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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서울은 걷기 좋은 도시인가?

입력
2016.04.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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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매사추세츠주 외곽에서 자란 나는 집 주변의 길이나, 숲 속으로 난 길들을 따라 걷곤 했다. 산책은 내게 좋은 취미 같은 것이었다.

시골을 걷는 것과 도시를 걷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시골길을 걸으면 머리는 맑아지고 생각하기 쉬워진다. 도시에서 걸을 때는 에너지가 차오른다. 1990년대 말, 서울에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서울 안에서도 다양한 곳을 걸어 보았다. 그리고 그 길들은 각각 다른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은 왜 걷는 것을 좋아할까. 그것은 A지점에서 B지점까지 도달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하는 가장 편안한 방법, 그 이상이기도 하다. 걸을 때 당신의 기분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머릿속을 단단히 조이고 있던 생각과 감정이 천천히 밖으로 빠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시골길을 따라 늘어선 큰 나무들이나 바쁜 도심에 즐비한 마천루들이 당신의 기분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어떤 도시는 걷는 동안 그 도시의 역사에 흡수되는 느낌이 들게 한다. 나는 1990년대에 석 달 동안 모스크바에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 모스크바야말로 골목 구석마다 역사가 느껴지는 도시다.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그런 느낌이 훨씬 강하다. 그 길을 걷다 보면, 당신은 그곳의 건물을 만들고 길을 따라 조각을 새기던 사람들의 흘러간 세대를 느낄 수 있다.

서울에서는 걸으면서 역사를 느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잘 찾아봐야 한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힘겨운 근대화 이후, 서울은 아주 현대적인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도시의 어느 구석에는 역사가 숨 쉬고 있다.

서울의 바쁜 생활 속에서 걷는다는 것은 취미라기보다 내 정신을 쉬게 하는 것이 되었다. 낮 동안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번역 작업을 하거나 강의 준비를 한다. 가끔은 집에서 일하기도 하고, 시내에 있을 때는 카페에서 일하기도 한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일하고 나면 내 뇌의 활동은 둔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만약 밖으로 나가 20. 30분 정도 걷는다면 내 뇌는 쉴 수 있을 것이고, 다시 일하러 왔을 때 나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나는 걸으면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점심시간 이외에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직장인들 말이다. 만약 상사들이 그들에게 오후 세 시나 네 시쯤 주변을 산책하고 올 수 있게 해준다면 그들의 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질까. 그러나 이러한 내 생각에 호의적인 상사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울은 걷기 좋은 도시인가?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는 걷기 좋은 공간에 살고 싶다. 어떤 도시에서는 밖에 나가 걸을 때 소음과 수많은 인파, 또는 오염된 공기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도시에서의 산책은 기분을 밝게 하고 에너지를 준다.

서울은 걷기에 최고의 도시는 아니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넓게 퍼져있는 다채로운 지역들이 산책을 흥미롭게 만든다. 한강을 따라 걸으면 당신은 힘찬 강의 정기를 흡수할 수 있다.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도시의 소음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몇몇 산들에도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안국동이나 서촌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좋은, ‘예쁜’ 동네도 있다.

그러나 바쁜 서울살이 때문에, 보통 당신의 주변에서만 산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은 소란스러운 도시라고 할 수 있겠으나 나는 그 거리의 에너지가 좋다. 종로를 ‘예쁜’ 거리로 생각하진 않지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잘 혼합된 거리를 따라 걷는 것을 즐긴다. 테헤란로를 걷는 것은 아주 다른 경험인데, 넓은 인도와 도시적 느낌이 매력적이다. 또한, 서울은 빠르게 변하고 있기에 걸으면서 종종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대체로, 서울은 걷기 좋은 곳이다.

달시 파켓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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