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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영화 100-1주년

입력
2018.04.30 18:2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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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0월 27일, 김도산이 연출한 ‘의리적 구투’라는 영화가 단성사에서 상영되면서 한국영화는 시작된다. 논란은 있다. ‘의리적 구투’는 요즘 우리가 접하는 영화와 사뭇 다른 ‘연쇄극’(키노 드라마)으로 연극과 영화가 결합된 형식이었다. 좀 더 엄격한 개념 적용을 했을 때, 한국영화의 탄생일은 조금은 미뤄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계는 이 날로 합의했고, 10월 27일은 ‘영화의 날’로 지정되었으며, 올해는 99주년, 그리고 내년은 100주년이다.

‘영화 1세기’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준비 중이다. 여러 아이템이 예상된다. ‘100’이라는 숫자가 중심 아닐까 싶다. 100편의 영화를 뽑고, 100인의 영화인을 선정하고, 100명의 감독이나 배우의 리스트를 만들고, ‘명장면 100’을 선정하고···. 내년이 되면 관련 기관은 이벤트를 할 것이고, 저널은 특집 기사를 만들어내고, 영화제에서도 각종 기획이 있을 거다. 1995년 세계 영화 100주년 때 그랬던 것 이상으로, ‘한국영화 100주년’도 풍성하고 떠들썩할 것이다.

알찬 100주년을 맞이하기 위해선, 몇 가지 선결되어야 할 일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반성’이다. 내년의 행사들이 우리 영화의 ‘역사’를 위한 것이라면, ‘흑역사’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최근 자행되었던 영화계 블랙리스트의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실질적 위로, 부산국제영화제 파행의 책임자에 대한 구체적 적시, 영화진흥위원회를 비롯한 유관 기관들이 저질렀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권력에 의해 예술인이 감시 당하며 불이익을 받고, 국제적인 행사가 타격을 입으며, 행정이나 지원이나 심의에 관련된 석연찮은 일이 끊이지 않았던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2020년부터 시작될 ‘새로운 영화 100년’이 힘찬 동력을 받지 못할 것이다.

시스템 역시 반성의 대상이다. 최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이슈지만, 특히 독과점 문제는 10년 넘게 지적되어 온, 그럼에도 그 어떤 해결책이나 개선책도 마련되지 못한 부분이다. 브레이크 없이 ‘흥행의 욕망’을 좇아 그 시절을 달려온 셈이다. 그 결과 한국영화 산업의 시스템은 현재 가장 폭력적인 상황에 이르렀다. 자본주의의 논리는 결국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는 지난 시절의 체념이다. 그 끝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시스템 속에선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직감하면서도, 우린 숫자로 환산되는 호황에 취해 모순에 눈 감아 왔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공정 거래’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도 마련되어야 한다. 아울러, 안 그래도 좁은 영토인데 긴 세월 동안 축소되어 온 독립영화의 네트워크도 회복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 영화의 미래는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사’에 대한 반성이다.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면 그 슬로건에 걸맞은 한국영화사가 나와야 한다. 1969년 고 이영일 선생이 ‘한국영화전사’를 내놓은 후 반 세기 동안, 놀랍게도 이 책에 필적할 만한 그 어떤 한국영화사도 나오지 않았다. 여러 필자들의 논문을 모은 책이나, 사실을 나열한 연보에 가까운 책은 있었지만, 역사가가 어떤 관점을 지니고 한국영화의 역사를 바라본 책은 ‘한국영화전사’가 유일하다. 내년에 맞이할 한국영화 100주년. 진짜로 100년의 세월을 끌어안고 싶다면, 그 뒤를 잇는 한국영화사 서술이 나와야 한다. 우리의 영화사는, ‘100’이라는 숫자로 각종 리스트를 뽑는 이벤트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 의한 해석에 의해서만 풍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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