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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택시 운송비 기사에 전가… “블랙리스트 무서워 저항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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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택시 운송비 기사에 전가… “블랙리스트 무서워 저항 못해”

입력
2017.09.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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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발전법 개정안 시행 1년

경고 수준 처벌에 실효성 떨어져

신차 구입ㆍ유류비 교묘히 떠넘겨

영업용 택시를 몰고 있는 윤모(50)씨는 올해 3월 회사로부터 새 차를 배정받았다. 깔끔하고 내부 공간도 넓어 손님들은 좋아하지만, 윤씨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새 차를 받으면 짧게는 2년, 길게는 3년간 구입비 명목으로 매일 3,000원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달 26일 근무 기준으로 매달 월급에서 7만8,000원이 빠져나간다. 150만원 정도 되는 월수입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윤씨는 “신차는 회사에서 사놓고 비용은 기사한테 떠넘기는 식”이라며 "그러면서 회사에서는 신차를 타도록 종용해 ‘울며 겨자 먹기’로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택시회사가 차량 구입비, 유류비 등 운송비용을 기사에게 전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택시운송산업의발전에관한법률(택시발전법)’ 개정안이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됐지만 여전히 많은 택시회사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처벌이 너무 약해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 실효성 있는 제재 조항을 포함하도록 법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4월부터 6월까지 서울 시내 254개 택시회사 대상 전수 조사 결과, 운송비용을 기사들에게 떠넘기는 업체가 절반이 넘는 132곳에 달했다. 택시 구입비를 기사 몫으로 넘기는 곳이 71군데, 유류비를 전가하다 적발된 곳은 23곳이었다. 택시 구입비와 유류비 모두를 떠넘긴 회사도 38곳이나 됐다.

이들은 대부분 교묘한 방법으로 비용을 떠넘기고 있었다. 택시기사들은 택시영업으로 벌어들인 돈 중 일정액을 회사에 내는데(사납금), 급여명세서에는 기록하지도 않은 채 몇 만원씩을 추가로 빼나가는 식이다. 물론 대놓고 매일 현금으로 받아가는 곳도 있다.

기사들은 해고 걱정에 저항조차 못한다. 5년 차 기사 A(56)씨는 “밉보여서 회사에서 잘리기라도 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회사에 가는 것도 어렵다”고 했다. 노동조합 결성도 도움이 안 된다. 실제 노원구의 한 택시회사 기사 9명은 지난 8월 노조를 결성했다가 되레 회사로부터 핍박만 받고 있다. 조합원 한 명은 해고 당하고 남은 8명은 승무정지 징계 통보를 받았다. 야간 근무를 원하는 조합원을 주간으로 배치하는 등 괴롭히기도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사들이 직접 신고하는 경우가 적어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 전수 조사를 벌여야 하지만 이 역시 인력 등을 생각하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제도상 허점도 있다. 택시발전법상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불법적인 비용 전가 1회에 과태료 500만원 및 경고 조치, 2회에 과태료 1,000만원 및 사업정지 90일, 3회 이상에 과태료 1,000만원과 운행 차량 축소를 명령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내려지는 처벌은 경고 또는 과태료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회사에 ‘타격’(?)이 될 수 있는 영업정지나 감차는 거의 내려지지 않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 얘기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택시기사 개인이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며 “법 개정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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