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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혼란상 보니 중국식 일당독재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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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혼란상 보니 중국식 일당독재가 옳다”

입력
2017.07.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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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인 시진핑(왼쪽부터)과 리커창, 장더장, 위정성, 류윈산, 왕치산, 장가오리. 자오후지는 중국을 단순히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로만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국 공산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인 시진핑(왼쪽부터)과 리커창, 장더장, 위정성, 류윈산, 왕치산, 장가오리. 자오후지는 중국을 단순히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로만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국의 정치권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자오후지 등 지음

매디치미디어 발행ㆍ392쪽ㆍ2만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중국의 인권 운동가 류샤오보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에서 보듯, ‘팍스 아메리카’와 달리 ‘팍스 시니카’에는 여전히 많은 의구심이 따라다닌다. 인권과 자유, 민주처럼, 비록 위선적이라 해도 그나마 우러러보며 따를 만한 어떤 가치나 모델 같은 것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 안테나는 언제나 미래권력으로 향하기 마련. 중국의 부상과 함께 중국 모델에 대한 기대감들은 넘쳐난다.

얼마 전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대니얼 벨의 ‘차이나 모델,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서해문집)가 한 예다. ‘평균적 대중의 상식적 합의’를 가장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주적은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능력주의)’다. 민주주의자라면 메리토크라시를 견제해야 마땅함에도 능력과 성과 위에다 도덕적 탁월함의 왕관까지 씌워준 ‘현능(賢能)주의’ 같은 요란한 번역어를 구사해가며 중국 지도부를 한껏 치켜세웠다. 벨 방식의 접근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서구 비판을 위해 중국을 이상화하는 건 늘 봐왔던 일이다.

중국 지식인들이 중국 모델을 옹호한 건 그보다 더 오래됐다. 서구식 대의제를 인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거세된 민주주의’, ‘순한 양으로 길들여진 민주주의’라 격하게 비판하면서 중국식 일당 체제를 인민의 요구에 곧바로 응답할 수 있는 더 좋은 민주주의라 주장한다. 홍콩 학자 왕샤오광처럼 서구식 정치학의 세례를 듬뿍 받은, 스스로를 자유주의자 혹은 신좌파로 정의하는 이들조차 ‘컨센서스형 정치’ ‘협동정치’ 같은 말들을 써가며 이런 주장에 동의한다. 단순히 팔이 안으로 굽는 건지, 중국 정치권력의 폭력성과 중국 학자들의 어용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인지는 보는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중국의 정치권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는 이런 논란 속에 중국 모델의 정당성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일러주는 책이다. 내부자의 시선이라 함은 저자 자오후지 박사가 중국 공산당 중앙의 간부 교육을 맡은 중앙당 당교(黨校)에서 25년간 교수를 지내면서 공산당 엘리트들이 어떻게 성장하는 지 생생히 지켜본 인물이라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중국 모델을 옹호하기 위해 서구 대의제의 허점을 공격하는 방식을 버렸다. 상대의 실수가, 상대의 단점이 자동적으로 나의 실력, 나의 장점인 것은 아니니까. 대신 역사적 맥락에서 왜 중국은 현재와 같은 체제에 도달했는가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했다.

일단 중국은 진시황 통일 이후 2,000여년간 중앙집권적 통일 제국을 유지하려는 구심력이 강력하게 작동한 사회다. 광대한 영토의 통일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철 같은 관료제가 필요했다. 유교 이데올로기는 이 관료제가 썩지 않는 소금의 역할을 맡았다. 동시에 관료들이 다른 꿈을 꾸지 않고 봉건적 이념 틀을 자발적으로 내면화하는데 기여했다. 이런 최고도의 관료중심 국가는, 뿔뿔이 찢어져있다 뒤늦게 민족국가 꼴을 갖추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온갖 혁명적 이론이 분출했던 서구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런 중국에게 다당제란 곧 혼란과 동의어다. 사례도 있다. 청나라 멸망 뒤 중국에 등장한 정당 수는 무려 300여개였다. 여러 정당이 난립해 싸우는 동안 열강의 중국 침탈은 가속화됐다. 이 때문에 소련 볼셰비키를 본받아 일당 중심의 민주집중제를 철저히 관철하려 든 최초의 인물은 마오쩌둥이 아니라 오히려 쑨원(1866~1925)이었다. 중국에서 일당독재란 단순히 공산당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거대한 대륙을 중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이끌기 위해서는 다당제로 인한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을, 당내 실력 경쟁으로 돌려야 한다고 봤다.

유교문화권에 속한 한국과 대만의 혼란상도 한가지 이유다. 한국은 1945년 광복 이후 300여개의 정당이 나타났다 사라졌으며, 거의 모든 정당이 단명했다. 중국이 보기에 이는 다당제 경쟁으로 인한 극한 대립과 분열을 겪는 혼란의 표본이 한국이다. 대만 또한 마찬가지다. 중국의 시각에서 대만은 다당제로 인한 갈등으로 인해 성장잠재력을 갉아 먹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금 중국이 저렇게 해도 경제가 조금 더 성장하고 어느 정도 먹고 살게 되면 서구식 다당제로 이행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다. 저자는 이를 부인한다. 유교적 문화토대를 지닌 한국과 대만의 혼란상을 지켜보면서 중국은 오히려 ‘우리는 절대 저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18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2012년 기준)

이렇게 보면 공산당의 적은 오직 공산당이다. 그렇기에 당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까다롭게 당원을 선발하고, 중앙ㆍ지방을 두루 겪어보게 하고, 이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는 이를 발탁하고, 직무에 연령제한을 두고, 계단식 승계를 하고 임기제를 적용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공산당 권력의 최정점인 정치국 상무위원들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40여년 안팎의 다양한 업무 경력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실력 검증을 통과한 노련한 인물들이 지도부를 구성하는 셈이다. 저자는 이런 제도들이 마오쩌둥-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을 거쳐 어떻게 만들어지고 다듬어지고 정착되어가는가를 세밀히 설명한다.

이 정도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책 말미 저자와 이광재 여시재 부원장과의 대담의 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숨이 턱 막힌다. 공산당 인기를 묻자 저자의 답은 이렇다. ”‘밥그릇 들고는 고기를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서는 엄마를 욕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엄마 덕에 고기를 먹으면서 먹고 나서는 엄마를 욕한다는 뜻이다. 이보다 더 중국 국민과 당의 관계를 절묘하게 나타내는 말은 없는 듯 하다.” ‘사장님의 갑질’ 사건이 심심하면 터져 나오는 우리나라에서 크게 놀랍다고 하기 힘든 얘긴데도 대륙을 지배하는 중국 공산당의 마인드가 중소기업 사장님 마인드 수준인 건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아무리 곱게 포장해봐야 메리토크라시, 그리고 엘리트주의에 정이 안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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