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상준 기자

등록 : 2017.11.25 04:40
수정 : 2017.11.25 09:11

[에너지 아나키스트] “내가 쓸 전기 직접 만들어… 난 에너지 아나키스트다”

등록 : 2017.11.25 04:40
수정 : 2017.11.25 09:11

#1

유럽 열 효율 주택 ‘파시브 하우스’ 지어

경기 양평으로 이주 최우석ㆍ민경씨 남매

한전과 계약 않고 태양광 전력 자체 생산

11월에 난방 안 해도 실내온도 26도

#2

제주에 ‘e하우스’ 지은 허경자씨

옥상 태양광으로만 전기 얻어

집에서 저장한 태양광으로

전기차 충전하니 월 교통비 ‘0원’

#3

‘에너지 자치구’ 성대골마을은

주민 49명 에너지 연구원 활동

태양광 설치위한 금융상품 추진

인건비 줄이려 DIY패널도 출시

최근 뜨거운 이슈인 탈원전은 딜레마적인 논쟁거리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격한 후 원전에 대한 신뢰는 유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전력생산의 3분의 1을 책임지는 원전을 없애고 지금처럼 에너지를 값싸게 쓸 수 있을까. 대체에너지는 여전히 경제성이 없고, 화석연료 비중을 높이자는 발상은 퇴행일 뿐이다. 이런 딜레마를 벗어날 방법은 사실 단순하고도 근본적이다. 지금처럼 에너지를 마구 쓰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버리는 것이다. 고작 1960~70년대 에너지절약캠페인이 해답이냐고 비웃는다면, 그 비웃음을 부끄럽게 만들 이들을 소개해 보자.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해 불을 밝히고 물을 데우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에너지 독립운동가, 거대 발전산업과 국가적 송전 시스템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는 에너지 아나키스트들이 이미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경기 양평에 에너지 자립 하우스 2채를 나란히 짓고 살고 있는 최우석(왼쪽), 최민경씨 남매가 20일 오빠 우석씨 집 거실에서 민경씨의 둘째 아이 하민군과 함께 앉았다. 바깥 기온은 0도였지만 실내 온도는 난방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6도를 가리키고 있다. 양평=신상순 선임기자

난방 않고도 26도 유지되는 집

수도권에 첫 눈이 내린 20일 오후 4시 경기 양평군 회현리. 최우석(46), 최민경(40)씨 남매가 각각 거주하는 2층 나무집 두 채가 자리잡은 곳을 찾았다. 당시 기온은 0도. 그러나 우석씨 집 안에서 기자를 맞아 주는 최씨 남매는 얇은 반소매 옷을 입고 있었다. 실내 온도는 26도. 하지만 난방을 세게 했을 때 느껴지는 후끈함은 없었다. “따로 난방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 놀란 사실은 이들의 집에 한전 전기계량기가 아예 없다는 사실이다. 없다. 2013년 3월 우석씨가 먼저 집 짓고 살기 시작할 때부터 한전과 전기사용계약을 아예 맺지 않았다. 순전히 자체 생산하는 전력으로 유지되는 ‘에너지 독립 하우스’인 것이다.

두 채의 에너지 독립 하우스는 벽면과 지붕, 설비실 지붕에 달린 태양광 발전기(5.5㎾, 5.3㎾)로 전기를 생산한다. 우석씨는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면 생산한 전기를 한전의 전력망으로 보내고 한전이 주는 다른 전기를 받아 쓴다”며 “하지만 우리는 집에서 만든 태양광 전기를 태양광 인버터와 배터리 인버터를 통해 직류에서 교류로 바꿔 직접 쓰거나 배터리에 저장한다”고 설명했다.

최우석, 최민경씨 남매의 에너지 독립 하우스 개요

태양광 발전을 한다고 모든 주택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건 아니다. 주택의 에너지 효율이 월등해야 한다. 이것이 남매 집의 비밀이다. 유럽에서 보급되는 파시브하우스(passive haus) 즉 건축물 열 성능에 관한 건축 표준을 따르는 주택으로 건설했다. 보통 겨울철 실내 온도 20도를 유지하면서 연간 난방 에너지 요구량이 평방미터(㎡)당 15㎾h 이하이면 파시브하우스로 인정 받는다. 일반 주택의 난방 에너지 요구량이 ㎡당 150~250㎾h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소비 에너지가 10분의 1에 불과하다.

▦단열과 ▦기밀을 잘 해 실내의 열이 새지 않도록 하고, 단열은 뛰어나고 햇빛은 잘 투과하는 ▦고성능 3중 창을 남향으로 내 난방에 필요한 열을 태양에서 얻는다. 또 환기를 할 때 밖에서 들어오는 찬 공기가 실내에서 나가는 따뜻한 공기의 열을 충분히 빼앗아 들어 오도록 고안한 ▦열회수환기 장치를 더해 열 손실을 최소화한다. 아파트 발코니처럼 외부로 튀어 나온 곳이나 꺾인 구역 등 실내의 열이 바깥으로 쉽게 빠져 나가는 길목인 ▦열교를 설계 단계부터 제외했다. 이렇게 해서 난방 없이 11월의 햇빛만으로 반소매 셔츠 차림이 가능한 것이다.

화석 에너지로 만든 전기 대신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로 5년째 살고 있는 '에너지 독립 가족' 최우석, 최민경씨 남매. 양평=신상순 선임기자

민경씨는 4년째인 에너지 독립 생활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서울에서 살 때는 난방비 아끼느라 안방, 거실만 보일러를 틀고 지냈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걱정이 없죠. 냉장고, 세탁기, TV, 컴퓨터 등 가전 제품을 다 쓰면서도 큰 불편이 없어요. 제가 더위를 많이 타는데, 여름에도 방에 단 작은 에어컨을 켜 공기를 살짝 식혀 주는 정도죠. 어지간해서는 여름에도 실내 온도가 26도를 넘지 않으니까요.”

처음에는 100% 자급자족이 가능했지만 배터리 용량이 조금씩 줄어드는 바람에 최씨 남매는 2015년 1월부터 한전의 계통 전기를 백업 시스템으로 이용한다. 계량기가 없어 한전 직원이 따로 검침을 해서 요금을 몇 천원씩 낸다. 그래도 에너지 자급률은 평균 88%다.

“대규모 발전소가 해답은 아니다”

파시브하우스는 1990년대 초반 독일의 볼프강 파이스트 등 건축 물리학자들이 쾌적한 생활과 에너지 소모 감축을 모두 잡을 것인지를 고민한 끝에 탄생했다. 2000년대에 에너지전환 운동에 동참한 이들을 중심으로 실제 건축이 이어졌고, 지금은 독일 영국 유럽의회 등이 신규 주택 건축에 파시브하우스 요건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첫 제로에너지 주택단지가 서울시 노원구에 들어서 20일 121가구가 입주를 시작했다.

‘에너지 독립’의 장점은 단지 수만~십수만원에 이르는 전기요금 부담이 사라졌다는 것만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중앙집중적 에너지 체제에서 특정 지역에 밀집된 대형 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고전압 송전탑을 거쳐 수도권 등으로 전송하고,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전력이 낭비되고 고전압 사고 우려와 송전탑 건설 반대 같은 지역 갈등이 불거지는 일들이 생긴다. 규모의 경제와 생산성을 고려해 최적화된 시스템이라고 믿었던 이 질서에 에너지 아나키스트들은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최우석씨가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다루는 태양광 인버터(노란 상자)와 배터리 인버터(빨간 상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평=신상순 선임기자

“집집마다, 마을마다 에너지를 만들어 배터리에 저장한 뒤 자신이 쓰고 남는 전기는 이웃과 나눠 쓰거나 사고 파는 구조(마이크로 그리드)가 만들어지면 어떨까요? 국가적으로 지금 같은 거대한 전력망 관리 비용을 아낄 수 있고, 국민은 저렴하고 환경 친화적인 신재생 에너지를 더 많이 쓸 수 있게 되겠죠.”(최우석씨)

최우석, 최민경씨 남매의 에너지독립하우스 1,2호의 지난 3년 동안 에너지 현황

2009년 서울대 환경교육 협동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에너지 전환 운동에 참여해 온 우석씨는 파시브기술연구소를 직접 운영하면서 검증 차원에서 에너지 독립 하우스를 지었다. “전셋값 싼 곳을 찾아 서울 외곽을 전전하는 것도 지겨웠습니다. 착실하게 월급 모아 서울에서 집 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어렵게 집을 마련해도 전기요금 가스요금 걱정하며 덥고 춥게 살아요. 차라리 집을 짓자고 마음 먹고 서울 출퇴근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찾은 것이 양평이었습니다.”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던 민경씨는 오빠의 설득에 넘어가 양평으로 왔다. “아이들에게 마당 있는 집에서 살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마땅히 방법을 몰랐는데 마침 오빠의 제안을 받고 마음이 움직였죠. 환경 지키기에 기여한다는 의미도 있고요.” 두 사람은 대지 156평(약 515㎡)을 1억3,000여만원에 샀다. 오빠의 집인 에너지 독립 하우스 1호는 건설비 1억4,000만원이 들었다. 단열재, 3중창, 배터리, 인버터 등에 투자를 한 대신 바닥 단열이나 외장재에서 아꼈다.

허경자 대경엔지니어링 대표가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로만 살 수 있도록 만든 자신의 서귀포 자택 'E하우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로는 태양광 발전으로 만들어 저장해 둔 전기로 전기차 쏘울을 충전하고 있다. 서귀포=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태양광으로 전기차 충전까지

스마트그리드 전문 기업 대경엔지니어링 허경자(57) 대표는 지난해 5월 제주 서귀포 강정동에 ‘e하우스’라는 이름의 에너지 자립 하우스를 완성했다. 대지 128평(약 423㎡)에 들어선 2층 집은 최씨 남매의 집처럼 파시브하우스 기술을 적용했고, 13㎾ 태양광 발전기로 기본적인 에너지를 충당한다. e하우스라는 이름은 오직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로만 살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e하우스의 지붕 자체가 거대한 태양광 패널이다.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면 거대한 패널이 지붕 위로 튀어 나와 미관 상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건물 일체형 태양광(BIPV) 패널은 아예 패널 자체가 지붕이 돼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없죠.”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10㎾ 용량의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담아 2대의 전기차(르노삼성 SM3, 기아차 쏘울)를 충전하는 설비도 설치했다. 흔히 저녁에 쓸 수 있는 전기차 충전기가 대부분 화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한다는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7㎾ 용량의 충전기로는 5~6시간, 3㎾ 충전기는 10시간 정도면 전기차를 완전 충전할 수 있다. “예전 살던 서귀포 집에서 휘발유 차량으로 제주의 사무실을 왕복했을 때는 기름 값만 월 50만원 정도가 나왔지만 요즘은 집에서 충전한 전기차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연료비가 제로(0)입니다.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요. 태양광 패널, ESS, 창호, 창틀, 단열재 등 건축 자재도 모두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썼죠.”

20명에서 4,000명으로 ‘에너지 자치구’

서울 동작구 3,4동에 걸쳐 있는 성대골에너지전환마을은 마을 단위의 에너지 자치구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일어난 2011년부터 원전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자며 주민들이 ‘에너지 절전소’ ‘에너지 슈퍼마켙’ 등 다양한 에너지 전환 활동을 이어오면서 해외에까지 이름을 알렸다. 2015년 설립된 성대골마을 에너지연구소(리빙 랩)에는 49명의 마을 주민이 연구원으로 일한다. 화석에너지를 덜 쓰고 신재생에너지를 더 많이 쓰게 하는 모든 방법을 연구하는데, 대표적인 연구주제 중 하나가 ‘왜 서울 도심에서는 태양광이 외면받나’였다.

서울 동작구 성대골마을의 리빙랩 연구원들이 20일 마을 내 에너지 슈퍼마켓 옥상에 미니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김소영 성대골마을 대표는 “관건은 태양광 패널 설치비용이었어요. 서울시와 동작구청의 보조금을 받더라도 9만~10만원 정도는 자비 부담을 해야 하는데 이를 꺼리는 주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동작신협 이사장을 찾아가 태양광 패널 설치를 위한 금융 상품을 만들어 보자고 설득했죠. 신협과 연구원들이 머리를 맞대 신협 기금 1,000만원을 종잣돈 삼은 ‘우리집솔라론’이 탄생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300W 미니 태양광의 경우 월 1만원씩 22개월간 무이자로 갚아 설치가 가능한데, 설치 후 전기요금은 월 3만원을 내던 집이라면 5,000원 이상을 줄일 수 있다.

최근 주력한 주제는 ‘DIY 미니 태양광’ 프로젝트다. 흔히 패널 값(2만5,000원)보다 설치 인건비(10만원)가 더 드는데, 비전문가도 직접 설치가 가능토록 패널 크기를 줄이고 그림 위주의 설명서를 달아 설치비용을 줄이자는 것이다. 태양광 패널 제작회사인 마이크로발전소(대표 이기관)가 벽을 뚫지 않고 패널과 가정의 전선을 연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등의 연구원 제안을 반영한 DIY용 패널을 개발, 7월 초에 개발을 마쳤다. 이미 이 패널을 직접 설치한 가구가 20여 가구에 달한다. 주부나 70대 노인도 에너지연구소 워크숍에서 교육을 받아 1,2시간이면 어렵지 않게 달 수 있다.

설치 이후 유지 보수는 에너지연구소 기술팀 소속 연구원들이 출동해 해결한다. 보조금을 받아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가 나중에 잘 활용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크고 작은 고장이나 부품 교체 등에 대응할 AS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인데, 성대골마을의 성공 비결이 바로 이런 점이다.

7년 전 처음 성대골마을에서 에너지 자립 운동을 시작한 주민은 20명 남짓이었다. 지금은 4,000명 이상이 동참하고 있다. “도시에서 미니 태양광 발전 하나 설치했다고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지는 않죠. 하지만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해 화석에너지를 줄이자는 데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런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언젠가 지방자치단체나 정부를 움직일 힘이 되겠죠.”(김소영 대표)

원전 폐지는 순진한 생각이라고, 신재생에너지는 요원하다고, 에너지 자립은 불가능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에너지 독립운동가들이 이미 에너지 신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양평ㆍ서귀포=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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