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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3년 전 그 자리... 팽목항에서 모두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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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3년 전 그 자리... 팽목항에서 모두가 울었다

입력
2017.03.2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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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25일 오후 사고해역에서 인양과정을 지켜보고 전남 진도군 팽목항으로 돌아온 뒤 무사 인양을 기원해 준 국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25일 오후 사고해역에서 인양과정을 지켜보고 전남 진도군 팽목항으로 돌아온 뒤 무사 인양을 기원해 준 국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혹시 이 자리를 기억하세요?”

은화 엄마 이금희(48)씨가 25일 낮 12시 30분쯤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두에 발을 딛고서 처음 꺼낸 말이다.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3년 전 침몰한 세월호에서 수습된 어린 학생들 주검이 배에 실려 도착하던 곳이다. 하얀 천에 싸인 채 들것에 실려온 피붙이 시신을 확인한 엄마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숨이 멎을 듯 오열하다가 쓰러졌었다. 이씨는 그런 모진 비극보다 더 끔찍한 세월을 보냈다. 싸늘하게 식은 딸을 품어보지도 못하고 ‘미수습자 가족’으로 불리며 3년을 버텼다.

은화 엄마는 악몽 같았던 2014년 4월,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말을 이었다. “295명이 올라왔던 그 자리입니다. 그때 (딸 은화를, 다른 8명을) 찾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세월호 인양이 큰 고비를 넘길 때까지 침묵하던 하늘은 은화 엄마가 애써 말을 꺼낼 때 울고 있었다. 비가 부두를 적셨다. 이씨가 끝내 울먹였고, 보는 이들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치거나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은화 엄마는 배에서 나오지 못한 9명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고는 “마지막 한 명까지 최선을 다해서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을 정부와 국민들이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우리처럼 아픈 사람, (미수습자가) 어디 있는지 아는데도 못 찾는 부모가 다신 없길 빈다”고 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난 22일 오전 어업지도선 무궁화2호에 몸을 싣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다가 4일 만에 뭍으로 돌아왔다. 세월호가 반잠수선에 제대로 선적된 것을 최종 확인하고서다. 인양이 사실상 성공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생각에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 안으며 다독였다. 다윤 엄마 박은미(48)씨와 아빠 허흥환(53)씨는 딸의 얼굴이 그려진 사진 액자를 매만지며 딸을 그리워했다. 은화네 부부는 껴안고 울먹이며 서로를 위로했다.

주말을 맞아 팽목항에는 추모객들로 붐볐다. 여러 사람이 미수습자 가족의 손을 어루만지거나 안아주며 위로했다. 뒤돌아 서서 눈물을 훔치는 중년 여성들도 있었다. 유족이 머무는 임시 주택쪽 한 컨테이너 벽면에 걸린 ‘4ㆍ16 세월호 참사 사실기록 타임라인’현수막을 쳐다보고는 그날 참사의 기록들을 꼼꼼히 읽는 이들도 꽤 됐다. 바로 옆 세월호 분향소에도 이날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방파제에서 예술인들이 부른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노랫말이 팽목항에 울려 퍼졌다. 천진한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진도=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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