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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롱패딩을 입어야 대한민국 청소년이지

입력
2017.12.22 14: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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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등교하는 10대 중ㆍ고등학생들을 보면서 전체주의 체제에서 일터로 향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성이 말살된 획일화한 문화가 싫어서 교복 착용에 반대하고 두발 자유화를 열망했던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하지만 오늘 날의 청소년들은, 그들 앞에 이전보다 더 많은 선택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획일화의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주변과의 다름에 불안해 하며 주변의 선택을 쫓고 그 속에 안주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듯 하다. 똑 같은 헤어 스타일에 똑 같은 복장 그리고 똑 같은 말투까지... 무엇이 우리 청소년들을 획일화한 틀 속으로 몰아가고 있을까.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한 소녀를 후원하던 이가 후원을 받고 있던 소녀에게 성탄절 선물을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그 소녀는 20만원 상당의 유명 브랜드 롱패딩을 선물로 요구했다. 여유가 없는 형편에도 지난 5년 간 매 달 소액을 후원해 오던 그는 후원을 받던 소녀의 태도에 불쾌함을 느끼고 후원을 중단했으며 관련 내용을 한 사이트에 게재한다. 그 소녀는 부친의 질환 및 모친의 근로능력 상실로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고 있던 가정의 아동이었다.

후원자가 게재한 글은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면서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아동이 고가의 롱패딩을 후원자에게 선물로 요구한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무례한 행동이라는 의견과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아동은 유명 브랜드의 롱패딩을 입으면 안되느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후원자가 게재한 글의 진위 여부를 떠나 청소년들이 얼마나 롱패딩을 입고 싶어 하는지, 롱패딩을 입지 않았을 때 청소년들이 느끼는 심리적 고립감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있다.

획일화 현상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역에서 전 연령대에 걸쳐 확인할 수 있다. 길거리가 마치 군영처럼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문제는 옷차림새나 화장법 등 외모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도 획일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주변과 다른 것도 주변이 나와 다른 것도 못 견뎌 한다. 모두가 같은 논리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낀다. 나와 다른 논리와 견해를 가진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을 무시하고 증오하기까지 한다.

물론 어느 조직이나 사회에서도 동조를 위한 집단 압력 때문에 비 대중적인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는 집단사고 현상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집단적 쏠림 현상은 도를 넘은 듯하다. 사회적, 정치적 신념과 관점을 달리 하면 가족과 친구의 연도 끊을 수 있는 우리다. 우리는 일체의 다양성과 다양성에 기반을 둔 건설적인 갈등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건설적인 갈등은 집단 구성원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창의력에 기반을 둔 혁신을 촉진하며 집단사고를 지양함으로써 근거가 약한 가정에 기반을 두고 대안에 대한 적절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의사결정을 막아준다.

감자가 주식이던 19세기 중엽의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대 기근의 원인은 감자마름병에 내성을 가지지 못했던 단일 품종의 감자가 아일랜드 전역에서 재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 많은 사례를 통해 다양성을 잃은 종의 멸종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는 20년 내에 지구 상에서 바나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전 세계 99%의 바나나 농장에서 생산성이 좋고 수확 이후에 익는 속도가 느려 수출에 적합한 캐번디시라는 단일품종을 재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잃고 획일화한 사회를 추구하며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래서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줄지어 등교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두렵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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