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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가 된 외아들에 그저 사진 한 장만 찍자던 어머니” … 정진석 추기경의 삶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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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가 된 외아들에 그저 사진 한 장만 찍자던 어머니” … 정진석 추기경의 삶 담아

입력
2018.07.22 18:59
수정
2018.07.22 22: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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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보좌하던 허영엽 신부가

일생 정리한 ‘추기경 정진석’ 출간

'추기경 정진석'을 쓴 허영엽(오른쪽) 신부가 정 추기경에게 책을 봉정하고 있다. 가톨릭출판사 제공
'추기경 정진석'을 쓴 허영엽(오른쪽) 신부가 정 추기경에게 책을 봉정하고 있다. 가톨릭출판사 제공

“죽음을 생각하고 또 죽음을 준비하게 됩니다.” 일순간 주변이 숙연해지자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상할 정도로 죽음이 두렵지 않고 지난 삶도 아쉽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조금의 감정적 동요도 없이, 그저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감사만 남습니다.” 정진석(87) 추기경의 소회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허영엽 신부가 정 추기경의 일생을 정리한 책 ‘추기경 정진석’(가톨릭 출판사)을 내놨다.

정 추기경은 1970년 39세의 최연소 주교가 된 이래 오랫동안 교구장으로 지냈다. 1998년부터는 14년간 서울대교구장을 맡았다. 2012년 서울대교구장 직을 염수정 당시 주교에게 넘겨줄 당시 이임미사 때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스스로 “삶을 자폐시켰다”고 표현할 정도로 40여년 동안 자신을 추려왔던 긴장감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 세월을, 정 추기경 곁을 오랫동안 지켰던 허 신부가 정리했다. 그간 들었던 이야기들을 죄다 녹여 넣었다.

정 추기경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다. 외할버지는 명동성당 사목회장이었다. 독실했고 부유했다. 귀한 외동아들이었다. 서울대 공대에 진학할 만큼 머리도 좋았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스스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억울하고 불쌍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제가 될 결심을 한다. 정 추기경이 사제가 되겠다 했을 때 주변에서는 말렸다. 어머니만은 달랐다. 홀로된 입장인데도 적극 찬성했을 뿐 아니라 사제가 된 뒤로는 단 한번도 “보고 싶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주교가 됐을 때는 그저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달라”고 했을 뿐이다. 사진 속에서 소녀처럼 환하게 웃던 그 어머니는, 그 사진 한 장을 평생 머리맡에 두고 살았다. 이후 청주교구장,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서임으로 폭풍 같은 시간을 보냈다.

2012년 퇴임 뒤 혜화동 성당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생활은 여전하다. 오전5시 기상 뒤 기도와 묵상, 미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허 신부가 물었다. “추기경님,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정 추기경의 대답은 간결하다. “사람의 행복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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