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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인류학] 말썽꾸러기를 'ADHD 아이'로 만드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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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인류학] 말썽꾸러기를 'ADHD 아이'로 만드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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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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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이하 ADHD)는 진단명 자체가 장애의 속성을 알려주고 있다. 진단기준은 총 18개의 세부 증상을 제시하고 있는데, 9개의 주의력, 6개의 과다행동, 3개의 충동성과 관련한 증상 중 일부를 만족하면 진단을 내릴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집중을 못하며 산만하고 충동적인 아이라는 것이다. 이 ADHD는 소아청소년 정신장애 중에서 가장 흔하지만, 사실 1980년 주의력결핍장애(ADDㆍAttention Deficit Disorder)라는 진단이 처음 등장하기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질환이다. ‘경도뇌기능이상’이라는 비슷한 개념의 질병이 전에 있었지만, 현재의 ADHD에 비해 아주 심각한 수준의 아동에게만 아주 제한적으로 진단 내려졌다. 지난 20년간 ADHD 환아의 유병률이 무려 세 배나 증가했는데, 이러한 경향은 아직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역에 따라서 열 명 중 한 명, 심지어는 다섯 명 중에 한 명이 ADHD로 진단받는 경우도 있다.

“오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미쳤거든. 나도 미쳤어. 너도 미쳤고. (중략) 너는 분명히 미쳤어. 미치지 않았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테니까.”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체셔 고양이가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앨리스에게 한 말이다. 삶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정신장애라는 진단을 붙인다고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특히 아이에게 정신과 진단을 내릴 때는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최소한 제 발로 정신과 의사에게 오는 어린 아이는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의 유병률이 금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보건 수준의 향상, 현대인의 증가한 스트레스, 늘어난 수명, 진단 기준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세대에 비해서, 요즘 아이들이 세 배나 더 산만하고 충동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전체 어린이의 약 10%는 이 장애를 의심받거나 진단받고 있으며, 한 학급에 한 명꼴로 약물을 투여 받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현대인의 삶의 방식은 과거에 비해서 극적으로 바뀌었다. 과거 수백 만 년간 사바나에서의 수렵과 채집에 적합하게 진화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이제 인구가 밀집된 도시의 꽉 짜인 일상에 억지로 맞추어 살아야만 한다. 이렇게 유전자가 급격한 환경변화에 발맞추어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게놈 지연(genome lag)’이라고 한다. 물론 기특하게도 하루 8시간 이상 계속되는 수업에 빈틈없이 집중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아이를 칭찬해주는 것과 그렇지 못한 아이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이야기이다.

근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모든 국민은 교육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학교는 모든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모아 주로 문자화된 지식을 위주로 가르쳤다. 학업성취도는 이후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었고, 점차 말썽꾸러기의 전성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 다른 친구의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은 가차없이 적발되며, 말썽쟁이가 마음을 바로 잡도록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성과 한음이 요즘 학교에 나타난다면 곧 ADHD나 품행장애로 진단받을 것이다. 아마 명재상이 되기는커녕 부정적 사건이 가득한 학교생활기록부로 인해 대학 진학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ADHD는 성인기에 이르면서 호전된다. 연구에 따르면 12월 생 남자아이는 1월 생 남자아이에 비해서 ADHD 진단 확률이 70% 높았다. 즉 ADHD 환아의 일부는 단지 반친구들보다 더 어리기 때문에 진단받는다는 것이다. 사실 어린 시절은 가만히 앉아 수업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또한 쉴 새 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자신의 경계를 확인해야 하는 시기이다. 유년기에 ADHD로 진단받았던 환아의 90% 이상이, 성인기에 도달하면 더 이상 진단기준을 만족시키지 않는다. 성숙하면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조급함은 말썽꾸러기들이 유년기의 멋진 탐험을 마치고 귀향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상당수의 ADHD 환아들은 적절한 약물치료를 해야 하고, 치료 후에는 아이 스스로도 아주 만족스러워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좋은 아이’의 기준은 분명 얌전하고 착실한 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 있는 것 같다. 연구에 따라 차이가 많지만 최근 미국 동부의 ADHD 유병률은 9%에 달하고, 그 중 절반이 약물치료를 받는다는 보고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ADHD 유병률이 5% 정도에 머무르고, 치료율은 그 중 10%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직 과잉진단, 과잉치료를 걱정할 단계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ADHD 유병률과 약물치료율을 미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다소 산만한 아이들도 교실에서 같이 어울려 지내고, 조금 늦게 성숙하는 아이들을 기다려줄 수 있는 건강한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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