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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한한령’에 막혀도 의연한 배우 박민영

입력
2017.08.1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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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영은 ‘7일의 왕비’에서 잦은 눈물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달 27일 방영한 18회에서는 부모님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다가 혼절까지 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KBS2 방송화면 캡처
박민영은 ‘7일의 왕비’에서 잦은 눈물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달 27일 방영한 18회에서는 부모님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다가 혼절까지 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KBS2 방송화면 캡처

중국 진출을 모색하는 한국 스타들이 ‘한한령’ 이라는 태풍을 맞고 표류 중입니다. 배우 박민영도 예외는 아니었죠. 2015년 중국 광저우TV 60부작 드라마 ‘금의야행’에 이어 지난해 중국 동방위성TV, 절강위성TV에서 방영 예정이었던 ‘시광지성’(시간의 도시)에 출연했지만, 두 편 다 방영이 보류됐습니다. “여름 내내 농사를 열심히 지었는데 수확을 하지 못해” 속상하고 아쉽습니다.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데뷔 11년차 배우는 여유 있는 웃음을 짓습니다. “언젠간 방영되지 않겠어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마음 편하게 기다려야죠.”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민영은 “흥행 여부를 떠나 연기하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중국 진출 신호탄은 미뤄졌지만 많은 걸 보고 배웠던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습니다. ‘금의야행’은 명나라 시대로 시간을 거슬러 간 주인공이 황제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는 내용의 시대극입니다. 그동안 SBS ‘자명고’, KBS2 ‘성균관 스캔들’ ’7일의 왕비’, MBC ‘닥터진’ 등 사극에 강세를 보였던 만큼 시대극을 표현하는 게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언어였습니다. 중국어를 할 줄 몰라 스태프와 의사소통을 할 때마다 진땀을 뺐죠. 통역사에게 매일 상대역과 자신의 대사를 물어 예습하고 감정 연기까지 준비해야 했으니, 타지에서 고군분투하면서 나름 고충도 많았을 겁니다.

그래도 현장에서는 대접을 받으면서 일했습니다. 리허설을 미리 해놓고 제작진이 현장에 세팅을 마치면 배우를 부른다거나, 스태프들이 이동하는 배우를 따라 다니며 휴대용 에어컨을 틀어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대우받으며 일하는데 중국어를 배워 대화하는 것이 예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만도 하죠. 여기에 다음 작품을 찍을 때는 중국어 대사를 소화해야겠다는 열의도 생겼습니다. 두 번째 작품인 현대극 ‘시광지성’을 촬영하기 전 그는 한국에서 기본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어를 배워 갔습니다. 박민영은 “중국어로 말을 하니 현지 스태프들이 너무 좋아하더라”며 “중국어 연기를 하면서 표현력도 넓어져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고 웃었습니다.

박민영은 “친구들이 나를 ‘민용’이라 부른다”며 “평소엔 화장도 안하고 잠옷 차림이어서 내가 화장한 모습을 보면 박수를 치곤 한다”며 웃었다. 와이트리컴퍼니 제공
박민영은 “친구들이 나를 ‘민용’이라 부른다”며 “평소엔 화장도 안하고 잠옷 차림이어서 내가 화장한 모습을 보면 박수를 치곤 한다”며 웃었다. 와이트리컴퍼니 제공

중국과 한국의 드라마 촬영 시스템은 달랐습니다. 박민영은 “중국 제작진이 배우를 챙겨주는 것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연기에만 집중하라는 배려”라고 설명했습니다. 무엇보다 잠을 푹 잘 수 있도록 해주는 환경이 가장 감동적이었죠. 중국에선 평소 9~10시간 정도 숙면을 하고 촬영에 임했고, 스케줄이 촉박할 때라 해도 4~5시간 정도 잠을 잤다고 합니다. “4시간도 우리나라 제작 환경에서는 많이 자는 편이죠. 중국 배우들에게 ‘우리는 잠을 안 자고 촬영한다’고 했더니, ‘안 자는데 대사를 어떻게 외우냐’고 하더라고요.”

생방송 수준으로 빠듯한 촬영 스케줄에 쪽대본, 밤샘 촬영까지 잦은 우리나라 환경과는 분명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촬영 일수에 따라 제작 비용이 책정되는 구조라 날 잡아 왼종일 일하는 게 관행입니다. 인건비, 장비 대여비 등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 일주일에 1~2회 정도는 밤샘 촬영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너무 나아간 생각일지 모르지만, 박민영과 대화하면서 문득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사망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CJ E&M의 고(故) 이한빛 PD는 지난해 10월 열악한 노동 환경을 비판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당시 가혹한 드라마 제작 환경과 노동 강도가 새삼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 PD가 아무리 급할 때라도 4~5시간 정도의 잠을 잘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요. 생각하니 씁쓸해지기만 합니다.

30대에 접어든 박민영의 바람은 "오랫동안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중국 진출의 기회가 꺾인 상황에서도 의연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불필요한 감정을 버리는 연습"을 한 것이 도움이 됐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박민영은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은 마음을 비우는 작업을 했을 때 나오더라"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연기를 이어가면 즐거운 일도 찾아오고, 계속 행복하게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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