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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북핵만을 보고 외교해야

입력
2017.11.08 16:5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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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전략싸움에 휩쓸리는 북핵

3불원칙은 긁어 부스럼 만든 악수

북핵 통해 원칙과 명분 주도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바둑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기력도 아마 4, 5단 정도로 상당하다. 지난 18대 대선 패배 뒤에는 바둑으로 심신을 추스르며 재기를 다졌다고 한다. 바둑의 포석에는 큰 원칙이 있다. ‘급한 곳, 넓은 곳, 큰 곳’ 순서로 두라는 것이다. 수가 가치가 있어도 순서가 틀리면 악수가 될 수 있다. 바둑 얘기를 꺼낸 건 우리 북핵ㆍ외교 정책이 바둑에서 배울 게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안보의 큰 흐름은 북핵 문제와 대중국 관계다. 익히 알려졌듯 미국과 일본의 아시아 외교에서 궁극의 목표는 중국 봉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쿄 정상회담에서 새롭게 들고 나온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ㆍ태평양’이 좋은 예다. ‘아시아ㆍ태평양’에서 지평을 더 넓혀 미국 일본 호주에 인도까지 포함시켜 중국 봉쇄망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세대를 뛰어넘는 찰떡궁합을 과시하는 것은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과 이를 위한 전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일이 전략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차이를 만드는 원인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아시아 전략은 분명해진다. 자신을 억제하려는 해양세력의 봉쇄망을 뚫고 동북아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두 상반된 힘이 충돌하는 지점에 북핵이 있다. 한반도 주변 당사국들 모두 북핵의 평화적 해법을 주장하면서도 속내가 정반대인 것은 북핵이 대중전략과 중첩했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은 북핵이 안보위협일 뿐 아니라 중국의 아시아 경략 카드로 생각하고 있고, 중국은 미일의 공세를 막는 완충 역할이란 시각에서 북핵을 이용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북핵 문제에서 헤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접근법을 쓰더라도 주변 강대국의 논리에 따라 휩쓸리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3불(不)’ 언급과 ‘미중 간 균형외교’ 발언으로 논란을 확산시킨 문 대통령의 언론 인터뷰가 그런 경우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방어(MD)망에 들어가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중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 전략일뿐더러 북핵 문제가 없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한미동맹이 우리의 외교정책 토대인 것을 감안하면 명시적으로 공언할 성질의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정부는 “북핵문제에서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서”라고 해명했지만 이것이 미국의 대중정책과 충돌을 빚고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의 균열을 가져올 수 있음을 헤아렸어야 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즉각 ‘주권 포기’라는 노골적 표현으로 반대하고, 중국은 중국대로 ‘3불 입장’을 연일 강조하며 한국을 압박하는 이유다. ‘3불’의 핵심이 북핵을 넘어 미중의 아시아 전략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뜻이다. 굳이 ‘3불’을 언급해야 했다면 상대는 중국이 아닌 미국이다. 한중이 아닌 한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능력으로는 미중의 전략적 싸움에 끼어들 처지도 안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보다는 우리 안보의 당면 과제인 북핵 문제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해결할까를 고민하는 게 현명하다. 바둑으로 치자면 가장 급한 곳이다. 북핵을 큰 그림의 일부로 보는 미일이나 중국과 다른 접근이어서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북핵만을 보고 가야 명분도 생기고 외교공간도 만들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균형외교’ 발언에 대해 “미중 사이의 균형이 아니라 한국외교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간 균형외교라는 말이 그렇게 이해될 수 있는 건지를 떠나 대통령의 발언이 누차 분란거리가 되고 해명해야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깝다. 요즘 바둑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위기십결(圍棋十訣)’ 중에 ‘동수상응(動須相應)’이란 말이 있다. ‘행마할 때는 서로 연관되고 호응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외교 당국이 귀담아들었으면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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