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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뺨

입력
2017.12.07 10:5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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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 예쁜 단어예요. 수줍은 단어예요. 비 온 뒤처럼 정갈한 단어예요. 때로는 단호한 단어예요. 뺨, 뒤도 없이 단정함으로 돌아가는 단어예요.

고요한 절집의 앞마당입니다. 누가 깨끗이 쓸어놓은 고요 위로 편지가 도착하였어요. 열어보기 전에 내용을 아는 편지이지요.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서로에게 동시에 열리는 편지이지요. 깨끗이 쓸어놓은 앞마당과 오랫동안 공중을 떠돌던 잎새. 뺨과 뺨에 닿은 손길. 온기지요.

따스함은 밖에 닿아 안을 덥히는 요술이지요. 내가 나를 따스하게 하고 싶으면 내가 내 뺨에 손을 갖다 대야 하지요. 내가 당신을 따스하게 하고 싶으면 앞마당처럼 먼저 나의 뺨을 정갈하게 쓸어놓아야 하지요.

앞마당이 발그스레한 분홍빛이 되었는지, 다시 단정한 낯빛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공중을 떠돌던 잎새가 일생이 담긴 편지였는지 돌아온 연두빛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양쪽 모두로 읽히기 때문이지요. 고요에 이르도록 언어를 매만지는, 뺨이라는 제목을 붙인 시인은 알고 있을까요? 시인도 모를 것 같습니다. 시인은 시인을 잊어버린 순간이었을 거예요. 시인이 아니라 오로지 앞마당이고 잎새였을 거예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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