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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신상털기나 할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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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신상털기나 할 때 아니다

입력
2011.10.1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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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작가 베르베르가 일찍이 "미래는 배우들의 것"이라고 예측한 적이 있다. 그들이 대중의 마음에 들도록 연기할 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둘 뛰어난 인물이나 정파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세상에서 대중은 어차피 공수표이기 십상인 정강이나 공약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에서도 내용보다는 형식과 이미지가 우선하는 현상에 대한 개탄 섞인 전망이다.

지금 서울시장 선거가 딱 그렇다. 매번 정책 없는 선거를 아쉬워해왔지만 이번처럼 정책논쟁이 아예 사라지다시피 한 경우는 가히 처음이다. 두 후보가 한 번쯤 뱉은 정책 관련 발언들을 애써 들여다봐도 별 차별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일자리 창출, 전세난 극복, 지역격차 해소 등이 공통적인 주 공약이다. 혹 빠진 게 없을까 좋은 건 서로 다 찾아내 주워담은 때문이다.

선거는 이미지 아닌 예측 게임

이러니 남는 건 이미지밖에 없다. 둘 다 오랫동안 노출된 인물인 만큼 단 며칠 만에 새롭게 얹을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상대의 긍정적 이미지를 깎아내는 방법만 유효하다. 네거티브선거에 대해 비판이 높지만 냉정하게 보아 구조적으로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전략이다.

문제는 내용이다. 나경원 후보에 대해선 사학재단 감싸기ㆍ장애인 목욕봉사ㆍ부동산 투기의혹 등이, 박원순 후보에게는 대기업 후원금, 병역 및 학력의혹 등이 대표적으로 제기되는 공격목록이다. 대개 해명이나 정황이 이해되는 것들이다. 실제로도 양측 모두 난사하다 보면 어디 한 군데 상처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정도다. 두 후보를 꽤 오래 알고 지켜본 입장에서 단언컨대 둘 다 평균을 넘는 자질과 경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적어도 진흙탕 싸움판에 올려놓을 만한 인물들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도대체 누구를, 뭐를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냐고? 선거는 예측의 게임이다. 당선됐을 때의 모습을 예상해(물론 번번이 기대를 배반하긴 하지만 할 수 없다) 마음이 더 가는 쪽을 선택하면 된다. 예상에 도움되는 기본자료는 성장과정과 사회활동 방식이다. 이 점에서 두 후보는 분명하게 다르다.

나 후보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주 반듯하게 성장한 사람이다. 여유 있는 환경이 도리어 자식을 망치는 경우를 흔히 보듯 그의 성취를 단지 환경 덕으로 간단히 치부해버릴 건 아니다. 법조계와 정치계에서도 그는 크게 튀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단호하게 주관을 내보이며 착실하게 정통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반면 박 후보는 들판의 잡초와 같은 생명력으로 거침없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온 사람이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최고의 학업성취를 이루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늘 안락한 삶 대신 대단한 의지와 창의력으로 미지의 분야에 도전, 우리사회의 새로운 영역들을 만들어냈다. 둘 모두 인간적으로 친화력이 있고 진정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니 누가 당선되든 변화는 있으되, 폭은 당연히 박 후보 쪽이 훨씬 클 것이다. 제도권에서 실무를 다뤄본 나 후보는 현실적 틀 속에서 보완에 주력할 것이고, 박 후보는 지금껏 그래왔듯 기존의 정치행정 틀을 전면적으로 바꾸려 할 것이다. 전자에선 안정적이되 미시적 변화에 머물 것이고, 후자에선 거시적 변화가 끊임없이 시도될 것이되 불안정성은 클 것이다. 둘 모두 자질과 품성으로 보아 변화는 어떻든 긍정적일 것이되, 변화의 구체적 방향이 모호한 건 둘 모두 같다.

시대변혁기의 큰 선거의미 봐야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거대한 시대적 변화시점에 치러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안팎의 격한 변화조짐이 왠지 불안한 이들은 나 후보를, 불안해도 지금 현실보다는 변혁이 낫다고 믿는 이들은 박 후보를 선택하면 된다.

대선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이번 결과에 따라 우리사회의 진행방향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를 새삼 길게 한 건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크게 봐야지 찌질한 신상 털기 따위에나 솔깃해할 때가 아니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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