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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쥐구멍과 밤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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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쥐구멍과 밤송이

입력
2018.03.07 14:0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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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이라는 속담이 있다. 풀을 먹으려고 쥐구멍을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가리킨 것이다. 속담에 등장하는 쥐구멍은 쥐에게는 생존의 통로지만 곡식을 지켜야 하는 농민들에게는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쥐구멍을 막지 못하면 한 해 동안 피땀 흘려 거둔 수확물을 고스란히 쥐에게 바칠 수도 있었다. 아무리 빈틈없이 문을 닫아도 땅 속에서 구멍을 파고 들어오는 쥐를 막기란 쉽지 않았다. 요즘에야 전문적인 퇴치대행 회사도 있고 간편히 사용할 수 있는 쥐약도 있지만 옛날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조상들이 짜낸 지혜가 밤송이로 쥐구멍을 막는 것이었다. 비용도 들지 않고 효과는 아주 만점이다. 밤송이에 달린 가시가 쥐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밤송이 하나에는 약 3,500여 개의 뾰족한 가시가 아주 조밀하게 박혀 있다고 한다. 쥐가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무릅쓰고 그것을 밀어내고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곡식창고 근처의 쥐구멍을 모두 찾아 밤송이로 막는 것은 마치 안전을 위한 예방활동과 많이 닮아있다. 작은 것이라도 위험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을 미리 찾아 제거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안전관리다. 일단 사고가 나면 큰 희생과 아픔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수고를 미리 하는 데 소홀했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 모두가 한번쯤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제천·밀양 화재는 우리에게 중대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너무도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신속한 초기 현장대응 미숙이란 숙제를 남겼다. 부족한 인력과 장비만 탓하기보다는 근본적 문제점을 들춰내어 선진 화재 대응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지난 2월 5일 시작된 국가안전대진단이 오는 4월 13일까지 계속된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각각 발생한 제천ㆍ밀양 대형 화재로 커다란 아픔을 겪었기에 어느 해보다도 그 의미가 크다.

최근 정부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화재안전대책특별TF’를 꾸려 범정부적으로 안전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화재안전대점검을 전국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이 점검은 과거에 의례적으로 실시하던 점검과는 다르게 화재요인과 관련 있는 모든 차원의 변수를 찾아내기 위해 대규모의 점검요원이 투입될 계획이다. 지난 세월 우리는 여러 차례의 대형화재를 겪으면서 수많은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했었지만 구조적 취약요인까지 해결하지는 못한 게 사실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 몰랐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개선비용이 많이 든다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눈감고 넘어간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런 모든 부분까지도 찾아내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로 관계부처와 민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숙의 중이다. 아울러 국민들과 소통하면서 아이디어와 건의사항을 듣고 대책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은 한양도성에서 연달아 발생한 대형화재를 막기 위해 1426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했다. 그리고 화재예방제도를 전면적으로 정비한 결과 획기적으로 화재를 감소시켰다.

화재를 비롯한 모든 안전은 꼼꼼한 예방점검과 그에 맞는 대책 수립과 실천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도 국민 스스로가 소방시설 등 안전시설물의 유지관리는 물론 생활주변에 안전사고 위험요인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는 자율적 실천이 필요하다. 가정에서는 주택화재에 대비한 소화기를 비치하고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공장이나 창고 등에서는 시설관계자가 책임감을 갖고 소방‧전기‧가스시설 등의 안전점검에 철저해야 한다.

국민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고 국가에는 이를 보장할 책무가 있지만 안전한 대한민국은 우리 모두 동참해 만들어가야 한다. 쥐구멍을 막았던 밤송이에 달린 3,500여 개의 촘촘한 가시에서 안전의 지혜를 한 수 배워본다.

조종묵 소방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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