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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디젤차를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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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디젤차를 위한 나라는 없다

입력
2017.10.03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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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폭스바겐코리아의 새로운 수장으로 임명된 슈테판 크랩(Stefan Krapp) 사장이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폭스바겐 영업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임원으로 일하면서 한국 시장에서 폭스바겐이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14년부턴 동아시아지역 영업 기획 총괄을 거쳐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 영업을 책임진 ‘영업 전문가’다. 그가 새로운 사장으로 왔다는 건, 곧 폭스바겐의 영업망이 재개된다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지난해 8월 인증 서류 조작 혐의로 판매가 중단된 폭스바겐 신차가 최근 환경부의 소음 및 배출가스 인증을 통과했다. 대상 차종으론 국내에서 오랫동안 왕좌를 지킨 소형 SUV 티구안을 비롯해 티구안 올스페이스, 파사트 GT, 아테온, 투아렉 등이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장전을 거의 마친 상태다. 이 차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출력은 다르지만 모두 TDI, 즉 디젤 엔진을 탑재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최근 주춤했던 수입 디젤차 시장에 새로운 활력이 돌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때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 엔진을 얹은 차는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였다. 그러다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이후 국내에서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인증 서류 조작이 적발돼 판매가 중지되자 수입 디젤차의 점유율은 50%대까지 떨어졌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 8월 수입 디젤차는 총 8,559대가 팔리면서 총 48.8%의 점유율을 보였다. 업계는 한때 굳건한 베스트셀링카였던 티구안을 시작으로 골프에 이어 아우디 브랜드까지 판매가 재개되면 과거처럼 제2의 수입 디젤차 전성기가 올 수도 있다고 예견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디젤차가 언제까지 과거처럼 인기를 누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때 디젤 엔진은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의 자부심이었지만,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등 최근 전 세계적으로 디젤 엔진을 바라보는 눈초리는 예전 같지 않다. 인도는 2012년 디젤차의 점유율이 50%를 넘었다. 하지만 2015년 인도 대법원은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 뉴델리에서 디젤차의 신규 등록을 일시적으로 제한하고, 2.0ℓ 이상의 디젤차에 구입 가격의 30%에 달하는 세금을 물리도록 판결했다. 프랑스 파리는 2020년까지 디젤차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디젤차는 유럽, 특히 서유럽 국가를 제외하곤 큰 인기가 없다. 독일에선 도로 위에 돌아다니는 차의 절반가량이 디젤차다. 하지만 자동차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는 중국에선 디젤차가 1%도 채 되지 않는다. 자동차 강국인 미국과 일본에서도 3% 미만이다. 일본은 신차의 25%가량이 하이브리드 차며, 미국은 80% 이상이 휘발유, 약 13%가 에탄올 차다. 디젤이 연소할 때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이 공기와 섞이면 인체에 유해하고 대기 환경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내에선 높은 연비와 낮은 기름값 덕에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전문가 페르디난트 두덴회퍼가 지은 책 <누가 미래의 자동차를 지배할 것인가>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은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클린 디젤’ 캠페인을 펼치며 디젤차 팔기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한 번의 스캔들로 그동안 투자했던 모든 것을 잃었으며, 회복할 기회는 ‘제로’에 가깝다. 페르디난트 두덴회퍼는 책을 통해 독일에서도 인구 밀집 지역은 디젤차가 내뿜는 과도한 질소산화물로 골치를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정부는 대도시의 질소산화물 농도가 기준치를 넘었을 때, 유로6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차는 진입을 못 하도록 막고 있다. 문제는 독일의 디젤차 약 1,500만 대 중 유로6를 충족하는 차는 10% 정도에 불과해 나머지 운전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들 역시 딜레마에 빠졌다. SCR 촉매기 등 첨단 배출가스 정화 장치를 단 대다수의 신차가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이후 시행된 실제 운행 테스트에서 카탈로그에 적힌 질소산화물 배출 수치의 기준치를 웃돌았다. 이들의 시스템은 실패했다. 페르디난트 두덴회퍼는 갈수록 엄격해지는 환경 기준에 맞추려면 보완 개발이 필수불가결하다고 꼬집었다. 폭스바겐은 벌금과 배상금도 마련해야 한다. 트렌드에 맞춰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도 개발해야 한다. 이들에게 현재 디젤 엔진은 계륵이다. 독일 정부 역시 사단취장을 내려야 할 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얼마 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찾아 독일 자동차 산업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한때 수입 디젤차의 시장 점유율이 70%까지 올라갔었다. 만약 아우디폭스바겐의 차들이 계속 팔렸더라면, 이 점유율은 현재진행형이었을지도 모른다. 메르세데스 벤츠 E 220d와 BMW 520d 등 수입차 베스트셀링 타이틀을 쥐고 있는 차들은 거의 디젤 엔진을 얹고 있다. 현재 폭스바겐코리아가 TDI 엔진 라인업으로 영업망을 다시 공격적으로 가다듬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전 세계가 디젤 엔진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 자동차 제조사에 한국 시장은 그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상황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2010년만 하더라도 정부는 ‘클린 디젤’을 홍보하며 디젤차 구매를 적극적으로 권장했었다. 하지만 새 정부는 디젤차를 미세먼지의 주범 중 하나로 손꼽으며 단죄에 나섰다. 최근 브리핑을 통해 2005년 이전에 출고된 낡은 디젤차 286만 대 가운데 221만 대를 조기 폐차하고 운행을 제한하는 등 2022년까지 퇴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가 강화된 디젤차 배출가스 측정 방식 시행을 1년 동안 미루는 대신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은 스스로 배출가스를 줄이겠다고 의지를 표명했다.

일단 이번에 폭스바겐이 1차로 준비한 티구안 등의 차들은 환경부의 배출가스 기준을 통과했다. 하지만 2019년 9월부터는 모든 디젤차가 실제 도로 주행을 통해 배출가스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국내에 디젤차 위주로 팔고 있는 유럽 제조사 입장에서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수요에만 기댈 수 있는 상황은 이미 지났다. 유럽 자동차 회사들은 다른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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