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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농구광’ 김정은이 던진 숙제

입력
2018.05.1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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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여자탁구 단일팀 선수들이 지난 4일 일본과 여자단체 준결승 뒤 대형 한반도기를 펼쳐 들고 있다. 대한탁구협회 제공
남북 여자탁구 단일팀 선수들이 지난 4일 일본과 여자단체 준결승 뒤 대형 한반도기를 펼쳐 들고 있다. 대한탁구협회 제공

석 달 전 평창의 관심은 온통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쏠렸다. 경기를 치를 때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통과하는 선수들에게 취재진은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쏟아냈다. “얼마나 가까워졌나.” “에피소드를 소개해달라.” 역시 비슷한 답들이 돌아왔다. “많이 친해진 것 같다.” “여기에선 남북이 따로 없다.” 기계적인 질문과 대답 속엔 “어쩔 수 없이 묻고, 어쩔 수 없이 대답한다”는 공감대가 깔려 있었다. 아이스하키는 동계 종목 중 단일팀의 취지에 부합하고 조건도 맞아 ‘타깃’이 됐다. 그렇게 정치권이 서두르는 바람에 선수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급조된 단일팀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아이스크림과 냉면을 함께 먹고 ‘셀카’를 찍으며 친해진 단일팀의 마지막 ‘그림’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인위적인 화합 분위기를 강권하려 했던 싸늘한 출발을 잊을 수 없다.

지난 4월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 스포츠 교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농구를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경평축구보다 농구부터 하자"면서 북한 최장신 센터 리명훈(235㎝) 등의 이야기를 꺼냈다. 1930년대부터 1946년까지 경평농구가 열렸다. 농구에 관심 많은 김 위원장은 데니스 로드먼을 초청하기도 했다. 대한농구협회가 곧바로 화답했다. 100일 앞으로 다가온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단일팀 구성 의사가 있다고 했다. 이미 정상회담 전 대한체육회에서 세부 종목 협회에 의견을 타진한 결과지만 북한의 농구에 대한 관심을 모를 리 없다. 김 위원장의 농구 사랑은 ‘농구광’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생전 미국프로농구(NBA)를 위성중계로 시청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80년대 말 “농구는 머리를 좋아지게 하는 운동이니 적극 육성하라”고 주문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저변이 약했던 농구를 정책적으로 육성했다. 1996년에 ‘사회적으로 농구하는 분위기를 세우라’는 취지의 친필 교시를 내리면서 북한에선 농구가 생활체육으로 유행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1999년 남북 통일농구대회가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열린 뒤 2003년에는 평양 유경 정주영체육관 개관을 기념하는 농구대회가 열렸다. 북한에서 뛰던 키 235㎝의 거인 이명훈과 ‘북한의 마이클 조던’이라 불렸던 박천종(186㎝)은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농구 원로들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엔 서울보다 평양 농구가 더 강했고,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중 절반은 북한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농구는 아이스하키처럼 ‘보여줄 수 있는 단일팀’으로 최적화된 종목이다. 대한체육회가 구성 가능하다고 조사한 7개 종목 가운데 구기 종목은 탁구와 농구뿐인데 살을 맞대고 완벽하게 팀 전술에 녹아 들어야 하는 농구는 최고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변수는 북한 농구의 수준이다. 남자의 경우 국제무대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북한과 한 팀을 구성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 병역특례혜택이 주어지는 우리 선수들과의 엔트리 구성 문제도 민감하다. 가능성이 보이는 쪽은 여자다. 북한 여자 농구는 2017 인도 방갈로르 FIBA 아시안컵에서 6전 전패로 8위에 그쳤지만 득점왕에 오른 로숙영과 2m의 장신 박진아의 경쟁력은 돋보였다. 단일팀 성사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희망 경기단체 의사 확인에 이어 북측과 논의한 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등 국제기구와의 협의, 다른 출전 국가 올림픽위원회(NOC) 설득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아래로부터의 의지다. ‘감동’을 극대화할 최소한의 성적도 내야 한다. 아이스하키를 반면교사로 충분하고 철저한 의견 수렴 과정과 훈련을 거친다면 북한의 박진아가 리바운드를 잡아 한국의 박지수에게 패스하는 장면을 아시안게임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성환희 스포츠부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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