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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수준, 소장품이 아니라 테마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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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수준, 소장품이 아니라 테마가 결정한다

입력
2014.11.2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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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풀로 지음ㆍ김한결 옮김

돌베개ㆍ296쪽ㆍ1만5,000원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궁전의 왕족ㆍ귀족 소유 컬렉션

20세기엔 체제선전 도구 전락

현대엔 보는 즐거움이 핵심 가치

루브르 박물관은 소장품만큼이나 건축양식에서도 전 세계 박물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50년 샤를 피쇼가 그린 루브르 박물관 전경. 돌베개 제공
루브르 박물관은 소장품만큼이나 건축양식에서도 전 세계 박물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50년 샤를 피쇼가 그린 루브르 박물관 전경. 돌베개 제공

1789년 8월 프랑스 국민의회가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선포했다.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로 상징되는 앙시앵레짐(구체제)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계몽주의가 프랑스 전역을 휩쓸었다. 시민혁명의 성공과 공화정 수립은 프랑스의 경제, 정치, 사상 등 모든 분야의 재편으로 이어졌다. 문화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왕족과 귀족 소유의 컬렉션을 보관하던 왕립 예술아카데미가 537점의 회화를 처음 대중에게 공개했다. 루브르궁전이 루브르박물관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현대인에게 박물관은 친숙한 공간이다. 미술이나 역사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말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이나 아이들의 손을 잡은 부모들이 박물관 출입구를 드나든다. 하다못해 학창시절 현장학습이라는 명목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박물관을 방문한다. 이처럼 너무도 당연시 여겨지는 박물관 관람이지만,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 또한 시대의 굴곡이 묻어 있는 투쟁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박물관의 변천사를 쉽게 풀어 낸 책이 나왔다. 프랑스 파리1대학 미술사학과 교수인 도미니크 풀로가 쓴 ‘박물관의 탄생’은 박물관이라는 문화공간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 진화해 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를 다룬다. 박물관의 정의와 역할을 규정하고 박물관과 국가의 관계, 최근 세계 박물관에서 일어나는 변화 등을 흥미로운 문장으로 소개한다.

박물관은 인간의 삶과 역사가 응축된 기록과 기억의 보고다. 독일 본에 위치한 독일역사박물관에 전시된 베를린 장벽과 관련 유물들. 돌베개 제공
박물관은 인간의 삶과 역사가 응축된 기록과 기억의 보고다. 독일 본에 위치한 독일역사박물관에 전시된 베를린 장벽과 관련 유물들. 돌베개 제공

박물관의 정의를 규정하는 1장 ‘박물관이란 무엇인가’에서는 고대 그리스 뮤즈(muse)의 신전 ‘무제이온(mouseion)’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실제로 박물관(museum)의 어원이기도 한 무제이온은 고대 기록에 ‘기둥을 줄지어 세운 현관’ ‘미술관’ ‘조각품 전시’ 등의 표현과 함께 등장한다. 저자는 박물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이 공간에 비추어 박물관을 “인류의 문화유산 보존과 전승의 장이자 학문의 요람”으로 정의한다.

저자는 이어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추적해 박물관의 종류를 분류한다. 예를 들어 현대인들이 흔히 역사박물관이라 부르는 공간은 19세기 유럽 전역에 불었던 ‘애국’의 열병과 맞물려 나타난 ‘자국사 박물관’, 모사에 가까운 재현을 골자로 당대의 특징적인 유물을 전시한 ‘피리어드룸(period-room)’, 유물을 연구하기 위한 학술목적의 ‘아틀리에(atelier)’ 등으로 나뉜다. 저자는 특히 역사박물관의 등장과 함께 박물관의 기능이 확장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박물관의 소재로 홀로코스트, 1ㆍ2차 세계대전 등이 스며들며 그때까지 전시에 방점을 찍었던 박물관이 사회적 의미를 되새김질하며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는 공간이 됐고 나아가 화해와 치유라는 부수 기능까지 담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물관의 정의와 분류, 기능에 대한 설명을 탄탄히 끝마친 저자는 다시 18세기로 돌아가 20세기까지 박물관의 변천사를 당대 사회상과 엮어 설명한다. 특히 시민혁명 이후 대중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19세기 프랑스의 모습이나 파시즘과 나치즘의 득세로 인해 박물관이 정치체제를 선전하는 도구로 전락한 20세기 세계적인 흐름 등에 대한 분석은 압권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세계 박물관의 지형과 지향점을 점검한다. “오늘날 박물관의 수는 세어 보기도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진단한 저자는 “이제 박물관의 수준을 좌우하는 것은 가지고 있는 소장품이 아니라 주제에 대한 독창적인 시각과 이를 표현하는 지적 역량”이라고 주장한다. 건축양식에 있어서도 “새로 지어지는 박물관들은 전체의 통일성과 견고함보다는 부피감과 공간을 중시하고, 축을 중심으로 한 대칭보다 규칙성과 리듬을, 장식보다는 비율과 자재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앞으로 박물관의 핵심가치는 ‘독창적으로 보는 즐거움’과 ‘관람하기 편안한 실용성’에 있다는 의미다.

책 중간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추가강의(plus de lecture)’는 박물관이 품고 있는 역사적 풍경, 세계적인 전시전문가 등 관련상식을 소개해 독자들이 더욱 흥미롭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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