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편집국에서] 공포 마케팅보다 혁신이다

알림

[편집국에서] 공포 마케팅보다 혁신이다

입력
2017.02.20 02:00
0 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호송차를 타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검에 도착해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호송차를 타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검에 도착해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착잡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 집단의 총수가 포승줄에 묶인 모습은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건희 회장이 3년 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까지 맞닥뜨리게 된 삼성 임직원과 협력업체 가족들은 황망할 수 밖에 없다. 곳곳에서 파장이 클 것이란 걱정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삼성의 경영 공백으로 인한 불확실성 증대와 국제 신인도 하락은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한국무역협회는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과 대외 신인도 하락을 충분히 검토했는지 우려된다”며 법원의 결정을 비판했다.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제조업 전체 매출액의 10%, 영업이익의 30%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의 구속은 분명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마치 나라가 당장 망할 것처럼 떠드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 이런 ‘공포마케팅’은 진실을 왜곡한다.

먼저 총수의 구속이 반드시 기업의 위기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최태원 SK 회장이 2013년 구속됐을 때도 악영향이 클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SK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20%나 늘었다. 2011년에도 담철곤 오리온 회장이 구속됐지만 1년 후 오리온 주가는 오히려 2배로 뛰었다.

이미 국제 신용평가사는 이를 간파했다. 무디스는 “삼성전자는 경험 많은 전문 경영인이 각 사업 부문을 이끌고 있어 오너의 부재가 경영의 차질을 빚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삼성은 오래 전부터 시스템으로 움직여왔다. 각 계열사 사장에게 경영을 전적으로 맡긴 이 회장은 출근하는 날이 드물 정도였다.

금융 시장에도 충격이 없었다. 이 부회장이 구속된 날 삼성전자 주가는 0.4% 하락하는 데에 그쳤다. 일부에선 삼성 계열사의 시가 총액이 하루 만에 2조원 이상 증발해 버렸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410조원도 넘는 삼성그룹 전체 시가 총액을 감안하면 평상시보다도 못한 정도였다.

이날 80억달러(약 9조4,000억원) 규모의 전장(電裝) 업체 하만(Harman) 인수 합병안도 무난하게 통과됐다.

그럼에도 재계를 중심으로 공포 마케팅이 횡행하는 것은 삼성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금의 삼성을 세운 것은 이병철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과 이 회장의 탁월한 식견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삼성의 신화는 국가의 전폭적 지원과 국민의 지지ㆍ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지금의 삼성을 만든 것이지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게 아니다. 호암조차 ‘나라가 있고 기업이 있는 것’이라며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경영 철학으로 삼았다. 더구나 전 국민이 미래를 위해 매달 꼬박꼬박 붓고 있는 국민연금이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까지 도운 사실이 수사에서 드러났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삼성 총수 일가를 먹여 살린 꼴이다.

우리 시대에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같은 걸출한 기업가를 만난 것은 복이다. 삼성은 한국 경제의 자랑이다. 그러나 재계와 일부 언론에서 이 부회장이 구속됐다고 마치 경제에 큰 위기가 닥칠 것처럼 과장하는 건 ‘할리우드 액션’이며 삼성이나 이 부회장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를 앞세워 ‘정의’를 압박하는 모양새도 여론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최순실 사태와 촛불 집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의 흐름에서 보면 법원의 결정은 ‘정경유착’이란 적폐를 구속한 것이다. 삼성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지만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더 중요한 것은 삼성의 혁신까지 구속된 것은 아니란 점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삼성은 이번 위기도 극복할 것이다. 이 부회장이 이 시련을 새로운 시대에 맞는 더 강한 삼성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승화시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박일근 경제부장 ikpar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