지방 소재 대학교 기간제 연구원 C씨)

문재인 정부 들어 출범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홈페이지 내에 일자리 문제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라며 ‘일자리 신문고’를 설치(6월4일)한지 4개월여가 지났다. 지금까지 접수된 민원은 총 1만8,644건(15일 기준), 휴일을 포함해도 하루 평균 140건의 민원이 신문고를 두드렸다. 특히 민원 4개 중 3개 이상은 이들처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처우에 대한 호소였다.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0) 선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현장의 혼란이 해소되지 않아 곳곳에서 갈등과 마찰이 빚어지는 현실을 반영한다.

17일 한국일보가 일자리 신문고 민원을 전수분석한 결과 비정규직 관련 문제를 호소한 내용이 1만4,223건으로 전체의 76.3%에 달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관련 고충을 제기한 민원(12.1%ㆍ2,257건), 일자리 창출 (3.40%ㆍ634건), 근로조건(2.69%ㆍ503건) 등의 고충이 뒤를 이었다.

1_일자리신문고/2017-10-16(한국일보)
1_일자리신문고/2017-10-16(한국일보)

특히 정부가 7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당시 일종의 ‘대원칙’만을 제시하면서 예외조항에 해당되거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일자리 신문고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우려가 큰 부분은 실업ㆍ복지대책 차원에서 제공하는 한시적 일자리, 즉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직접일자리사업이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된다는 점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07년부터 운영한 '공공도서관 개관 연장사업'으로 채용된 공공도서관 야간연장인력(야간 사서)이나 노인복지 및 노인일자리 전담인력이 대표적이다. 실제 업무는 정규직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월급을 국비로 지원한다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됐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서울의 한 시립도서관에서 야간 사서로 근무하고 있는 오민나(32ㆍ가명)씨는 “한시적 일자리라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라는데, 실제로 현장에선 이를 엄연한 직업으로 여기고 계속 일하는 것이 보통”이라면서 “벌써 10년 이상 관련사업이 진행됐고, 정부가 재정지원을 중단해도 계속 될 사업인데 어떻게 한시적 일자리라고 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야간연장인력 중 사서 자격증을 가진 비율이 50% 정도라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자리 신문고에도 ‘사서 자격증 없는 비사서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는 민원도 올라와 제2의 기간제ㆍ정규직 교사 간 갈등으로 번질 소지도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정규직 전환 제외사유인 ‘일시ㆍ간헐적 업무’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연구용역 인력이 많은 정부출연연구원(출연연)이 그 중심에 있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산하 출연연에 대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예고해놓고도 수개월 째 미루면서 갈등이 점차 증폭되고 있다. 출연연의 한 기간제 연구원은 “출연연은 가이드라인 발표 전에는 비정규직을 아예 채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면서 “그 사이 계약이 만료되는 계약직은 어떻게 될지 눈앞이 캄캄하다”고 전했다.

서류 상 업무와 실제 맡고 있는 업무가 달라 정규직 전환에서 빠지게 되는 사각지대도 있었다. 지방의 보건소 소속 기간제 간호사 D씨는 일자리 신문고에 “노인 건강검진사업을 맡기로 하고 입사했으나 갑작스러운 업무변경 통보로 국가암검진사업을 맡게 됐다”면서 “실제 업무와 달리 서류 상 소속인 노인 건강검진사업이 일시ㆍ간헐적 업무로 분류돼 정규직 전환 대상자에서 제외됐다”고 전했다. 지방 소재 대학의 기간제 연구원 C씨는 “수탁연구과제 연구원이라고 해놓고 실제론 연구가 아닌 행정을 담당하는 연구원들이 많다”면서 “2년 동안 24개월을 쉬지 않고 일하지만 서류 상으론 11개월씩 계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쏟아지는 민원에도 일자리 신문고에서 이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일자리위원회 관계자는 “비정규직 전환 문제 등은 대부분 부처 소관사항이라 일자리 신문고에서는 관련 부처로 민원을 이동시키는 대처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금명간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전환 대상자 가이드라인에 대한 보완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전해져 앞으로도 현장의 궁금증은 해소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속도감 있게 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은 이해하지만, 빨리 가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제대로 가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각 기관의 사정을 일일이 파악해 기준을 세워주는 것은 무리라고 하더라도 관련 문의사항을 묶어 자료를 배포해 어려움을 겪는 기관들을 돕는 등의 대처는 필요하다”고 전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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