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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다급한 미국의 친일(親日) 행보

입력
2015.08.2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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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아프리카의 소국, 지부티(Djibouti). 이 나라의 농림수산부 장관은 누굴까. ‘모하메드 아메드 아왈레’라는 이름을 쓰는 분이다. 갑자기 이런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면 미국 중앙정보국(CIA) 홈페이지의 ‘월드 팩트북’을 열람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월드 팩트북’에는 세계 267개 국가의 인종, 문화, 경제에 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세계 모든 나라의 정보에 밝다. 그런 미국은 한국과 한미관계를 어떻게 평가할까. 대다수 독자들은 미국 정부가 외교적 수사로 단장해 내보낸 표현에 익숙하다. ‘전쟁의 참화를 딛고 경제 부흥을 이뤄낸 부지런한 한국인’ ‘빛 샐 틈조차 없는 굳건한 한미관계’ ‘한미동맹은 미국 동아시아 전략의 린치 핀(핵심축)’ 등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자기들끼리 돌려보기 위해 만든 자료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많이 다르다. 국무부는 ‘비즈니스 USA’ 사이트를 통해 미국 사업가들에게 한국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데, 한국 사회의 특징과 문화를 놀랄 정도로 상세하게 소개한다.

예를들어 ‘한국 가정은 가부장적 질서 속에 유지되는 것 같지만, 경제적 실권은 아내가 쥐고 있다’고 안내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마케팅 포인트를 남편이 아닌 아내에게 맞춰야 한다’고 조언하다.

한국의 독특한 유흥 문화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미국 사업가들은 한국 파트너와 개인적 친분을 쌓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 고유의 술인 소주와 맥주, 양주 등을 기꺼이 섞어 마시며 ‘노래방’이라는 곳에서 놀아야 한다’는 식이다.

한국에 대한 설명 자료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미묘한 감정까지 포착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일본에 식민 지배당한 역사에 주의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한편으로는 일본인들의 사업능력을 부러워하면서도, 식민통치 때문에 일본과 관계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평가한다. 또 이에 따라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일본을 편드는 태도를 보이면 사업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토록 일본에 대한 한국의 복잡한 속내를 잘 아는 미국이 요즘 대놓고 일본 편을 들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함량 미달 담화에 대해, 백악관은 “일본이 ‘깊은 회오’(悔悟ㆍdeep remorse)의 마음을 갖는다고 표현한 것을 환영한다. 이런 기록은 모든 국가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미국 당국자들의 속내를 대변하는 워싱턴의 동아시아 전문가들도 한국에 대한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원래 친일적 성향을 보이는 인물들이지만, 싱크탱크 일부 전문가들은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 달 초 중국 항일전승행사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하는 것은 좋지만, 군사적 행사인 열병식에 참석하는 건 곤란하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미국의 이런 행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국과 일본을 저울질하다가 한국을 버린 걸까. 워싱턴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한국을 버렸다기 보다는 미국이 일본을 너무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을 막기 위해 오래 전부터 두 나라를 동맹의 한 틀 속에 묶으려는 계획의 실행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얘기다. 다급해진 미국이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사실 한일 대립구도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한국 언론에는 두 나라 사이의 엄연한 국력과 외교력 차이가 부각된 적이 없다. “한국은 서운하겠지만, 전략적 가치로 따진다면 한국은 일본에 못 미치고 대만과 같은 등급”이라는 찰스 글레이저 조지워싱턴대 교수의 평가는 워싱턴의 일반적 견해다.

북한 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경제 이익과 안보 사이에서 우리의 최종 입장을 밝혀야 할 순간이 멀지 않아 보인다.

조철환ㆍ워싱턴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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