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강 기자

김주영 기자

등록 : 2018.05.18 14:43
수정 : 2018.05.18 15:34

‘5ㆍ18’ 미공개 사진 속 힌츠페터와 기록자들

[View&]전쟁 같은 현장 함께 지킨 내외신 기자들

등록 : 2018.05.18 14:43
수정 : 2018.05.18 15:34

[저작권 한국일보] 독일 제1공영방송(ARD) 기자 힌츠페터가 1980년 5월(날짜 미상)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집회를 취재하고 있는 모습이 박태홍 전 한국일보 사진부 기자가 취재한 사진에서 발견됐다.

[저작권 한국일보] 같은 날 김용일 전 기자가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 속의 힌츠페터와 그의 동료.

[저작권 한국일보]1980년 5월 24일 힌츠페터(맨 왼쪽)와 그의 동료(아래)가 광주 시내 모처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힌츠페터의 독일 제1공영방송(ARD) 동료가 당시 이용하던 취재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24일 외신 기자들이 시민군 측을 상대로 취재를 하고 있다.

‘5ㆍ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한국일보 기자들이 취재한 미공개 사진 속엔 영화 ‘택시운전사’로 잘 알려진 위르겐 힌츠페터를 비롯해 내외신 기자들이 등장한다.비록 국적이 다르고 취재 여건도 달랐지만 이들은 생사를 넘나들며 현장을 함께 지킨 동지였다.

군부의 서슬 퍼런 언론 통제 속에서 참상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던 내신 기자들은 광주 시민들의 불신 속에서 카메라조차 마음 놓고 꺼낼 수 없었다. 반면에 외신 기자들은 시민군의 적극적인 협조와 안내를 받으며 취재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들 또한 취재 결과를 자국으로 보내기 위해선 군부의 감시를 따돌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38년 만에 필름 밖으로 나온 현장의 기록자들, 이들 역시 현대사의 중대한 사건인 ‘80년 5월 광주’의 한 부분이었다.

#1 힌츠페터와 외신기자들

1980년 5월(날짜가 명확하지 않음) 박태홍, 김용일 전 한국일보 사진부 기자가 각각 컬러와 흑백으로 촬영한 전남도청 앞 집회 사진 속에서 취재 중인 힌츠페터의 모습이 보인다. 힌츠페터는 독일 제1공영방송(ARD) 기자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에 잠입, 촬영한 영상으로 전 세계에 광주의 참상을 알린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속에서 힌츠페터와 그의 동료는 왼 팔뚝에 소속 방송사의 로고가 그려진 완장을 착용했고 카메라에도 큼지막한 로고가 부착되어 있다.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이 로고는 이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방패와도 같았다.

사진을 촬영한 박태홍 전 기자는 “그 땐 그의 이름도 국적도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외신 기자 중 한 사람일 뿐”이라고 전했다. 당시 광주에서는 힌츠페터 외에 미국과 일본 등 각국에서 파견된 외신 기자들이 현장을 지켰다. 국내 언론을 불신한 시민군은 참상을 전 세계로 알리기 위해 외신 기자의 취재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심지어 투쟁 상황 및 입장을 밝히는 브리핑마저도 외신만을 상대로 하곤 했다. 박 전 기자는 “당시 우리(내신)는 ‘찬밥’ 신세였지만 외신 기자들은 시민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고 회고했다. 계엄군이 도청을 장악한 27일 미국 ‘ABC News’ 차량 주변에 모여 무언가를 받아 적는 듯한 사진 속 내신 기자들의 모습은 당시 암울했던 우리 언론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계엄군에 의해 전남도청이 함락된 27일 내신 기자들이 미국 ABC News 취재 차량 주변에 모여 뭔가를 받아 적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24일 내신 기자들이 광주 외곽에 주둔해 있던 계엄군의 탱크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전남도청이 함락된 27일 내신 기자들이 광주 도심으로 진출하는 계엄군의 탱크를 촬영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내신 기자들이 27일 전남도청 앞 거리에 모여 앉아 끼니를 때우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22일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집회 도중 일부 시민들이 김용일 전 한국일보 사진부 기자의 카메라를 향해 불만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2 자괴감과 싸워야 했던 내신기자들

시민군의 상황을 벽안의 외국인 기자로부터 전해 들어야 했던 내신 기자들의 자괴감은 컸다. 주객이 전도된 ‘이상한’ 상황도 받아들이기 어려웠거니와 간신히 작성한 기사와 사진이 번번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됐기 때문이다. 박 전 기자는 인편으로 어렵게 전해 받은 5월 24일자 신문을 본 후 그 소회를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펴 보지 못한 내 입장, 시민이 봐서는 안 되는 신문. 그래도 난 한국일보 기자란(인)가? 비참했다.”

그는 또, “당시 광주를 지킨 기자들 모두 사명감이 투철했고 긍지가 있었지만 현실은 비참했다. 모 신문사 동료 기자도 나처럼 시위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는 등 쓰레기 취급을 당했다”고도 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회 현장에선 내신 기자들을 향한 불만이 어떻게 표출될 지 몰라 눈치껏 조심스럽게 취재를 해야 했다. 22일 도청 앞 집회를 기록한 김 전 기자의 사진 속에서 군중들의 불만스러운 눈초리는 그의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다. 계엄군과 시민들 사이에서 옷 섶에 카메라를 감추고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은 이제 그날의 참상을 증언하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았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광주로 파견된 외신 기자들이 전남도청이 함락된 27일 도청 주변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27일 전남도청 주변에서 영상을 취재하고 있는 외신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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