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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실종, 이상한 죽음… 야마가미 일가엔 무슨 일이

입력
2018.04.1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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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일본 미제사건 갤러리’는 일본의 유명 미제 사건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누구는 ‘사람 잡아먹는 산’ 전설이 현실이 됐다고 했다. 누구는 악마가 벌인 짓이 분명하다고 했다. 소설로 따지면 발단, 전개, 절정 없이 결말만 남은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빈 자리는 호사가들이 엄선한 그럴 듯한 소문과 추측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말만 무성할 뿐, 헤집고 들어가면 진실은 한 톨도 없었다. 2001년 초여름, 일본 히로시마(広島) 세라정(町)의 한 평범한 가정집에서 일어난 4인 가족 실종사건 이야기다.

식사하다가 사라진 가족

야마가미 가(家)의 가장 마사히로(山上政弘ㆍ실종 당시 58세)는 건축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채석장에서 근무하는 아내 준코(順子ㆍ당시 51세), 어머니 사에구사(三枝ㆍ79세), 반려견 ‘레오(시츄)’와 함께 살았다. 분가한 외동 딸 치에(千枝ㆍ당시 26세)는 부부의 자랑이었다. 공립 초등학교 교사였던 치에는 마을 홍보모델에 발탁될 만큼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미래를 약속한 남자도 있었다. 적어도 2001년 6월 4일 전까지는, 그랬다.

이날 오후, 준코의 직장동료 A씨는 마사히로의 집을 찾아갔다. 준코가 정오를 훌쩍 넘어서도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앉자 노파심에 찾아간 것이었다. 준코는 이날 A씨를 비롯한 동료들과 중국 다롄(大连)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A씨는 열심히 현관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돌아온 건 기분 나쁜 침묵뿐. 왠지 모를 음산함에 A씨는 준코의 친척 B씨에게 연락했다. B씨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은 집안에서 묘한 광경을 목격했다. 준코와 가족은 온데 간데 없고, 준코의 짐 가방만 덩그러니 거실 한 편에 놓여 있었다.

사진 왼쪽부터 남편 마사히로(58), 아내 준코(51), 어머니 사에구사(79), 딸 치에(26)씨의 생전 모습. E채널 ‘용감한 기자들2’ 방송 캡처
사진 왼쪽부터 남편 마사히로(58), 아내 준코(51), 어머니 사에구사(79), 딸 치에(26)씨의 생전 모습. E채널 ‘용감한 기자들2’ 방송 캡처

집안은 방금 막 사람이 나간 듯한 흔적으로 가득했다. 거실 불은 켜져 있었고, 포장지가 벗겨진 구충제 4알이 최후의 목격자처럼 식탁 한 편을 지키고 있었다. 경찰은 집 수색을 통해 샌들 4켤레와 잠옷 몇 점이 사라진 사실을 확인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고, 혈흔 반응도 검출되지 않았다. 경찰은 뒷문이 열려있고, 휴대폰 등 귀중품이 사라지지 않은 사실도 파악했다. 귀중품에는 준코가 여행 경비로 쓰려고 했던 15만 엔(약 149만 원)도 포함돼 있었다. 경찰은 분가한 치에를 포함한 네 식구 모두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치에가 이날 학교에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 상황을 토대로 재구성한 사건의 얼개는 대충 이랬다. 3일 밤 또는 4일 새벽, 야마가미 가족은 어떤 이유로 식사를 멈췄고, 집 뒷문을 통해 빠져나가 차를 타고 집밖으로 나갔다. 손에는 잠옷 몇 점이 들려 있었고, 샌들을 신고 있었다. 가족은 멀리 떠나려던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거실 불을 끄고 나갔을 것이다. 특히 아내 준코는 적어도 이날 오전 중에 집에 돌아올 거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외출이 길어질 것을 알았다면 분명 짐 가방을 챙겨 나왔을 것이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들이 왜 황급히 집을 떠났고, 어디로 가려 했느냐는 점이다.

댐에서 발견된 시신… 사건은 미궁 속으로

히로시마 경찰은 기동대, 헬리콥터를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결과는 허탕. 별 다른 성과 없이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2002년 9월 7일 야마가미 일가의 집에서 약 18㎞ 떨어진 교마루(京丸) 댐에 자동차로 보이는 물체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예년에 비해 강우량이 줄어들어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는데, 한 행인이 무심코 댐을 보다 이상한 물체를 발견한 것이었다.

야마가미 가족이 시신으로 발견된 교마루 댐 전경. 야후 재팬
야마가미 가족이 시신으로 발견된 교마루 댐 전경. 야후 재팬

확인 결과 자동차는 실종된 야마가미 가족의 차량이 맞았다. 마사히로, 준코, 사에구사, 치에의 시신은 차 앞 좌석과 뒷 좌석에서 나란히 발견됐다. 반려견 레오도 함께였다. 특이한 건 시신 모두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마치 잠자다 세상을 떠난 듯한 모습이었다. 부검 결과, 시신에선 수면제 등 약물이 검출되지 않았다. 외상 등 타살 흔적도 없었다. 이는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동기가 석연치 않았다. 한날 한시 목숨을 끊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일가족에게 있었다면, 그 징후나 전조가 분명 지인들에게 관찰됐을 터. 하지만 일가족을 아는 사람들은 실종 전 가족들에게 별 다른 특이점을 느끼지 못 했다고 입을 모았다. “‘마사히로에게 무슨 고민거리가 있는 것 같다’고 준코가 말한 적 있었다”는 몇몇 이웃들 증언도 있었지만, 그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댐에서 발견된 마사히로의 차량과 같은 모델의 차량 사진. 네이버 마토메 캡처
댐에서 발견된 마사히로의 차량과 같은 모델의 차량 사진. 네이버 마토메 캡처

히로시마 경찰은 시신 발견 뒤 추가 수사를 거쳐 “일가족이 자살했다고 볼 만한 충분한 이유를 찾았다”며 별 다른 설명 없이 해당 사건을 ‘집단자살’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오히려 억측만 키웠다. 사건을 통해 득을 보려는 사람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2003년 한 일본 방송에서 사건 내용을 사전 정보 없이 알아냈다고 주장한 미국 심령술사가 대표적이다. 이 심령술사는 오로지 자신이 가진 ‘투시력’만을 이용해 사건 내용과 차량이 발견된 곳을 맞혔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제작진과 심령술사가 짜고 친 ‘조작극’이라는 게 현지 네티즌들의 평가다.

“진범은 친척 B씨?”

사건 발생 후 17년이 지났고, 집단자살이라는 경찰의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야마가미 가족 실종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특히 ‘5ch’이나 ‘니코동(니코니코동화)’ 등 일본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잊을 만하면 한번씩 사건 동기, 내막, 원인 등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실종사건과 관련한 가장 유명한 루머는 한 무당이 유령이 된 준코를 만나 사건의 진실을 들었다는 이야기다. 실종 당일, 악령이 반려견 ‘레오’에 빙의해 야마가미 가족을 위협했고, 가족들은 이를 피해 차로 도망치던 중 저주에 휩쓸려 저수지에 빠지게 됐다는 것. 물론 쉽게 믿기는 힘든 내용이다.

실제 발견 당시 마사히로 차량의 모습. 니혼TV 캡처
실제 발견 당시 마사히로 차량의 모습. 니혼TV 캡처

경찰에 가장 먼저 실종 신고를 한 친척 B씨가 진범이라는 추리도 있다. 실제 B씨가 당시 보인 행동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고 한다. B씨는 평소 빚이 좀 있었는데, 채권자들의 독촉을 이기다 못해 보험금을 노리고 야마가미 가족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주장에는 맹점이 있다. 심증만 있고, 물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야마가미 가족 실종사건은 그 기묘한 실종 과정 때문에 몇몇 만화,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 극장판 ‘태풍을 부르는 영광의 불고기 로드(2003)’는 별안간 흉악범으로 몰린 짱구 가족이 이를 피해 도망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또 오리하라 이치(おりはらいち)의 추리소설 ‘행방불명자(2009)’는 갑자기 모습을 감춘 일가족의 행방을 쫓던 기자가 예상치 못한 진실과 맞닥뜨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송영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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