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아티스트 권력이 팬에게까지 군림… 음악계 #미투는 또다른 전개의 서막

알림

아티스트 권력이 팬에게까지 군림… 음악계 #미투는 또다른 전개의 서막

입력
2018.03.05 04:40
22면
0 0

#1. 가수 A씨는 재즈 1세대 음악인인 류복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최근 폭로했다. 2013년부터 2~3년 동안 공연이 있던 서울의 한 재즈바 등에서 류복성이 허벅지를 만지며 음담패설을 일삼았다는 주장이었다. 류복성은 지난 3일 “제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상처 입은 후배에게 사과한다”고 사죄했다.

#2. 소리꾼 B씨는 지난달 28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명 드러머 남궁연으로 유추할 수 있는 ‘미투(#MeTooㆍ나도 피해자다)’ 글을 올렸다. 남궁연은 B씨를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맞섰다. 하지만, 본보가 입수한 남궁연 최측근과 B씨와의 1일 통화 녹음 파일에서 남궁연 최측근이 B씨에게 “어느 부분에서 실수했는지 (마음을) 풀어 주고 싶다”고 한 정황과 그를 향한 추가 미투 폭로가 이어져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미투 운동이 음악계로도 확산하고 있다. 문학계와 공연계에서 들불처럼 번진 문화계 미투가 음악계로 급속히 옮겨 붙는 모양새다. 음악계 미투 운동은 다른 분야와 달리 예술가 집단을 넘어 가수와 팬 사이에서까지 벌어졌다. 팬까지 성추행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이라 음악계 성폭력 문제는 더욱 예사롭지 않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남성 음악인들 미투 후 “공범인 것 같아 미안”

음악계 미투 운동은 국악과 재즈 분야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관계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두 분야는 시장이 작아 특정 인맥 중심으로 공연과 창작 활동이 이뤄져 권력 관계로 인한 성추행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류복성의 성추행 의혹은 수년전부터 업계에 떠돌았다. 다만, 대부분이 쉬쉬해 피해자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류복성을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한 A씨는 4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주위에 고민을 털어놓으면 ‘다 알잖아. 피하는 수밖에 더 있어?’ 등의 반응이 돌아왔다”며 “예전엔 나섰다간 혼자 발악하는 거로 비칠까 두려웠고, 신인이라 노래하고 싶은 무대도 간절해 견뎠다”고 뒤늦게 ‘미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털어놨다. 1970~80년대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 주제곡 타악(봉고) 연주로 유명한 류복성은 ‘타악의 거장’으로 불리며 업계에 영향력을 미쳤다. A씨는 섣불리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가 설 무대를 잃으면 어쩌지란 두려움에 분을 삭였다.

A씨가 가장 힘들었던 건 성희롱을 당할 때 남성 음악인들이 웃으며 구경하는 일이었다. 또 다른 남성 재즈 연주자로부터 당한 성적 모욕을 남성 선배 연주자에게 들려주니 “걔가 순진해서 그래”란 말을 듣고는 입을 닫기로 했다. A씨는 “‘미투’ 후 여러 남성 연주자로부터 ‘방관만 해 죄송하다’ ‘공범인 거 같아 미안하다’ 등의 연락이 왔다”며 “‘공연을 하게 해 줬으니 너도 나에게 뭐 줘야 하는 게 아니냐’ 식의 권력 관계를 통한 성폭력을 이번에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몸이 하나 돼야 녹음 잘 돼” 왜곡된 창작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될 수 있는 작업 방식을 예술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왜곡하는 행태 또한 피해자들의 원성을 부르고 있다.

국악계엔 정체불명의 ‘나체 발성법’이란 말까지 등장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남궁연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그가 발성 연습을 핑계로 B씨에게 옷을 벗으라고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금기를 뛰어넘는 성 해방이 곧 예술’이란, 일부 예술인의 그릇된 인식도 문제라는 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영국과 미국에선 예술을 성 해방과 동일시하는 풍토에 대해 반성하고 그 잘못을 바로잡았다”며 “우리가 그런 담론을 비판 없이 수용한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DM으로 만난 뒤 성추행… 피해자 된 팬

그간 쉬쉬하며 덮어뒀던, 가수가 그를 좋아하는 팬을 향해 저지른 성추행도 ‘미투’ 운동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힙합 음악을 즐겨 듣던 여성 C씨는 지난해 12월 래퍼 던말릭을 만나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당했다고 최근 폭로해 파문이 일었고, 던말릭은 지난달 소속사였던 데이즈얼라이브에서 퇴출당했다. 던말릭은 “팬과 아티스트라는 권력 관계를 이용해 추행을 저질렀음을 인정한다”고 사과했지만, 팬의 열성적인 지지를 볼모로 성적 접촉을 시도해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김반야 음악평론가는 “한국은 ‘조공 문화’(팬이 스타에게 선물 등을 바치는 행태)가 심해 가수와 팬 사이에서도 절대적인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봤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