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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음악의 바다… 돌아온 윤이상을 연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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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음악의 바다… 돌아온 윤이상을 연주하다

입력
2018.04.01 15:1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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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 추모 ‘광주여 영원히’부터

자필 악보 ‘낙동강의 시’ 등 연주

동서양을 조화한 음악극도 연출

이념 떠나 음악가로서 평가 위해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 무대에

지난달 30일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에서 독일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를 연주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지난달 30일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에서 독일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를 연주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역사적 사건을 넘어, 이 작품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비이자 온 세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대한 촉구가 되기를 바란다.” 1980년 광주에서 수백 명의 시민과 학생이 군에 의해 숨졌다는 소식을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은 독일 베를린에서 들었다. 그는 통곡하며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를 썼다고 한다.

‘광주여 영원히’가 지난달 30일 오후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 울려 퍼졌다. 1981년 독일에서 초연된 후 국내에서 연주되기까지 13년이 걸렸던 이 곡은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의 첫 곡으로 연주됐다. 한국의 전통악기 박을 사용해 군의 발포 장면을 표현하고, 민주화운동 속 비탄과 충격을 지나 미래를 향한 염원을 담은 이 곡을 독일 악단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한 편의 스토리로 구현해 냈다.

지난달 20일 사후 23년 만에 고향 통영에 묻힌 윤이상의 ‘귀향’과 함께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개막부터 폐막까지 윤이상을 노래한다. 30일 오후에는 음악제 개막에 앞서 추모식이 열렸다. 정치와 이념 논리가 아닌 음악가로서 윤이상이 국내에서도 제대로 평가 받기를 염원하는 후배 음악가들의 바람이 통영을 채웠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율리시스의 귀향'(1640)과 한국 전통가곡이 만난 음악극 '귀향'. 트로이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20년을 헤매다 돌아 온 율리시스와 사후 2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 온 윤이상의 모습이 닮았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율리시스의 귀향'(1640)과 한국 전통가곡이 만난 음악극 '귀향'. 트로이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20년을 헤매다 돌아 온 율리시스와 사후 2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 온 윤이상의 모습이 닮았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윤이상의 귀향을 음악으로

윤이상은 동서양 음악의 조화를 이룬 작곡가로 평가 받는다. 그의 뜻은 음악극으로도 재현됐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율리시스의 귀향’(1640)과 한국 전통가곡이 만난 음악극 ‘귀향’이 30일 밤 초연됐다. “고국을 평생 그리워하던 영웅 오디세우스(율리시스)의 늦었지만 명예로운 귀환을 알린다”는 통영국제음악재단의 설명처럼 율리시스의 귀향에는 윤이상의 귀향이 투영됐다. 트로이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20년을 헤매다 돌아 온 율리시스와 사후 2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 온 윤이상의 모습이 닮았다.

‘귀향’을 연출한 독일 연출가 루트거 엥겔스는 “20년이라는 시간은 사람들의 성격이나 심정은 물론, 고향의 모습도 달라지게 할 수 있다”며 “이번 작품이 윤이상의 여정을 표현한 건 아니지만, 윤이상의 귀향에서도 극 속 내용과 같은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귀향’은 몬테베르디의 오페라와 같은 시기 만들어진 한국의 가곡을 접목했다. 엥겔스는 2013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도 패션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함께한 ‘세멜레 워크’를 선보여 큰 찬사를 받았던 연출가다. 이질적인 두 가지를 섞어 새로운 걸 창조해 내고 싶다는 엥겔스의 말은 윤이상의 음악과도 닮았다. 그는 “17세기 쓰인 바로크 오페라와 한국 전통가곡은 닮은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느린 선율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 한음을 길게 뽑아 쓰는 기술, 누군가를 향한 기다림을 노래하는 가사와 단어들이 굉장히 비슷합니다.” ‘귀향’에서는 런웨이처럼 길고 좁게 연출된 무대를 가운데에 두고 한쪽 끝에는 검은 옷을 입은 서양악기 앙상블 칼레이도스코프가 자리했다. 반대쪽 끝에는 한복을 입은 대금, 거문고, 해금, 장구 연주자들이 마주 앉았다. 이들은 서로 교차하며 극을 만들어 갔다.

음악극 '율리시스의 귀향'을 연출한 루트거 엥겔스가 지난달 30일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음악극 '율리시스의 귀향'을 연출한 루트거 엥겔스가 지난달 30일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엥겔스는 ‘귀향’에서 궁극적으로 ‘고향’과 ‘정체성’의 의미를 묻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싶다고 했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사실상 조국에서 추방당한 윤이상은 독일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했고, 사후 베를린 명예묘지에 묻혔다. “예술가는 어디에 소속돼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윤이상의 귀향은 그의 유해가 태어났던 장소로 돌아온 것으로만 보기보다 그의 정신과 상징이 돌아온 것으로 볼 수 있어요. 그를 기억할 수 있고 기릴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 고향이 될 수 있고요.”

연주자들에게도 의미 깊은 윤이상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윤이상이 작곡한 곡들도 연주된다. 윤이상이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음악 교사 시절에 작곡한 ‘낙동강의 시’가 세계 초연된다. 한스크리스티안 오일러가 지휘하는 하노버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최근 자필 악보가 발견 된 이 곡을 5일 연주한다. 이날 베토벤 삼중협주곡과 윤이상의 실내교향곡 2번 ‘자유의 희생자들에게’도 함께 연주된다. 8일 폐막 공연에서는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윤이상의 ‘바라’를 연주한다.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 무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앙코르 곡으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연주하기에 앞서 "이 곡을 윤이상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 무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앙코르 곡으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연주하기에 앞서 "이 곡을 윤이상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음악제 무대에 오르는 음악가들에게도 윤이상의 이름은 특별하다. 엥겔스는 “현대음악 발전에 기여를 많이 한 윤이상의 이름과 그의 곡을 유럽에서는 모를 수가 없다”며 “윤이상은 자유와 평화에 대한 자극을 준 작곡가”라고 말했다. 개막 공연에서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앙코르 곡을 연주하기에 앞서 “이 곡을 윤이상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고 했다. “너무나 아끼는 곡”이라고 소개한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이었다. 그는 윤이상에 대해 “독일에서 뵀던 모습이 생각난다. 조국을 그리워하며 늘 김치도 담가 드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불렀던 소프라노 황수미는 “후배 음악가로서 한국적 색채의 음악을 알리는 데 기여한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적 공로를 더 알리는 데 힘써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통영=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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