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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중] 과반 의석 확보 정당 없는 ‘헝 의회’ 유력…불확실성의 시대로

입력
2018.01.04 22: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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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 사진은 2016년 말 총리직에서 물러났던 렌치 전 총리가 지난해 4월 당 대표 경선에서 압승한 뒤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로마=EPA 연합뉴스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 사진은 2016년 말 총리직에서 물러났던 렌치 전 총리가 지난해 4월 당 대표 경선에서 압승한 뒤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로마=EPA 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서 청년 3명 중 1명은 일이 없어요. 이민자들은 벤치에서 술을 마시며 하루를 보내고요. 특히 이민자들은 직업 훈련도 안 돼 있고 우리 언어도 모르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죠? 이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관리가 안 되면 세대를 거쳐 여기서 살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참 걱정입니다.” (마르코 마리노ㆍ회계사)

“이탈리아는 경제적ㆍ재정적 안정성이 절실합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안정성이 중요하죠. 우리는 유럽연합(EU) 창립 멤버로서 양적 완화와 같은 이점을 얻었어요. 때문에 이탈리아에게 인도주의적 정책을 요구를 하는 건 바람직해요. 이탈리아가 북유럽국가들처럼 포용정책을 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이민자들이 여기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통합의 기본요소이니까요.” (마르코 네리ㆍ통신회사 직원)

마리노와 네리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이탈리아 일간 라스템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젊은 층’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마리노는 포퓰리즘 성향의 오성운동을, 네리는 중도 좌파 성향의 집권 여당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올 3월 4일 상ㆍ하원 의원을 뽑는 총선을 앞두고 이탈리아 민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실업률은 지난해 8월 기준 11.2%로 EU에서 세 번째로 높다. 특히 15~24세 청년 실업률은 37%에 육박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4년 간 50만명이 넘는 이민자가 이탈리아로 유입됐다. 경제위기와 난민 문제가 선거의 주요 이슈로 자리잡은 가운데, 이탈리아 국민들이 이번 총선에서 어느 당에 더 힘을 실어줄 지 주목된다.

지난달 22일 여론조사기관 IXE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선두를 달리는 정파는 오성운동이다. 지지율이 29%다. 민주당은 22.8%를 기록 중이다. 이어 중도 우파 전진이탈리아가 16.2%, 극우 성향의 북부동맹이 12.1%를 나타내고 있다.

단일 정당 가운데 가장 지지율이 높은 오성운동은 최근 들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7월만 해도 27%로 민주당(27.5%)보다 낮았지만 11월 들어 28%로 민주당(23.4%)을 추월한 데 이어 12월에는 격차를 더 벌렸다.

그림 2루이지 디 마이오(오른쪽)가 지난해 9월 북동부 리미니에서 열린 전당대회 성격의 연례회합에서 오성운동의 새 대표로 선출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은 오성운동 창립자인 베페 그릴로. 리미니=AP 연합뉴스
그림 2루이지 디 마이오(오른쪽)가 지난해 9월 북동부 리미니에서 열린 전당대회 성격의 연례회합에서 오성운동의 새 대표로 선출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은 오성운동 창립자인 베페 그릴로. 리미니=AP 연합뉴스

오성운동의 상승세는 부패한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오성운동이 100%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미래세대를 위해 이탈리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오성운동을 지지한다. 한 전문가는 “경제적인 어려움, 이민자에 대한 공포, 부패 정치인에 대한 분노가 사람들을 오성운동으로 눈 돌리게 했다”고 설명했다.

오성운동은 이런 기류를 파악, 총선을 앞두고 31세의 루이지 디 마이오를 대표로 선출했다. 지지층의 외연을 더욱 넓히려는 포석이다.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웨이터와 건설 현장 노동자 등 아르바이트를 하다 정계에 입문하게 된 디 마이오는 특유의 친화력과 소통 능력으로 2013년 이탈리아 역사 상 최연소 하원 부의장을 지내는 등 이탈리아 정치계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오성운동의 출발은 2009년 당시 이탈리아 기득권 세력을 대표하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권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 2009년 10월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인 베페 그릴로가 타도 베를루스코니를 외치며 만들었다. 기성정치에 대한 대안운동으로 시작된 이 정당은 2013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난민 정책에 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해왔으나, 포퓰리즘 정당답게 최근 반(反)난민 기류에 편승해 난민 배척 목소리를 노골화하는 중이다.

우파 연합을 이끌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해 11월 방송 출연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다. 밀라노=AP 연합뉴스
우파 연합을 이끌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해 11월 방송 출연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다. 밀라노=AP 연합뉴스

오성운동이 상승 곡선을 그리는 동안 집권당인 민주당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7월 조사에서는 27.5%로 예상 득표율이 10%를 넘는 주요 정당들 가운데 1등이었지만, 11월 23.4%까지 떨어진 데 이어 지난달 22일 조사에서는 그 보다 더 떨어진 22.8%를 기록했다. 로이터통신은 “내부 분열과 은행 스캔들로 민주당이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을 이끄는 마테오 렌치 전 총리는 부실은행 처리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넣은 의혹을 받고 있는 측근 탓에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다.

오성운동의 상승, 민주당의 하강 구도가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 결과 확실한 승자가 없는 ‘헝 의회’(Hung Parliamentㆍ제1당의 의석수가 과반이 되지 않는 의회)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지난해 10월 민주당 등의 주도로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오성운동의 집권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오성운동은 다른 당과 손 잡지 않는다는 게 원칙인데, 새로운 선거법은 선거 전 정당끼리의 연합을 허용하는 등 연합 전선을 형성하는 게 유리하도록 설계됐다. 다만 현재로선 정당들 간 연합을 구성하더라도 어느 쪽도 과반 의석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우파 연합, 좌파 연합 모두 30%대의 지지율에 그치고 있다.

때문에 결국엔 중도 좌파 연합과 중도 우파 연합이 협력하는 대연정이 성사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럽 경제 전문가인 아자드 장가나는 “오성운동은 1위를 차지하더라도 집권이 어렵다. 규모가 있는 정당들은 오성운동과 연대 하려 하지 않고, 나머지 작은 정당들은 예상득표율이 2~5%에 그쳐 별 보탬이 안 된다”며 “민주당 주도의 연합과 전진이탈리아와 북부동맹이 참여하는 형태의 연정이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헝 의회’가 예견되면서 이탈리아의 불안정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계 컨설팅업체인 테네오 인텔리전스의 볼프강 피콜리는 “안정성 측면에서 최악의 결과”라며 “이(헝 의회)는 부정적 개혁 전망, 행정 악화, 되풀이되는 조기 선거 요구 등을 동반하는 어려운 정치적 단계에 다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 온라인 매체인 쿼츠는 “누가 집권을 해도 경기 침체에서 탈출하고 부채를 줄이고 금융 시스템을 바로 잡는데 어려움을 겪을 텐데, ‘헝 의회’는 이 같은 불안정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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