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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고 참혹한 세월호 추모 현장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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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고 참혹한 세월호 추모 현장에 다녀오다

입력
2017.04.0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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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신항→팽목항→광주 시립미술관→안산 화랑 유원지

진도군 팽목항 '기억의 벽'에 묶인 노란 리본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사진 조두현 기자
진도군 팽목항 '기억의 벽'에 묶인 노란 리본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사진 조두현 기자

지난달 31일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1,080일 만이다. 세월호가 물 밖으로 나와 화이트마린 호에 실려 목포신항으로 오고 있을 때, 서울에서 차를 끌고 목포로 향했다.

마중은 아니다. 세월호가 목포에 도착할 즈음 진도 팽목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 드라이빙의 목적은 추모와 기록에 있다. 가수 황푸하는 미수습자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다. 화가 홍성담은 세월호 침몰 당시의 상황을 그림으로 옮겼다. 어떤 이는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거나 차에 붙여 다니기도 한다. 각자가 자신의 방법으로 세월호 피해자를 추모하고 기억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귀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귀들

세월호는 단연 대한민국 전체의 화두다. 지금도 직접 현장을 찾는 추모객의 수는 늘고 있지만, 국민 대부분은 미디어를 통해 세월호 관련 소식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했다. 좀 더 관심을 두고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 세월호 피해자를 추모할 수 있는 장소는 많다.

진도군 팽목항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진도군 팽목항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서울 인근에만 인천 가족공원, 경기도 안산 하늘공원과 평택 서호공원 등에 세월호 추모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경기도 미술관은 오는 5월 7일까지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마음을 담은 ‘너희를 담은 시간’ 전시회를 연다.

이틀 동안 목포와 진도, 광주, 안산에 들러 세월호의 아픔에 속으로 울고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스티어링휠이 이렇게 무거웠던 적이 없다. 목포로 향하던 날 이른 아침, 옅은 하늘도 낙루하듯 비를 내렸다.

3월 31일 오전 11시 목포신항

세월호가 목포신항으로 오던 날, 목포신항의 철문엔 침몰 원인의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노란 리본이 달리기 시작했다
세월호가 목포신항으로 오던 날, 목포신항의 철문엔 침몰 원인의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노란 리본이 달리기 시작했다

목포신항으로 향하는 도로에 접어들자 길 양쪽 가로등에 노란 플래카드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플래카드엔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등의 글귀가 적혀 있다. 박홍률 목포 시장은 지난 3일 세월호 신항만 거치 종합지원 추진 상황 브리핑에서 지난 1일과 2일 주말 동안 3만 명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갔다고 밝혔다. 목포신항에서 활동할 자원봉사자도 4월 말까지 꽉 찼다고 했다. 목포는 그렇게 추모의 열기로 뜨거워지는 중이었다.

목포에 들어서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뜻의 노란 리본을 붙이고 다니는 차가 많이 보였다
목포에 들어서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뜻의 노란 리본을 붙이고 다니는 차가 많이 보였다

세월호를 실은 화이트마린 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하기 약 2시간 전, 목포신항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경찰은 도로를 통제했다. 노란 리본이 가득 달린 철문 너머로 곧 세월호가 거치 될 장소가 보였다. 철문 밖엔 취재진이 무거운 마음으로 서성이며 세월호를 기다렸다.

미리 천막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4·16 가족협의회와 4·16 연대 관계자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그중 한 명과 짧은 대화를 나누어보니 세월호 침몰 원인의 진상 규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그들은 세월호를 반기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 누구보다 통곡을 내뱉을 그들이었다.

3월 31일 오후 1시 진도군 팽목항

세월호 생존자 양인석 씨가 본인의 트럭으로 미수습자 가족의 임시 거처를 옮기며 돕고 있다
세월호 생존자 양인석 씨가 본인의 트럭으로 미수습자 가족의 임시 거처를 옮기며 돕고 있다

세월호가 목포에 가까워지고 있을 즈음 진도군 팽목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했을 땐 미수습자 가족이 임시로 머물렀던 거처가 트레일러에 옮겨지고 있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곳에서 3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날 그토록 기다렸던 가족을 만나러 목포로 떠났다. 이들은 미수습자 9명을 찾을 때까지 목포에 분향소 설치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미수습자 가족의 임시거처는 옮겨졌지만, 기존 합동분향소는 그대로 남아 팽목항을 찾는 추모객들을 맞을 예정이다. 분향소엔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는데 대부분 단원고 학생들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졸업 앨범에서 밝게 웃고 있어야 할 얼굴들을 분향소에서 실제로 직시하는 순간 가슴 한쪽이 아리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침통한 마음으로 가족과 추모객들이 남긴 메시지를 살펴봤다. 그러자 눈가를 비롯해 온몸 구석구석이 달궈지기 시작했다.

진도군 팽목항의 빨간 등대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의 상징물이 돼버렸다
진도군 팽목항의 빨간 등대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의 상징물이 돼버렸다
미수습자인 박영인 군의 축구화가 3년째 팽목항에서 영인 군을 기다리고 있다
미수습자인 박영인 군의 축구화가 3년째 팽목항에서 영인 군을 기다리고 있다
팽목항 합동분향소를 다녀간 추모객들이 남긴 메시지
팽목항 합동분향소를 다녀간 추모객들이 남긴 메시지
세월호가 인양되기 전까지 미수습자 가족들은 팽목항에서 먼바다를 바라보며 가족의 귀환을 기다렸다
세월호가 인양되기 전까지 미수습자 가족들은 팽목항에서 먼바다를 바라보며 가족의 귀환을 기다렸다

밖으로 나와 ‘기억의 벽’이 마련된 등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국 26개 지역 어린이와 어른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며 타일 4,565장 하나하나에 그림을 그려 붙여놨다. 그 위에는 세월호 인양 촉구와 미수습자 귀환을 바라는 글귀를 담은 노란 리본과 편지 등이 수북하게 묶여 있다. 그걸 바라보는 추모객들의 발걸음은 마치 발목에 큰 추라도 달아 놓은 양 무거워 보였다.

오전 내내 얄궂게 찌푸리던 하늘의 표정은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순간 스마트폰에서 속보 알람이 떴다. 목포신항에 세월호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월호 참사의 잔혹한 순간을 담은 그림 ‘세월오월’을 보기 위해 전남 광주로 향했다.

3월 31일 오후 4시 광주 시립미술관

홍성담 화가의 '세월오월'. 세월호 3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홍성담 화가의 '세월오월'. 세월호 3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5·18 민주화운동 화가’로 유명한 홍성담은 경기도 안산에서 13년 동안 작업실을 운영 중이다. 그곳에서 지인의 소개로 단원고에 다니는 여학생 한 명의 그림 지도를 맡았다. 학생의 형편이 여의치 않아 작업실 아르바이트를 시키며 그림을 가르쳤다. 어느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기에 잘 다녀오라고 아르바이트비도 미리 주었다. 며칠 뒤 그 학생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가 되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홍성담 화가가 ‘세월오월’을 그리기 위해 붓을 잡게 된 계기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한 관람객이 세월호를 주제로 한 홍성담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한 관람객이 세월호를 주제로 한 홍성담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오는 5월 11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선 세월호 3주기를 추모하기 위한 홍성담 화가의 ‘세월오월’ 전시회가 열린다. 그림은 꽤 사실적이어서 무섭기까지 하다. 작품명 ‘꿈’에선 아이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세월호를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친구와 마지막 셀카’ 작품에선 세월호가 약 45° 기울어졌을 때 아이들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림 덕에 당시의 순간을 더욱 확실하게 회상하며 가슴에 담을 수 있다. 걸개그림인 ‘세월오월’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2014년에 완성돼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 걸릴 예정이었지만, 당시 정부에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아 이제야 빛을 받게 됐다.

4월 1일 오전 11시 안산 화랑 유원지

안산 화랑 유원지 내에 자리한 세월호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안산 화랑 유원지 내에 자리한 세월호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다음 날, 안산 단원구에 있는 화랑 유원지를 찾았다. 이곳엔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합동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안으로 들어서자 빽빽이 들어서 있는 영정 사진들이 추모객을 맞이한다. 국화 한 송이를 어느 학생의 영정 사진 앞에 내려놓았다. 그곳엔 그 학생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이 쓴 편지와 과자가 놓여 있었다. 그 그리움이 어찌나 애절한지 편지는 눈물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없었다.

옆엔 유가족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두 손을 모으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한 아이의 영정 사진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귀엔 들리지 않았지만 속으로 그 아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게 분명했다. 그 여인은 내가 분향소에서 나갈 때까지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 뒷모습이 어째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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