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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래퍼… 나와 가장 닮아 더 재미있게 연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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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래퍼… 나와 가장 닮아 더 재미있게 연기했죠”

입력
2018.06.28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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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산’ 박정민

촬영 석 달 전부터 랩 배우고

랩 가사 대부분 직접 써

나의 현재를 과감하게 표현

이준익 감독이 준 선물 같은 영화

영화 ‘동주’에 이어 ‘변산’으로 이준익 감독과 재회한 박정민은 “함께 작업했던 감독님이 다음 작품에 또 불러 주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영화 ‘동주’에 이어 ‘변산’으로 이준익 감독과 재회한 박정민은 “함께 작업했던 감독님이 다음 작품에 또 불러 주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영화 ‘동주’(2016)에서는 식민지 청년의 울분과 마주했다. ‘그것만이 내 세상’(2018)에서는 피아노 선율로 세상과 대화하는 순수한 영혼을 만났다. 기억되지 못한 비운의 독립투사로, 자폐 장애를 지닌 천재 피아니스트로, 배우 박정민(31)에게 연기란 자신을 고스란히 작품에 바치는 일이었다.

‘변산’(7월 4일 개봉)은 조금 다르다. 되는 일 없는 무명 래퍼 학수에게서 처음으로 박정민이 보였다. 인물에 다가가 스며드는 대신, 인물을 끌어당겨 흡수했다. 어쩌면 이게 박정민이란 배우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의 한계도 궁금해졌다.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박정민은 “나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였고, 그래서 더 재미있게 나 자신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변산’에서 학수는 ‘MC 심뻑’이란 이름으로 오디션프로그램 ‘쇼 미 더 머니’에 여섯 번째 도전하던 중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10년 만에 고향에 내려간다.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학수를 기다리는 건 지질했던 과거다. 자신과 다투고 망가지고 화해하는 학수를 보며 관객은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다. 학수가 되어 스크린을 휘젓는 박정민은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그는 “힘을 뺀 연기를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한다”며 “그래서 이 영화에 더 끌렸던 것 같다”고 했다.

래퍼 얀키의 수제자 박정민의 랩 실력이 궁금하다면 7월 4일 개봉하는 ‘변산’을 보자.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래퍼 얀키의 수제자 박정민의 랩 실력이 궁금하다면 7월 4일 개봉하는 ‘변산’을 보자.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이준익 감독은 ‘동주’에 이어 ‘변산’에 다시 박정민을 부르면서 원래 시나리오에선 단역 배우였던 주인공을 래퍼로 바꿨다. 이 감독은 박정민의 매력을 “무단횡단을 하다가 쓰레기를 줍는 사람 같은 반전”이라고 설명했다. 박정민이 평소 힙합 음악을 즐겨 듣기 때문만이 아니라, 반듯함 속에 숨겨진 파격과 야성을 보고 ‘변산’을 맡겼다는 얘기다. ‘동주’가 박정민의 내면을 끄집어냈다면, ‘변산’은 박정민의 현재를 포착한다. “감독님은 제가 아는 감독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데도 가장 편한 분이에요. 감독님 앞이라서 나 자신을 과감하게 보여 줘도 덜 창피했어요. 박정민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갖다 부은 느낌이랄까요. 감독님께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박정민은 촬영 3개월 전부터 래퍼 얀키에게 랩을 배웠다. 영화에 나오는 랩 가사도 직접 썼다. 그의 남다른 노력 재능이 또 한번 값지게 쓰였다. “작사에 랩 연습에 주연이란 책임까지 더해지니 서서히 과부하가 걸리더라고요. 모든 장면에 다 등장하니 연기 부담도 컸어요. 촬영이 끝나고서도 랩 가사 3곡을 새로 썼고 녹음도 해야 해서 최근까지 랩을 붙들고 있었어요. ‘변산’ 이후로 영화 ‘사바하’와 ‘사냥의 시간’ 두 편을 끝냈는데 랩 연습은 안 끝나더라고요(웃음).”

이준익 감독(왼쪽)과 박정민은 영혼의 단짝이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이준익 감독(왼쪽)과 박정민은 영혼의 단짝이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좌절과 희망을 고백하는 학수의 랩 가사에도 박정민이 언뜻 비친다. “학수의 랩은 박정민의 글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홍대 인디신에서 몇몇 관객에게만 노래를 들려주던, 음악을 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는, 이름 없는 한 래퍼가 자기 음악을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그 마음에 많이 공감했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10년 뒤엔 이 영화에서 쓴 랩 가사가 흑역사가 될 수도 있다”며 ‘푸흡’ 웃음 짓던 박정민이 잠시 시간을 되감았다. 그가 떠올린 흑역사는 ‘무명 아닌 무명 시절’이다. 2011년 독립영화 ‘파수꾼’으로 주목받는 데뷔를 했지만 실력에 비해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전설의 주먹’(2013)과 ‘들개’ ‘신촌좀비만화’(2014), ‘오피스’(2015) 등 여러 출연작에서도 스포트라이트는 그를 비켜 갔다. “아직 그 시간들이 몸에 배 있어요. 방심하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고요. 관성이 참 무섭더군요. 며칠 전 한 선배에게 ‘나는 지금도 배우가 꿈’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선배가 ‘너는 이미 배우가 돼 버렸으니 다음에 뭘 할지 고민하라’고 조언하셨죠. 그 의미를 알지만 아직은 혼란스러워요.”

그래서 가혹하리만치 자신을 다그치는 걸까. ‘충분히 잘한다’는 격려에도 그는 “고통스럽게 노력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 하는 것”이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주’ 이후 갑작스러운 변화에 호되게 성장통을 겪은 듯했다. 그런 박정민을 이준익 감독이 붙들어 줬다. ‘너는 변하지 않았어도 너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변했으니 더 겸손해져야 한다’는 조언을 박정민은 지금도 가슴에 품고 있다. “‘타짜 3’ 촬영 때문에 요즘 운동하고 있는데, 감독님이 몸 만들지 말라고 타박하세요. 좁은 어깨가 저의 매력이라나요(웃음). 이 조언도 새겨들어야겠죠?”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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