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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ㆍ인물 집요한 묘사… 英 추리소설 첫 장 열었다

입력
2015.01.2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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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수 없었던 작가의 꿈

조롱ㆍ비아냥 맞선 독자적 대답

추리소설, 인간과 사회로 뻗다

P.D 제임스는 생애 마지막 인터뷰가 된 2013년 BBC 인터뷰에서 당시 새로운 작품을 쓰고 있다며 “그게 책을 낼 가치가 있는 작품인지 나 스스로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그만 쓰게 될 때가 있겠지만, 그건 내 삶이 그만 두는 순간일 거다”라고도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기준에 자신의 작품이 못 미칠 것을 경계했고, 그 두려움 속에 작업을 멈추지 않는 게 작가의 운명이라 여겼다. AP=연합뉴스
P.D 제임스는 생애 마지막 인터뷰가 된 2013년 BBC 인터뷰에서 당시 새로운 작품을 쓰고 있다며 “그게 책을 낼 가치가 있는 작품인지 나 스스로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그만 쓰게 될 때가 있겠지만, 그건 내 삶이 그만 두는 순간일 거다”라고도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기준에 자신의 작품이 못 미칠 것을 경계했고, 그 두려움 속에 작업을 멈추지 않는 게 작가의 운명이라 여겼다. AP=연합뉴스

P.D 제임스는 코넌 도일에서 비롯된 영국 탐정문학 전통의 마지막 작가이자 추리소설의 첫 장을 연 작가라 할 만하다. 그의 문학적 탯줄은 아가사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스 등 양차대전 사이 소위 황금기 작가들의 자궁에서 뻗어 나왔으나 그의 혈관은 ‘범인’을 넘어 인간으로, 또 20세기 중ㆍ후반 변화하는 사회 속으로 뻗어나갔다.

그의 이후 허다한 범죄 스릴러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저 미덕을, 그는 낡고 무거운 전통을 껴안은 채 개척했다. 그의 길은 30년대 이미 만개한 미국 하드보일드 문학의 탐정소설에 대한 조롱과 순문학 진영의 관습적 비아냥에 맞서 독자적인 대답을 묵묵히 쌓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는 ‘누가 범인인가(Who-done-it)’라는 궁극의 빈 칸 위에 존재론적이고 가치론적인 다양한 질문과 응답들을 쌓아 올렸다. 만약 오늘의 추리문학이 그 이름으로 누리는 진지한 문학적 영광- 대중적 인기가 아니라-이 있다면 그에게 빚진 바 크다.

필리스 도로시 제임스(Phyllis Dorothy James)가 2014년 11월 27일 숨졌다. 향년 94세.

다시 읽어 더 좋아지는 추리소설은 사실 많지 않다. 추리소설은 어쨌건 사건과 추리, 단서와 암시가 해답으로 이어지는 서사를 뼈대 삼는, 이성이 승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칡뿌리처럼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작품들이 추리소설에도 적지 않다. 추리 연역의 과정들, 예컨대 독자를 현혹한 설정들이 얼마나 세심하고 또 정직했는지, 사소해 보였던 묘사와 에피소드가 얼마나 정밀하게 서사 전체와 맞물려 있는지 등등은 거듭 읽어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제임스의 작품들이 그러했다.

그는 공간과 인물에 대한 집요한 묘사로 대개의 작품을 시작했다. 성미 급한 독자라면 장황하게 느낄지 모를 그 설명들은 대개 작품 전체의 플롯을 밀고 끌고 떠받치는 은밀하고 성실한 장치다. 정교함은 좋은 추리소설의 바탕이지만 자칫 이야기에서 핏기를 잃게도 한다. 제임스는 저 이성의 건축물 안에 숨소리와 체온을 싣고, 자신의 문학적 탯줄과 혈관의 지향까지 영리하게 담아내곤 했다.

나이팅게일의 비밀(Shroud For a Nightingale) (큰나무,1996) 첫 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쟁반 보 위에는 꽃무늬가 새겨진 컵들이 손잡이를 가지런히 한 채 놓여 있었으며, 두 종류의 비스킷 네 개가 각각 어울리는 접시에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또 찻주전자에서는 금방 끓인 인디언 차의 은은한 향이 풍겨 나왔다. 두 여자는 정돈과 질서가 주는 안정감을 무척 좋아해서 그것에 대해 강한 애착을 느꼈다.”

‘정돈과 질서의 안정감’은 사실 제임스 자신, 그리고 그의 문학이 지향한 가치였고, 이전 ‘탐정’들이 지켜온 가치였다.

하지만 불과 몇 페이지 뒤, 작품의 공간 배경인 간호사 양성학교‘나이팅게일하우스’를 묘사하며 제임스는 이렇게 썼다. “앞으로 불쑥 나와 있는 창문들은 햇빛을 막고 있었다.(…)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이 낡은 태도와 방법들의 장애물을 헤치며 20세기로 기어오르고 있는 때에 이런 빅토리아식 대형 건축물 안에 어린 학생들을 수용하는 것은 정말 가혹한 일이었다.” 제임스는 자신의 시대와 자신의 작품이 읽힐 시대 사이의 간극, 혹은 어긋날 수밖에 없는 흐름의 단층을 의식하며 저 묘사들을 대비시켰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물려받은 정돈과 질서의 언어로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가치를 담고자 했다.

추리문학 계보에서 제임스의 자리를 확인하는 데는 현재로선 줄리언 시먼즈의 블러디 머더(을유문화사, 2012) 만한 게 없다. “고전 추리 소설은 이성이 인간사를 지배한다고 가정했다. 범죄는 개인이 저지르는 것이었고, 사회라는 직물에 뚫린 작은 구멍이었다. 탐정은 추론을 통해 그 일을 수행했다.”(215쪽)

전후 유럽의 추리 작가들은 이성의 폐허 위에서 저 이성의 가치를 복원해야 했다. 그들은 하드보일드의 거장 대실 해밋이 엘러리 퀸의 작품들을 두고 “퀸 씨, 당신의 유명한 주인공의 성생활에 대해 부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런 게 있다면?”이라며 삶이 탈색된 신화적 탐정상을 조롱(블러디 머더 216~217쪽)한 데 대해 대답해야 했고, 레이먼드 챈들러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을 두고 “초등학교 수준의 직역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는 그(푸와로 경감)는, ‘작은 회색 세포’를 조금 굴린 후 열차 침대칸의 그 누구도 혼자 살인을 저지를 수 없었으므로 모두가 함께 저질렀다고 결론을 내리고, 마치 달걀 거품기를 조립하듯 일련의 간단한 작업들로 살인 과정을 분석한다”(심플 아트 오브 머더)며 퍼부은 독설에도 맞서야 했다. 근엄한 순문학 비평가 에드먼드 윌슨이 일련의 뉴욕타임스 칼럼으로 탐정 문학 일반에 대해 퍼부은 조롱은 그러려니 하더라도 말이다.

조롱이니 비아냥이니 했지만, 저 비판들이 터무니없다고 말하긴 힘들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명민한 아마추어 탐정이 범인을 찾고 수수께끼를 풀던 고전적 플롯은 더 이상 답습할 수 없는 시대였다. 시먼즈는 저 책에서 50년대의 몇몇 작가들의 공과를 소개한 뒤 “60년대를 통틀어 영국에서 등장한 범죄 소설가들 중 가장 흥미로운 작가는 의심의 여지없이 P.D 제임스와 루스 렌들”(277쪽)이라고 썼다. 제임스가 데뷔한 건 42세이던 1962년이었고, 10년 연하인 루스 렌들은 64년 첫 작품을 발표했다.

P.D 제임스는 1920년 8월 3일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은 불우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난한(혹은 정직한) 세무조사원이었고, 어머니는 정신병을 앓았다. 제임스는 16살에 고등학교를 중퇴, 아버지 직장에 취직한다. 2차대전이 발발한 뒤 런던으로 이주, 21세에 웨스터민스터 병원 수련의이던 어니스트 화이트를 만나 결혼한다. 화이트는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 정신분열증을 얻어, 병원에서 지내다 64년 숨진다. 제임스는 혼자 세 남매와 시댁 식구들을 부양해야 했다. 그는 49년부터 만 20년간 런던의 한 의료기관 사무원으로 일했고, 68년 공무원 시험을 치러 내무부 공무원이 된다.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40세 무렵부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습작을 썼다고 한다. 그렇게 쓴 원고가 파버(Faber) 출판사 편집장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62년 첫 책 국내 미출간)가 출간된다. 제임스와 파버의 인연은, 데뷔 이후 제임스의 삶과 문학적 평판처럼, 숨질 때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추리작가로 꽤 명성을 쌓은 뒤인 72년 그는 내무부 범죄정책국에 발탁돼 79년까지 근무한다. 1980년 발표한 국내 미출간)의 문학적ㆍ상업적 성공으로 그는 비로소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된다. 제임스는 “의 인세와 해외 판권 수입이 10년간 내무부에서 받은 급여보다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데뷔 이후 50여 년 동안 19편의 소설을 썼다. 그 중 16편이 추리소설이다. 한 입양 소녀가 친부모를 찾아 나서면서 빚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 , 서기 2021년을 배경으로 생식능력이 사라진 인류의 미래를 그린 콰이터스(원제는 The Children of Men, 1992),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후속작으로 발표한 는 추리소설이 아니다. 그 외 자서전과 에세이 등 3권의 논픽션이 있지만, 거의 매년 어떤 해엔 두 편씩 작품을 발표한 그의 친구이자 라이벌 루스 렌들에 비하자면, 또 대다수 추리 작가의 일반적 다산성과 비교해서도 그의 작품은 적은 편이다. 그는 저 소수의 작품으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왕권을 계승한 ‘추리의 여제’라 불렸다.

추리소설 16편 가운데 14편의 주인공이 런던경시청 형사 ‘아담 댈글리시’다. 캠브리지 고교시절 영어교사의 이미지를 밑그림 삼아 창조됐다는 댈글리시는 190cm 키에 과묵하고 품위 있는, 게다가 시를 쓰는 남자다. 그는 사고로 아내와 아이를 잃고 독신으로 지내지만 정갈한 사생활을 유지한다.(그는 2009년 에세이 탐정소설을 말하다에서 감상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그에게서 아내와 아이를 빼앗아야 했다고 썼다.) 자기 연민도 냉소도 없다. 그러니 하드보일드의 주인공들처럼 술이나 마약에 취하는 일도 없다. 공적 업무와 사적 감정을 철저히 구분하면서도 시체 앞에서 예의 없이 구는 검시관을 속으로 경멸한다. 참고인조사 뒤 빈정대듯 보고하는 후배 형사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형사가 돼서 항상 친절하다는 게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하지만 자네가 잔인함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아마 그 때가 형사를 그만두어야 할 때일 걸세.”(나이팅게일… 304쪽) 2001년 인터뷰에서 제임스는 “내가 남자에게 바라는 자질들을 그(댈글리시)에게 부여했다.(…) 용감하되 무모하지 않고, 연민은 품되 감상적이지 않은.” 범죄의 모든 동기는 네 개의 ‘L’ 즉, 욕정(lust) 돈(lucre) 증오(loathing) 사랑(love)으로 대부분 설명되고, 그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이 사랑이라고 믿는 그에게는 크리스티의 푸와로 경감이나 세이어스의 윔지 경에게서는 느끼기 힘든 인간미가 있고, 필립 말로나 샘 스페이드의 건조하고 거친 멋과는 다른 단정하고 안정적인 멋이 있다.

제임스가 학교를 못 다닌 데는 가난뿐 아니라 여성인 탓도 있었다. 그는 페미니즘적 요구가 막 분출하던 시대를 살았으나 그 혜택을 누리진 못했다. 68년 그가 받은 공무원시험 합격 통지서 첫 줄이 ‘Dear Sir’로 쓰였다가 펜으로 ‘sir’가 북북 지워진 뒤 ‘madam’이라 고쳐진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72년 발표한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황금가지, 2007)에서 제임스는 ‘코델리아 그레이’라는 여성 사립탐정을 데뷔시킨다. 노동계급 출신의 사실상 첫 여성 탐정으로 이후 사라 파레츠키의 ‘워쇼스키’ 형사나 토마스 해리스의 ‘클라리스 스탈링’등의 여성 탐정 시대를 연 그는, 하지만 82년의 후속작 을 끝으로 그레이 시리즈를 중단한다. 82년 여탐정…이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그레이가 미국인 남자와 연애 끝에 아이를 가진 미혼모로 설정된 데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주인공의 변형된 이미지가 당시 페미니즘적 분위기 속에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여성상을 돋우는 데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제임스는 그게 자신의 주인공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코델리아는 연애를 하다 임신을 할 여자가 아니고, 아이를 가졌다면 아이 아버지에게 당연히 알렸을 여자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아버지를 가질 권리가 있다. 나는 내 주인공이 사라져버렸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에드가상을 비롯한 수많은 추리문학상을 받았고, 영국 BBC 이사, 런던과 미들섹스의 치안판사, 영국 예술위원회 문학분과 의장 등을 역임했다. 91년 대영제국훈장(OBE)과 함께 남작 작위를 받아 귀족원(영국 상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자리는 초기 얼마간을 빼면 내내 보수당 쪽이었다.

여탐정…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자신의 목숨을 끊는 데는 분명 두 가지 이유밖에 없어요. 무언가로부터, 아니면 무언가를 향해 탈출하는 거지요. 첫 번째 이유는 합리적이죠. 누군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절망과 고뇌를 겪고 있고 그것을 치유할 적당한 기회가 없다면, 차라리 소멸을 택하는 편이 말이 되죠. 하지만 더 나은 존재가 되겠다는 희망이나 죽음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감수성을 채우기 위해 자살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에요. 죽음을 경험하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임사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조차 나는 확신할 수가 없어요. 죽음의 준비과정만 경험할 수 있을 뿐이고, 그것조차 죽고 나서 그 경험을 활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일이에요. 죽음 이후에 어떤 종류건 존재가 있다면 우리 모두는 곧 알게 되겠죠. 죽음 이후에 존재라는 것이 없다면 속았다고 불평할 존재조차 없을 거고요. 죽음 이후의 삶을 믿는 사람은 누구보다 합리적이에요. 그 사람들이야말로 궁극적인 환멸을 피해갈 수 있는 유일한 이들이죠.”

시인 형사를 비롯해 그의 등장인물들이 심심찮게 과시하는 저런 인문학적 교양 때문에, 또 그의 범죄자가 대부분 중산층이라는 까닭에 제임스는 엘리트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곤 했다. 95년 방송 인터뷰에서 “범죄와 살인이 일상적인 도심 우범지역에서는 도덕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해 차별주의자라고 항의하는 이들도 있었다. 시먼스가 블러디 머더에서 도로시 세이어스를 폄하하며 그의 지적 허세를 조롱한 데 대해 제임스가 탐정소설을 말하다에서 세이어스를 적극적으로 감싼 데는 어쩌면 그에게 씌어진 엘리티시즘에 대한 자격지심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와 세이어스는 달랐다. 그의 교양은, 싸움 장면의 야비한 욕설처럼, 대립하는 가치들이 갈등을 심화하거나 극복하는 과정에 끼어드는 문학적으로 정제된 교양이었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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