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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알레포 전투가 끝난 뒤

입력
2017.01.08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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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포 전투가 끝난다고 해서 시리아의 전쟁이 끝나는 건 아니다. 최근 맺은 휴전협정에 따라 나라 곳곳에서 총성이 멈춘다 해도 그렇다. 알레포 주민 가운데 많은 이들이 거처를 잃었다. 전쟁이 끝난다고 이곳 주민들의 고통이 경감되진 않을 것이다. 알레포 포위 공격으로 인해 역사에서 시리아가 어떻게 기록될지는 더욱 분명해졌다. 워런 크리스토퍼 전 미 국무장관이 했던 말을 빌리자면, 시리아는 ‘지옥에서 온 문젯거리(problem from hell)’로 남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전 장관이 지칭한 보스니아 내전이나 르완다 내전 같은 무시무시한 지역 분쟁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미래의 역사가들은 시리아 내전에서 결정적인 부분을 강조해 지적할 것이다. 시리아 내부의 갈등이 확산하는 데 일조했던 외교적 대실패 말이다.

좋은 외교는 이해관계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서 시작된다. 해당 쟁점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국가와 외부 세력의 이해관계를 모두 따져야 한다. 좋은 외교를 펼치려면 그러한 이해관계를 따를 때 그 지역과 세계 전체의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손실 여부를 신중하게 따져야 한다. 지역의 강국과 세계 열강들이 역량을 강화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외교다.

이러한 과정 내내 보편적으로 공유된 가치와 끊임없이 강화된 가치(이러한 가치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세력 주체들이 힘을 모아 문제와 난관을 해결하도록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 기준과 공통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특정 세력이 이러한 가치를 무기로 악용해 긴장 상태를 악화, 해결책을 무력화하지 않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을 생각해 보자. 보스니아 내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제국의 붕괴, 20세기 초 민족국가들의 등장이 채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났다. 내전은 냉전(국제 조직의 원칙들이 무너진 뒤 새로운 원칙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던 당시)의 즉각적 여파 속에서 발발했다. 양민학살과 인권유린은 부분적으로 이 때문에 벌어졌다.

보스니아 내전은 세계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시험과도 같았다. 이는 결국 국제사회의 제도적 구조(전범재판소 설립을 포함) 변화를 촉진했다. 초기 단계에 있었던 냉전 후 체제가 구 소련에서 막 생겨나기 시작하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가 새로운 역할과 임무를 맡을 수 있었을까. 서구는 새로운 러시아연방과 손을 잡을 수 있었을까. 대서양 양안 간의 관계는 고비를 넘길 수 있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그 지역은 계속 심각한 문제에 시달려 왔지만, 지옥의 문은 르완다에서처럼 여전히 꼭 닫힌 채 열리지 않고 있다. 20년이 지난 세계는 서로 어떻게 협력했는지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시리아가 평화에 이를 수 있는 뚜렷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2012년 이후 처음으로 군병력을 동원해 알레포를 장악하고 있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잔인한 독재자다. 민간인을 비롯해 국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계속 벌이면서, 심지어 화학 무기까지 사용했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정권을 교체하려 했던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미국은 놀랍도록 무능한 외교를 펼쳤다. 미국은 국제적 지원을 결집시키려는 진지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다른 의견이나 이해관계를 살피지도 않으면서 시리아 정권 교체라는 목표를 좇기 시작했다. 어쨌든 시리아는 전략적으로 지중해에 자리해 있다. 이스라엘·요르단·터키·이라크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이 이라크뿐만 아니라 시리아에도 있다. 시리아는 국제사회와 지역의 강국들이 무관심하게 내버려 둘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서구 열강이 시리아 정권 교체를 요구했을 때 이란과 러시아, 이웃 레바논의 시아파를 포함해 다른 세력들은 이를 반대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잘못된 어젠다를 갖고 이를 계속 밀고 나갔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현지에 있는 사실상 무명의 반군에 무기를 공급하기도 했다. 이는 아사드 정권의 동맹이 무기를 확충하는 데 있어서 충분한 핑계거리를 줬다.

미국이 무기를 좀 더 빨리 더 많이 공급했다면 아사드 대통령이 지지 기반을 강화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여러 외부 세력에게 시리아가 얼마나 전략적으로 중요한지, 미국 기반의 군대들이 얼마나 분열상태에 있고 예측이 불가능한지를 간과하는 발언이다.

미국의 진짜 실수는 아사드 대통령, 수니파 반군을 포함해 시리아의 모든 세력과 싸우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대조적으로 보스니아 내전 동안 미국은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당시 유고슬라비아 대통령과 대화했다) 미국은 전쟁 후의 시리아에 대해 어떤 뚜렷한 비전도 없는 편협한 접근법을 펼치면서 외교적 고삐를 사실상 러시아에 넘겨줬다.

지금 미국은 본질적으로 선동가 역할을 하고 있다. 도덕적 분노를 표출하면서 효력도 없는 제네바조약을 무의미하게 언급할 뿐이다.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알레포의 대량살상에 대해 할 수 있었던 건 아사드의 동맹국 러시아에 “창피한 줄 알라”고 소리치는 것뿐이었다. 그 사이 갈등은 더욱 커졌고 유럽연합(EU)을 포함한 미국 동맹국은 모진 부작용에 시달렸다.

포용성이 전무한 외교 정책을 추구하는 건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시리아 반군과 아사드 정부 대리인단이 카자흐스탄에서 새로운 평화회담을 개최할 수 있도록 터키와 힘을 모으고 있다. 러시아와 터키가 보증국 역할을 맡는 이 회담에는 이란도 참석할 예정이다. 하지만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왜 없는 것인가. 더 중요한 건, 미국은 왜 빠져 있는 건가.

미국에선 4년마다 외교 정책이 사라지곤 한다. 이번에는 좀 일찍 시작하는 것 같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조세프 코벨 국제대 학장ㆍ국무부 전 차관보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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