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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평화의 상징(2.21)

입력
2018.02.20 14:4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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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디자이너 제럴드 홀텀의 '평화 심벌'이 1958년 2월 21일 세상에 등장했다.
영국인 디자이너 제럴드 홀텀의 '평화 심벌'이 1958년 2월 21일 세상에 등장했다.

평화와 저항의 상징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영국인 제럴드 홀텀(Gerald Holtom, 1914~1985)의 평화 심벌이 1958년 2월 21일 세상에 등장했다. 냉전기 동서 핵 군비경쟁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던 때였다. 영국 반핵단체인 ‘핵전쟁 반대 직접행동위원회(DAC)는 58년 4월 4~7일 첫 반핵 시위 ‘올더마스턴 행진(Aldermaston March)’을 준비하고 있었다. 버크셔 올더마스턴은 영국 원자력무기연구센터가 있던 곳이고, DAC 회원들은 연구소까지 평화행진을 벌일 예정이었다.

영국왕립예술학교 출신 디자이너로 2차대전 참전을 거부한 이력을 지닌 평화주의자 홀텀은, 64년 책 ‘군축’의 저자 크리스토퍼 드라이버에 따르면 자청해서, 평화심볼을 디자인해 행사 지도부를 찾아왔다. 둥근 원 안에 몇 개의 선으로 디자인된 그 심볼은, 그 무렵 사람들에겐 직관적으로 반핵 즉 ‘D(Disarmament)’와 ‘N(Neucler)’의 상징 문자의 조합으로 인식됐다고 한다. 해양 재난 등에 쓰이는 국제 수기(手旗)부호에서 ‘D’는 양 손의 깃발을 각각 위와 아래로 향하게 드는 것이었고, ‘N’은 두 깃발을 45도 각도로 바닥으로 기울이는 것으로 표현한다. 로고의 선이 그 형상이었다.

그의 로고는 올더마스터 행진 깃발로 제작돼 세상에 알려진 뒤 60, 70년대 미국과 유럽의 반전시위를 비롯한 다양한 저항운동,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시위 현장 등에 배지와 깃발 등에 널리 쓰였다. 그의 기호는 20세기 초 국제 반전단체인 ‘WRI(War Resister’s International)의 심벌이었던 라이플을 부러뜨리는 형상과도 닮아 있었다. 물론 홀텀이 디자인 저작권을 요구하지 않은 덕이었다.

홀텀은, 훗날 ‘평화뉴스’라는 매체 편집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심벌 디자인 모티브와 관련 “당시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던 나는 화가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의 학살’속 처형당하는 스페인 농부의 모습에서 저 디자인을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림 속 사형 집행인들의 총 앞에 선 스페인 농부는 절규하듯 두 손을 들고 서 있다.

인류 평화ㆍ저항의 상징으로는 그 밖에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 전통에서 유래된 올리브 가지, 올리브 가지를 입에 문 비둘기,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 손가락 ‘V’사인 등이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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