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기자

등록 : 2018.04.19 17:02
수정 : 2018.04.19 23:06

“임신해도 남성에 책임 없음” 성관계 동의 앱 등장 논란

등록 : 2018.04.19 17:02
수정 : 2018.04.19 23:06

게티이미지뱅크

남성과 여성이 성관계를 맺기 전 ‘상호 동의서’ 역할을 한다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 앱은 사용 동의서에 적힌 내용 중 일부와 홍보용 문구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논란이 된 앱은 지난달 말 등장했다. 개발자는 앱을 만든 이유에 관해 "남성들도 여성들에게 매너 있게 다가가고, 여성분들은 남성들의 매너를 더욱 느끼시면 좋아할 것 같아서"라고 밝혔다.

지난 3월 말 등장한 성관계 동의 앱. 구글 플레이스토어 캡처

이 앱은 성관계 전 서로 동의하고 그 내용을 문서 형태로 남기자는 취지다. 서로 성인임을 확인하고,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 녹음 등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는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임신에 대한 책임을 남성에겐 묻지 않는다는 점과 배우자가 있는 상대방과도 성관계할 수 있다는 내용을 암시한 항목 등은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성관계 동의 앱 계약서 내용. 애플리케이션 설명서 캡처

동의서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임신‘에 대한 내용이다. 동의서에는 "피임은 두 사람이 공동으로 노력하며, 만일 임신이 되었을 경우에도 남자 측에게 책임을 묻지 않음"이라고 돼 있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류혜진 대외홍보팀장은 "콘돔을 착용한다 해도 완벽한 피임이 되는 것도 아니고 피임약은 여성에게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신 책임을 남성에게 묻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신에 관련된 내용은 실정법에도 어긋난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노영희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노 변호사는 "임신이 됐을 때 여성이 남성에게 책임을 묻지 않더라도 아이는 아버지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 두 사람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아이에 대한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앱의 홍보 문구도 비판 대상이다. 이 앱은 '미투유투', '유투미투'라는 수식어와 함께 "미투를 더욱 의미 있게"라는 홍보 문구를 달고 있다. 류 팀장은 "'#미투'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억압과 차별을 참지 않고자 벌이는 일종의 사회 운동"이라며 "이런 미투 운동을 상업적으로 홍보에 오용하고 있다. 이런 앱의 등장 자체가 현 사회에 미투 운동이 더욱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성관계 동의 앱을 홍보하면서 "유투미투", "미투를 더욱 의미있게"라는 문구를 썼다. 성관계 동의 앱 홍보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이 앱이 악용될 소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카카오톡을 통해 서로의 신분과 내용을 확인한 뒤 '동의' 버튼만 누르면 동의서가 작성된다. 만약 악의를 품은 남성 또는 여성이 상대방 몰래 휴대전화를 가로채 '동의' 버튼을 누를 가능성, 또는 강요,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의' 버튼을 누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동의서 자체의 법적 효력에 관해 전문가들은 "없지는 않다"고 했다. 노영희 변호사는 "동의서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동의했다면 효력이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동의서를 작성할 때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또 개별 항목에서 법적 문제가 있는 부분은 무효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임신에 대한 책임을 다룬 내용은 무효"라고 설명했다.

법적 효력에 관해서는 개발자도 확신하지 못했다. 이 개발자는 애플리케이션 상세정보에서 "이게 법적으로 효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최소 근거로 남길 수 있게 카카오톡으로 인증한 이메일로 관계 동의서를 발송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앱 등장 자체가 현재 한국 사회의 그릇된 성 의식을 반영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노영희 변호사는 "과거 결혼을 하고 가족을 형성하는 과정 중 하나였던 성관계가 최근 쾌락만을 위한 행위가 되면서 면죄부를 찾는 세태가 반영된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류 팀장은 "내용이 상당히 남성 중심적으로 작성됐다. 누가, 대체 어떤 여성이 이런 내용이 적힌 문서에 동의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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