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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반발에 국정마비까지… 설 땅 잃는 ‘역사 국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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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반발에 국정마비까지… 설 땅 잃는 ‘역사 국정교과서’

입력
2016.11.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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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 ‘고시 철회’ 시국선언

일각선 최순실 개입 의혹 제기도

시민단체 ‘순실왕조실록’ 비아냥

학부모단체도 불매운동 진행 중

교육부, 현장 검토본 28일 공개

“교과서 공개되면 시비하기 애매”

시민의견 수렴 등 계획대로 진행

전문가 “강행 땐 역풍 맞을수도”

한국사연구회 등 47개 역사학계 학회ㆍ단체 관계자들이 1일 서울 광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및 역사 교육을 퇴행시키는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한국사연구회 등 47개 역사학계 학회ㆍ단체 관계자들이 1일 서울 광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및 역사 교육을 퇴행시키는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박근혜 정부의 역점 사업인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좌초 위기에 빠졌다. ‘최순실 게이트’가 일파만파 번지면서 시국선언 대열에 동참한 역사학계가 국정화 중단을 압박하고 나선 데다, 시민단체마저 ‘최순실 교과서’라며 가세할 태세다. 정부는 28일 현장 검토본 공개 등 애초 계획을 밀어붙인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적 반대가 거세 채택 여부가 불투명하고 설사 강행하더라도 학생들에게 혼란만 부추길 1년짜리 교과서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학회 등 역사학회 및 역사단체 47곳은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 시국에 대한 역사학계의 요구’를 발표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검찰은 책임자를 처벌할 것 등을 촉구한 뒤,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 철회를 강력 요구했다.

역사학계는 “그간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줄기차게 반대하고, 합리적인 시정을 요구했지만, 학문적 전문성을 무시한 채 독단을 자행한 현 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최소한의 믿음마저 무너뜨렸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일방적 정책들이 결국 정상적인 국정 운영의 결과가 아니었음이 드러난 만큼 국정화 고시를 철회하라”고 외쳤다.

시민사회도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세를 모으고 있다. 시민단체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2일 같은 장소에서 국정교과서 무효화 선언을 하고, 국정교과서반대청소년행동은 5일 광화문역에서 국정교과서 폐기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기 위해 현재 인터넷에서 서명을 받고 있다. 학부모단체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는 지난달 24일부터 국정 역사교과서 불매운동을 진행 중이다. 일부 시도교육청과 일선 역사 교사들은 현재 국정교과서에 맞서 보조교재를 제작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시작부터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전국 역사 교사들의 97%가 반대하고 나섰고, 진보뿐 아니라 중도 성향도 반발하는 등 일반 시민들도 정부의 의도를 의심했다. 역사 국정화를 지양하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동떨어진다는 지적도 많았다.

더구나 당초 집필진과 집필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던 교육부가 올 초 돌연 집필진 신상을 비공개 방침으로 바꾸고, 집필기준조차 공개하지 않으면서 불통, 불신의 대명사가 된 정책이다. 박 대통령의 독선과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현재 완성 단계에 왔지만, 국정농단 사태로 박 대통령의 힘이 급격히 빠지고 국정이 마비된 상태라 사실상 정상적인 진행이 어렵게 됐다.

급기야 국정화 정책에 ‘비선 실세’ 최순실(60)씨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란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최씨 측근 차은택(47)씨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이 근거로 제시됐다. 일부 시민단체는 국정교과서를 ‘순실왕조실록’이라고 비꼬고 있다. 아직 사실로 확인된 바 없지만 급속도로 악화한 여론이 최씨 관련 의혹이라면 불문하고 가능성을 믿는 상황이라 국정교과서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현재 교육부는 28일 공개를 목표로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현장 검토본을 만들고 있다. 이 판본이 완성되면 e북 형태로 홈페이지에 올리고 12월 말까지 시민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1월까지 최종본을 완성, 3월부터 전국 중ㆍ고교에서 가르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박성민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부단장은 “막상 교과서가 공개되면 시비하기 애매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정농단 사태로 정책 동력이 꺼진 상황에서 무리수는 되레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태헌 고려대 사학과 교수는 “어차피 길게 가지 못할 교과서에 집착하는 건 국가적 낭비”라며 “현 정부 남은 임기엔 계획을 접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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