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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위선과 정치

입력
2017.05.2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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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총리 인준을 새 정부 견제 수단 삼는 野

과거 정권 인사 비협조 뒤늦게 반성하는 與

현실 제약 인정 위에 상생ㆍ협치 시대 열길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26일 오전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26일 오전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DJP(김대중ㆍ김종필) 연대’로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종필 총리’는 DJP연대의 전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김 후보자의 임명 동의를 극구 반대했다. 그의 5ㆍ16 쿠데타 주도 전력과 도덕성 등을 문제 삼아서였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JP총리 반대에 앞장선 한나라당 의원들은 총선에서 5~10%P 차로 배지를 단 서울 수도권 출신이었다. JP와 연대한 DJ는 이들의 지역구에서 이 표차보다 많은 득표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앞섰다. DJP연대가 순조롭게 유지된다면 다음 총선에서 그들에겐 승산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DJP연대를 흔들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 엄혹한 ‘IMF 위기’ 속에서 총리 인준이 6개월이나 표류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야당은 으레 새로 들어선 정권에 대한 초반 견제 수단으로 총리 인준과 장관 청문회를 활용한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조각 때 한나라당이 대북송금 특검법과 고건 총리 인준을 사실상 연계하는 바람에 큰 진통을 겪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때는 야당인 통합민주당이 한승수 초대 총리후보자에 대해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등 각종 의혹을 제기해 인준 처리에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야당은 또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강부자’(강남 땅부자) 논란을 부각시키면서 500만표 차 패배 충격에서 벗어났다. 박근혜 정부 조각 때도 야당은 김용준 초대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고위공직 후보자들을 잇따라 낙마시키면서 전열을 정비해갔다.

현재 진행형인 이낙연 총리 후보자 인준 진통에도 비슷한 정치 셈법이 작용하고 있다. 사상 최대 표차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참신한 소통 행보로 국민 환호 속에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다. 반면 대선 패배 충격에다 각각의 당내 사정이 겹친 야당들은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국민의 관심권에서 멀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위장전입 문제 등 이 후보자에게서 드러난 결함은 야당들에게는 문 대통령을 견제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당내 전열도 재정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권이 바뀌면 정반대의 논리와 입장에서 공방을 펼치는 이런 식의 정치판 행태는 낯 간지러운 위선(僞善)이다. 물론 위장전입 등 실정법 위반은 고위공직자로서의 도덕성에 중대한 결함이고,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걸었던 5대 비리 고위공직 배제 공약에도 배치된다. 야당으로서는 충분히 문제 삼을 만하고 국민을 대신해 따질 의무도 있다. 하지만 여당 시절엔 공직 후보자에 대한 야당의 의혹 제기를 정권 발목잡기라고 비난하던 자유한국당이 이 후보자의 위장전입을 중대 결격사유로 몰아가는 건 보기 민망하다.

위선적이기는 문재인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인사 때마다 비리 ‘4종 세트’니 ‘5종 세트’ 니 하며 고위공직 내정자의 비리 의혹을 부각했고, 실제로 많이 낙마시켰다. 문 대통령의 5대 비리 고위공직 원천 배제 공약도 이런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여당이 된 지금은 “과거에 우리도 위장전입 문제를 이유로 인사에 비협조적 모습을 보였던 점을 고백한다”(강훈식 원내대변인)고 했다. 임종석 청와대비서실장은 인선과 관련 대국민 사과에서 “문재인 정부도 현실의 제약 안에서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권을 담당하든 정권 견제의 입장에 서든 피차 ‘현실의 제약’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위선의 정치를 끝낼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정권을 담당하던 시절 절감했던 현실의 제약을 외면하고 새 정부 총리 인준 절차 진행에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문 대통령도 개혁의 명분과 당위성을 독점하지 말고 야당들과 나누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민의 눈 높이 못지 않게 야당과도 함께 가야 정치가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 여소야대 5당 체제에서 진정한 협치 시대를 여는 길도 여기에 있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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