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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비핵화 둑 무너진 뒤의 안보 패러다임

입력
2017.08.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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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경제제재 효과는 난망

한반도 비핵화론까지 무너져

진실 직면해야 할 우리 안보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의장이 지금 이란을 방문 중이다. 5일 열리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북한과 이란의 인적 교류는 과거부터 활발했으니 그가 이란의 국가 행사에 참석하는 게 새삼스러울 건 없다. 다만, 미국이 북한ㆍ이란ㆍ러시아 통합 제재법을 통과시키고, 당사국들의 반발이 커지는 시점의 방문이어서 눈길을 끈다.

잘 알려졌듯 두 나라는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 때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됐던 나라들이다. 국제사회로부터는 ‘핵ㆍ미사일 커넥션’ 의혹을 받던 ‘불량국가’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불량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몸집이 큰 반미 대오의 큰 손으로 부상했다. 두 차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동북아 안보구도를 뒤흔들고 있는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이란 역시 중동에서 ‘시아파 벨트’의 맹주로 미국을 등에 업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패권을 급속히 잠식해가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한 북한ㆍ이란ㆍ러시아 통합제재법은 보기에는 강력하고 포괄적이다. 북한 경제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원유 유입을 원천 봉쇄하고, 가스와 석유를 팔아 먹고 사는 러시아에는 해외 가스관을 틀어막는다는 내용이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인 러시아는 국내총생산(GDP)의 40% 가량을 원유수출에 의존하는 자원대국이다. 이란에도 최고지도부의 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관련된 기업과 개인에 대한 광범위한 제재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느냐이다. 당사국들이 반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유럽조차 미국 국내법에 따른 일방적 제재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자세다. 이런 분위기는 북핵 제제공조에까지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추가제재에 반대하는 것도 국제적인 반미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반미정서에 편승해 북한 제재에 대한 반대 명분을 찾는 형국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가 러시아ㆍ이란 제재와 한 묶음으로 처리된 탓도 있지만, 대북추가 제재는 중국, 러시아의 반대로 벌써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구나 북한의 2차 ICBM 도발 전에 입안된 대북 경제제재 조치는 지금의 위기 체감지수와도 차이가 있다. 미국 정계에서 경제제제보다 군사적 대응이라든가 평양과의 직접협상을 촉구하는 대화론 등 양 극단의 접근법이 터져 나오는 게 그 방증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조건반사적 대응에 불과했던 대북 경제제재의 정치적 효력마저 이제는 한계에 봉착한 느낌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중국의 변화다.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은 중국이 입버릇처럼 떠들던 한반도 3대 원칙이다. 그러나 북한의 2차 ICBM 도발 이후 중국 당국의 입에서 비핵화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대신 “북핵 문제는 미국과 북한과의 문제”라고 할 뿐이다. 미국과 북한과의 협상 여하에 따라 북한의 핵 보유를 문제삼지 않을 수 있다는 투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을 안보위협이라기보다 한미동맹을 흔들 수 있는 카드로 여긴다거나, 북한의 ICBM 보유가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중국의 이런 입장과 맥을 같이 한다. 북한의 핵 보유가 중국 입장에서는 더 득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북한의 핵 보유가 코 앞에 있고, 이를 무기화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이 완성단계에 있는 마당인데도 여전히 제재 반대를 고수하는 중국의 논리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보유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북제재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무망해지는 상황에서 우리 국익에 맞는 어떤 해법도 찾기 힘들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과의 대화라는 것도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든가, 아니면 남한에서의 미군철수와 같은 급격한 안보환경의 변화를 초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리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미 한반도 비핵화라는 둑은 무너지고 있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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