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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미야모토 겐지(10월 17일)

입력
2017.10.1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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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띤 공산주의'를 기치로 일본공산당의 기틀을 다진 미야모토 겐지가 1908년 오늘 태어났다. alchetron.com
'미소 띤 공산주의'를 기치로 일본공산당의 기틀을 다진 미야모토 겐지가 1908년 오늘 태어났다. alchetron.com

일본공산당(JCP)은, 사회당(현 사민당)과 더불어, 거대 보수여당(자유민주당)을 견제하며 전후 일본 진보정치의 거점이자 동력으로 활약해 왔다. 평화헌법 수호에서부터 제국주의 과거사 청산, 재일 조선인 등 소수 민족과 여성ㆍ장애인 인권 옹호, 동서 강국 패권주의 견제 등 원칙을 고수하면서 대도시를 기반으로 10% 내외의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 9월 25일 아베 신조 총리의 중의원 해산 전까지, 중의원 21석, 참의원 14석으로 민진당에 이은 제2야당이었다.

미야모토 겐지(宮本顯治, 1908.10.17~2007.7.18)는 지금의 일본공산당을 일군 주역이다. 그는 31년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 경제학과를 나와 그 해 일본공산당에 입당했다. 22년 창당한 일본공산당은 제국 일본의 치안유지법에 의해 불법 정당으로 규정돼 줄곧 탄압 당했다. 겐지는 33년 공산당 프락치 치사사건 공모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아, 45년 일제 패망까지 12년 옥살이를 했다. 그 해 치안유지법이 폐지됐고, 일본공산당도 합법 정당이 됐다.

49년 총선거에서 35석을 확보하며 약진한 당은 이듬해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추락했고, 맥아더 당시 연합군사령관은 겐지 등 공산당원의 공직 활동을 금지했다. 겐지는 만 50세 되던 58년 일본공산당 서기장(당수)에 취임, 대대적 당 혁신에 나섰다. 먼저 당 강령을 개정, 공산주의 폭력혁명 노선을 포기했다. 76년 전당대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포기를 선언하고 대신 민주주의와 자유를 기본 이념으로 채택했다. 그 노선을 겐지는 ‘미소 띤 공산주의(Smiling Communism)’라고 불렀다. 그리고 주택문제, 인플레, 교육 등 민생 개혁에 주력했다. 패권주의에 철저히 저항했던 겐지는 66년 중국 문화혁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68년 소비에트의 체코 침공을 비난했다. 북한과도 거리를 두던 끝에 ‘아웅산 테러(83년)’ 직후 대북 교류를 아예 단절했다. 그는 그렇게 일본공산당의 독자노선 기틀을 다졌다. 89년 소비에트 해체에 대해 그는 스탈린주의와 소비에트 패권주의의 패배일 뿐 사회주의의 패배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77년 당수에서 물러난 뒤로도 당의장 등 직책을 맡아 일했다.

그의 아내가 일본의 사회주의 계열 작가이자 페미니스트로 월간지 ‘働く婦人(하타라쿠 후진, Working Women)’ 편집장으로 활약한 미야모토 유리코(1899~195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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