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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나는 지금 서울로를 걷는다

입력
2017.09.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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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한달 전 ‘서울로 7017’의 모습. 오래된 서울역 고가도로를 꽃과 나무가 있는 공중보행길로 리모델링했다. 홍인기 기자
개장 한달 전 ‘서울로 7017’의 모습. 오래된 서울역 고가도로를 꽃과 나무가 있는 공중보행길로 리모델링했다. 홍인기 기자

“러~브(love).”

러브, 사랑이다. 6일 한국에 온 ‘서울로 7017(이하 서울로)’의 설계자 비니 마스는 기자간담회에서 ‘서울로’에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로를 향한 비판적 여론에 대한 답변이었다. “서울로가 더 좋은 곳이 되려면 지속적인 유지와 관리가 필요하다. 유지와 관리는 사랑의 상징이다. 모든 건축물은 사랑과 관심을 통해 더 좋아진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2012년 안전등급 D를 받았다. 애초 철거 계획을 내놨던 서울시는 2014년 고가를 없애는 대신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오래된 고가를 철거하지 않고 보행로로 바꾼다는 아이디어는 매우 그럴 듯 해 보였다. 철거는 나쁜 말이고 재생은 좋은 말 아닌가. ‘차 대신 사람’이란 말에도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는 다양한 수종의 꽃과 나무 2만4,000여 그루가 있는 생태공원을 표방했다. 생태라니, 이것도 좋은 말 아닌가. 또 있다. 시는 서울역 노숙인들을 정원사로 고용, 서울로의 수백 개 화분을 관리하게 하겠다고 했다. 재생, 재활, 생태, 사람. 세상 모든 윤리와 도덕은 서울로에 다 모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쩌다 건축가가 사랑과 관심을 애걸하는 상황이 됐을까.

건물과 도시에 대한 사랑은 한국에선 낯선 말이다. 서울로 기획 초기 단계에서 비교됐던 뉴욕시 하이라인 파크는 시민 두 명이 버려진 고가철로의 철거를 반대하면서 얻어낸 결과물이다. 철로를 지키기 위해 조직된 시민단체 ‘하이라인과 친구들’은 뉴욕시장을 설득해 철로를 1.6㎞ 길이의 공중공원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선진국 시민들은 건물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파리에 에펠탑이 등장했을 때 시민들로부터 받은 미움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은 에펠탑을 증오하다 못해 늘 탑 안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거기가 에펠탑을 보지 않을 수 있는 파리의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사랑이든 증오든, 그 건물들은 관심의 한가운데 있었고 수많은 의견 속에서 부대꼈다. 시민들은 자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자기 것이라 생각했고,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반면 서울의 건축물들은 늘 침묵 속에 있다. 지금은 작고한 이라크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경우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모양 때문에 준공 당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시민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DDP를 지나쳐 출근하고 퇴근했다. 그렇다고 그 건물을 용서한 건 아니었다. 건물과 비슷한 맥락으로 도시가 바뀌지도 않았다. DDP에 대한 태도는 정확히 말하면 무관심이었다.

건축가 하디드는 DDP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온 적이 없다. 이를 DDP가 동대문과 어우러지지 않게 된 원인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가 방문했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게 있었을까 싶다. 동대문의 무엇이 건축가를 멈칫거리게 만들 수 있었을까. 평화상가? 밀리오레? 종합시장? 건축가로 하여금 ‘거슬렀다간 난리 나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풍경이 있었을까.

우리의 건물과 도시는 더 많은 감정에 노출될 필요가 있다. 학대와 애착의 흔적이 더 뚜렷해져야 한다. 서울로는 현재로선 사랑 보단 미움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보행은 불편하고 마감은 온전하지 않고 식물은 부족해 헐벗은 것처럼 보인다. 겨울이 되면 더 심해질 것이다. 건축가의 요청대로 사랑도 필요하다. 서울로의 ‘깜짝 이벤트’ 같은 외관은 한국이 좋아하는 종류다. 한국인은 열광에 특화된 민족이고 ‘최초의 공중보행로’ 같은 말에 언제든 들뜰 준비가 돼 있다.

최악의 대응은 한숨 한 번 쉬고 눈을 돌리는 것이다. 안 들리게 수군대다 그만두는 것이다. 외국의 스타 건축가가 설계한 랜드마크가 국내에 상륙할 때마다 폭탄 떨어진 듯 허둥대지 않으려면, 거주자들의 호오를 건물과 도시에 부지런히 새겨야 한다.

황수현 문화부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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